서울 중랑구 지역 탐방 | 봉제업체 편

서울 중랑구는 현재 서울시 내에서 봉제업이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이는 과거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에 번성했던 봉제공장들이 도시개발 및 지역상권의 발전에 따라 밀려나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크다. 중랑구 내의 사업체 수는 2,523개, 종사자 수는 12,494명에 달하며, 사실 이 수치는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에 한한 것으로 실제 봉제업체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업자 등록을 내지 않은 업체들 까지 합산하면 보통 5,000~7,000개 까지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자 등록이 되어 통계에 잡힌 업체만 두고 계산하더라도 중랑구 내에서 봉제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제조업체 3,491개 중 2,523개로 72.3%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전체 중 점유율은 11%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2016년에 중랑구 면목동 일대를 면목패션(봉제)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고 2017년 1월에는 봉제 스마트앵커 시설 건축을 결정하면서 이 지역 봉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2월 초 중랑 봉제업을 두루 돌아보며 조망하는 ‘중랑구 지역 봉제산업 대 탐방’을 기획함으로써 이 일대의 봉제 현황을 조명해 보기로 했다.
중랑구는 서울시 내 최대 봉제업 밀집지역이다. 건물 하나에 두, 세 개의 봉제공장이 입주해 있는 것은 물론 건물 바로 옆 건물에도 봉제 공장이 있는 것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 초 시도했던 중랑 봉제업체 탐방에서 만난 업체들은 하나같이 경기 불황, 인건비 인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면으로 옮겨 보았다. <편집자주>
명주사 작업현장

본격적으로 탐방에 나서기에 앞서 이전에 인터뷰했던 적 있는 중화역 2번 출구 인근의 요가복 전문 업체 ‘명주사(대표: 최인재)’에 먼저 들렀다. ‘명주사’ 최인재 대표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봉제 경력 40년의 어머니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봉제인이다. 직원은 10명 정도 두고 있다. 봉제업 종사자의 평균 나이가 크게 상승한 현재 보기 드문 젊은 사장이라 작년 7월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먼저 방문하게 된 이유는 인근 업체를 소개받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럽게 공장을 찾아갈 경우 업체 대표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이거나, 기자를 수상한 사람(?)이나 방문 판매원으로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대표는 주변 봉제업체 소개가 다소 어렵다고 했다. “요즘 너무 경기가 나빠 타 업체를 쉽게 소개해주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욕 듣기 십상이라….” 최 대표가 전하는 중랑구 일대의 봉제 분위기는 굉장히 어두웠다. 인근 공장의 태반이 오더가 없어 놀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 동대문 시장 쪽 매출이 저하된 데 따른 시장 발 오더 감소 등의 요인으로, 해당 물건을 봉제하던 공장들은 오더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편 현장에 방문한 기자의 눈에는 명주사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명주사 최인재 대표

곳곳에 작업물이 쌓여 있고 작업자들의 분위기도 그렇게 어둡지 않았던 것이다. ‘공장을 보니 여기(명주사)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언급하자, 최 대표는 브랜드 발 오더를 두 군데 정도에서 받고 있어 아주 어려운 형편은 아니라고 답했다. 요가복은 운동복 중에서도 실내복이라 꾸준히 판매가 되어, 이 시기에도 수요가 있다고 한다. 또 브랜드 발 봄 상품 오더도 준비중이라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시기에는 많이 놀았어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계속 공장을 쉬었거든요.” 이번 겨울에는 오더를 줄 업체들을 구해서 그나마 ‘겨울나기’가 다른 해보다 편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다른 시기에 벌어서 겨울에 다 까먹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정현섬유 작업현장

시장 쪽 물량을 작업하는 업체와 브랜드 쪽 물건을 작업하는 업체들은 각기 장단점이 있지만 시장 발 오더를 작업하는 업체들이 브랜드 오더를 작업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장 오늘내일 나가야 하는 물량을 작업하면서 브랜드가 요구하는 샘플 작업이나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시기에는 니트 하는 업체들이 그나마 활발하게 돌아갑니다. 그마저도 올해 경기가 눈에 띄게 악화된 바람에 아마 ‘잘 된다’고 말하는 공장은 거의 없을 겁니다.” 명주사를 뒤로 하고 잠시 같은 건물 지하층에 있는 원단업체 정현섬유에 들렀다.

봉제공장 외에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어 두면 조금 더 다양성 있는 취재가 될 성 싶었다. 사장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고 사무실에 앉아 있던 직원과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봉제기술 기자라고 소개하고 말을 걸자 흔쾌히 취재에 응했다. 잠깐 들은 이야기는 앞선 공장에서 들은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더가 없고, 돌리지 않고 내버려 두는 장비가 많으며 경기가 근 10년 이래 최악이라고도 했다. 비용은 자꾸 오르는데 단가는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라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돌아가지 않는 장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풍경이 눈에 밟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요가복, 수영복 등 오드람프 작업 전문업체 아린스포츠(대표: 황명섭)다.

아린스포츠

‘오바사, 미싱사, 시다 구함’이란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간 업체였다. 2층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황명섭 대표 혼자 기자를 반겨줬다. 금요일 오후 네 시 반 정도 되는 시각이었는데 작업자는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오늘은 아예 일을 쉬었다고 했다. 작업할 물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열다섯 명 정도 직원을 두고 있었으나 지금은 크게 줄고 인력이 모자라면 객공을 쓴다고 했다. 커피를 놓고 마주 앉았는데, 커피를 입에 대기도 전 황 대표는 정부 당국에 대한 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봉제업체가 다 죽어날 겁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특히 인력 운용에 관한 문제였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령화되어 생산성이 떨어진 작업자에게도 다른 작업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줄 수밖에 없어 인력 운용에 차질을 불러온다는 게 황 대표의 지적이었다. 황 대표는 또 실업 급여에 대한 다소 충격적인 세태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공장에 다니다가 그만 둔 뒤 다른 공장에서 일하며 실업 급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작업자들은 소득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에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합니다. 또 다른 봉제공장 사장들을 만나 취직을 빙자해 명함을 얻고, 실업 급여를 감독하는 공무원에게 그 명함을 제출해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렇게 실업 급여를 타는 거죠.”

그는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작업자들이 공장주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라고 언급했다. 원래라면 임금지출로 계산되어야 할 금액이 공장주 본인의 소득으로 잡히면서 상당한 세금이 발생한다는 거였다. 또한 소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3.3%의 세금은 고용주가 내야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연말정산·소득공제 등으로 환급되는 금액은 원래 명의자한테 돌아간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황 대표는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정부 당국의 정책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객공으로 쓰던 한 작업자가 몇백 장에 달하는 물량에 불량을 내고 그만둬서, 불량 물량을 손보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었습니다. 저는 손실이 난 만큼 임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했는데, 문제는 해당 작업자가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로 신고를 한 겁니다.” 황 대표는 임금 지불을 독촉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임금의 경우 별 다른 수 없이 지급해야하는 형편인 반면, 작업자가 낸 손실 부분은 민사재판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큰 기업의 횡포를 견제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이 실제로는 영세업체들의 목을 죄고 있는 겁니다.”

금산실업 작업현장

문 닫는 봉제업체들이 워낙 많아 중고 재봉기 가격이 헐값이 됐다며 본인이 새로 들인 재봉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품을 사려면 몇 백만 원을 줘야하는 미싱을 중고로 40만 원에 들여왔다는 것이었다. 재봉기를 마지막으로 보고 공장을 나왔다. 이 날 취재는 황 대표가 마지막이었다. 다시 취재에 나선 것은 월요일 오후로, 상봉로 끝 삼거리에 위치한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금산실업(대표: 박근홍)을 방문했다. 79년도부터 봉제업에 몸을 담근 박근홍 대표는 처음에는 혼자서 봉제를 하다가 기계업체(세한정밀)에 잠시 근무했고, 그 뒤에는 나와서 공장을 차렸다고 했다.

직원은 15명 정도. 박근홍 대표에게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이 없느냐고 묻자 역시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건 최저임금과 인력 이야기였다. “기능자가 아닌 작업보조(소위 말하는 시다)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가 골칫거리입니다. 최저임금을 작업보조자에게 적용하게 되면 임금이 기능 미싱사가 받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 되어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최저 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니 다들 어려워하는 거지요. 젊은 인력이 양성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딜가나 이런 이야기는 다 들으실 거예요.” 박 대표는 회원 14명 정도 되는 봉우회 모임에 나가면 만날 때마다 이 문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상황은 굉장히 심각한데, 정부에서는 쳐다도 안 봅니다’라고 체념 섞인 한마디를 하기도 했다.

금산실업 박극홍 대표

“오더도 힘듭니다. 원래 브랜드에서 70%는 여타 외국, 20%는 중국으로 보내고 10%만 국내에 돌리는데, 국내가 심각해요. 지금 놀거나 문 닫아놓고 제대로 작업하지 못하는 업체들이 엄청 많잖아요.” 금산실업은 데상트 오더를 주로 받고 LG패션, 프로모션 물량도 작업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 남는 것은 아주 소량이거나 까다로운 물량입니다. 작업은 까다로운데 단가는 싸고, 힘든 물량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마저 못 해서 한 달 어영부영 쉬고 빚내어 월급을 지급하게 되면 석 달은 회사가 휘청휘청 합니다. 배운 게 봉제라 계속하고 있는 거지….” 박 대표는 10월, 11월에 특히 오더 가뭄을 겪는다고 했다. 다른 업체들은 지금도 일을 못 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그래도 금산실업의 경우 10년 동안 데상트 쪽 프로모션을 같이 해서 물량을 조금이나마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TK어패럴 작업현장

“수상한 업체로부터 오더를 받았는데 돈을 떼먹혀서 자살하는 사장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아주 처음 보는 업체가 와서 일을 맡길 때는 잘 안 하려고 합니다. 느낌이 이상하면 노는 경우가 생겨도 일을 안 받는 거죠. 아무래도 의심이 생기는 겁니다.” 금산 실업을 나와서 들린 곳은 TK어패럴(대표: 박준형)이다. 상봉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면목역 쪽으로 꺾기 전 발견한 업체였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준형 대표와 그의 부인, 단 두 명만 보였다. 재봉기만 열 대가 넘어 보였는데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일이 잘 될 때에는 직원을 14명까지 뒀었는데 지금은 인건비를 맞출 수 없어 다 정리했다고 했다.

TK어패럴 박준형 대표

현재는 박 대표와 아내 두 명이서 회사를 꾸려간다는 이야기였다. 박 대표는 97년부터 공장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부터 면목동 인근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 공장으로 옮긴 건 10년 전이다. ‘공장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IMF가 터졌을 텐데 괜찮았느냐’고 물어봤는데, 당시에 일본으로 수출을 하고 있어서 지금보다 상황이 오히려 더 나았다고 한다. IMF가 터지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니 수출하는 박 대표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좋았다. 물건을 가져가는 입장에서는 단가가 줄어드는 셈이라 물량이 많이 나갔다고 했다. 일본과 거래할 때는 수요일과 토요일 양 일에 물건을 보내야 해서 인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인건비를 맞추기 어려워지면서 인원을 점점 줄였고, 지금은 직원이 한 명도 없고 아내와 함께 일을 해나가고 있다. 공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는 일이 된다고 한다.

“시장 쪽은 단가를 맞춰줄 수 없어서 브랜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저희 둘만 작업을 하고 바빠지면 객공을 불러서 씁니다. 인건비를 맞출 수가 없어 직원은 안 두고 있지만 저와 아내 두 명으로 공장을 유지하는 건 가능합니다. 일하는 만큼 벌어가는 거지요.” 박 대표는 다른 곳도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이번 탐방에서 취재했던 업체들은 대부분 사전 연락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방문한 곳들이다. 다음 날 방문했던 에이치에스 컴퍼니(대표: 김한섭)도 그랬는데, 사가정역에서 면목역으로 가는 큰길을 걷다 옆 건물의 각 층별 안내 표지판에 ‘○○어패럴’이라는 표지가 있어 지하로 내려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봉제 업체였다.

에이치에스 컴퍼니 작업현장

김한섭 대표는 봉제업계에 발을 디딘지는 30년, 공장을 시작한 지는 20년차인 봉제인으로 청바지를 주 품목으로 다루며 현재 직원은 20명을 두고 운영한다. 여태까지 방문했던 공장들보다 공장 규모도 조금 더 컸다. 고가 브랜드, 중저가 브랜드, 신생 브랜드 등 다양한 곳에서 오더를 받고 있으며 한 곳을 꾸준하게 하는 건 아니고, 받는 곳은 그때마다 바뀐다고 했다. “오더를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매해 오더가 감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작업자들의 기능은 고령화로 등의 요인으로 떨어지고 있고, 인건비는 상승 중이죠. 다 아시잖아요. 폐업하는 곳도 많이 생기고…….”

‘올해가 특히 힘들지는 않느냐’고 했더니 김 대표는 7~8년 전부터 매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상황이 꾸준하게 악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더 오르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저희 공장에는 고령의 기능공도 있고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시는데, 이 분들에게 상승한 최저 임금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뜩이나 오더가 점점 더 줄어들고 단가도 낮은 데 생산성이 비교적 낮아진 기능공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입니다.” 김 대표도 현재 겪고 있는 제일 큰 어려움은 인력, 임금 문제라고 답했다.

에이치에스 컴퍼니 김한섭 대표

“할 때까지 해보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항상 그런 마음이 커집니다. 어떻게든 해서 같이 가야지, 이런 생각도 하지만, 자꾸 이렇게 되어 가면 저희들에게는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김 대표는 봉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어차피 사람 손으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였다. 다만 10명, 20명 규모의 업체들의 인원이 자꾸 줄고 줄어서 결국 2~3명이 운영하는 공장들만 남을 거라고, 김 대표는 그렇게 예상했다. 사가정역부터 면목역을 지나 상봉역까지 이어지는 ‘면목로’를 계속 걷다가 도중 여성 셔츠를 주 품목으로 하는 비젼어패럴(대표: 차종락)도 방문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서 공장 안에 들어서니 대략 일곱 명 정도가 작업중이었는데, 차 대표에게 직원 몇 명을 두고 있냐고 하자, ‘직원이 어디 있느냐’라며 ‘다 잠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 쪽 오더를 작업한다고 했는데, 현재 동대문시장 쪽 매출이 워낙 좋지 않아 본인도 일이 없다고 했다. “봉제는 임대료, 인건비 싸움인데 오더가 없어지고 인건비가 오르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객공을 써도 문제가 많습니다. 월급 주고 직원을 두는 것 보다 시간 당 임금은 더 많이 드는데, 실질적으로 임금만큼 제 몫을 해주는 객공은 적어 문제가 됩니다.” 비젼어패럴을 나와 면목로를 통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다. 도중 ‘한신파출부’라는 간판이 눈에 띄어 걸음을 멈췄는데, 벽에 붙은 표지의 내용은 이랬다.

‘한신직업소개소, 쓰실분-하실분, 여성 파출 전문, ……, 공장분야 삼봉사 오버사 미싱사 재단사 공장보조 시다…….’ 별 생각없이 지나치려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건물 2층으로 올랐다. 인력 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공장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에서는 직업소개소 대표 혼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명함을 내밀자 대뜸 하는 말이 ‘지금 일이 없습니다’ 였다. 조금 더 자세히 묻자 구체적인 내용은 이랬다. “아는 공장들이 몇 군데 있는데 일감이 없어서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가 없는 겁니다.”

비젼어패럴 작업현장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아직 봉제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원의 절대적인 숫자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장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실력이 덜하거나 나이가 많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원이라 하더라도, 보다 적은 임금으로 쓸 수 있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일정 이하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원은 아예 고용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문제가 된다. 공장의 입장에서는 인상된 최저임금만큼 생산성을 갖춘 인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공장에서 ‘쓸만한’ 인력이 없다고, 젊은 피의 수혈이 안 된다고 자꾸 지적하는 것은 봉제 공장에서 원하는 수준의 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젊고 숙련된 기능공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직업소개소를 나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코트·재킷 생산업체 카치토(CACHITTO, 대표: 이지훈)였다.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단 작업을 하고 있던 이지훈 대표는 처음에는 바쁘다며 쫒아내려는 기색이었지만, 기자가 탐방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화를 시작하자 작업을 하면서 기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지훈 대표는 봉제업계에 발을 들인지는 40년 정도가 되었다고 했는데, 공장을 직접 하기 전까지는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카치토가 맡고 있는 물량은 인터넷 비중이 높고 LG패션쪽 오더도 작업한다. 직원은 열 명 안팎이다. 그는 ‘여태까지는 크게 어려울 것 없었다’고 언급하는 등 비교적 최근까지는 공장 운영에 큰 애로사항이 없었다고 밝혔으나, 최근 경기 악화 및 최저임금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치토 작업현장

이 대표는 비교적 잘 버티고 있지만,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으로 경기가 악화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바람에 동대문·남대문 등 소비자시장 같은 경우엔 ‘전멸’에 가깝다고 했다. 인력에 대한 언급도 했는데, 공장들이 인원 고용을 안하니까 월급제로 다니던 사람들이 다 일당제, 객공으로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객공은 시간 당 임금이 월급제 직원보다 높게 들어 결국 임금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중랑패션봉제협동조합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데, 모임에 나가면 항상 대화의 주제가 임금, 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카치토 이지훈 대표

12월 달까지는 아직 버티고 있는 공장들이 많지만, 내년이 되면 공장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다소 특이한 사명(CACHITTO, 카치토)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이 대표가 전하고 있는 브랜드의 이름이라고 했다. 일본에 인터넷 판매의 형태로 판매되며, 오더가 없는 와중에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인데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아예 놀았을 시기에도 사정이 좀 낫다고 했다. 이 대표는 “무분별한 해외생산에 문제가 있다”며 국산 제품과 외국 제품의 가격 차이가 전혀 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 생산과 해외 생산한 제품은 제품의 퀄리티가 확연히 다른데, 둘 다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거였다.

그는 해외 생산을 했으니 가격을 낮추거나, 반대로 국내 생산품의 가치를 높게 쳐 줘야 한다고 했다. 카치토를 나서 상봉역 인근까지 걸어갔다. 역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오른 쪽으로 길을 틀어 아동복 전문업체 다보어패럴(대표: 김도빈)을 찾았다. 이 역시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는데 김도빈 대표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김도빈 대표는 ‘블루독’ 등 서양물산 브랜드에 물건을 납품하며, 이외에도 하는 작업이 있지만 브랜드 쪽에 일을 치중한다고 했다. 공장 내에 직원은 3명 정도로 보였다. ‘브랜드 오더를 받으면 다른 곳보다는 사정이 좀 낫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곳의 오더가 50% 감소했다면 다보어패럴의 경우 20~30% 정도 감소한 거라고 했다.

다보어패럴 작업현장

“기존에 하던 물량이 100%라면, 110%만 되도 사실 벅차고 80%가 되면 무척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더가 50%까지 줄은 곳은 아마 지옥을 겪고 있을 겁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아동복 같은 경우 예전에는 아이들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예 아이들이 없어서 수요가 감소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4명 정도로만 정직원으로 둬서 재단, 완성 작업을 하고 실질적인 봉제는 대부분 2~3명 정도의 소규모 공장으로 돌린다고 한다. “공정이 다섯 공정이 있다고 하면, 처음 공정과 마지막 공정만 제가 관리를 하고 나머지 세 공정은 외주를 통해 맡기는 겁니다. 그러면 외주 작업은 사업소득 3.3%만 생각해도 되니까 4대보험, 인건비, 야근 문제 이런 것들에서 자유롭고 지출로 잡히니까 세금도 덜 맞아요. 인력을 제가 데리고 작업을 하면 인건비 이런 것들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일정 인원을 가지고 일을 하면 어떨 때에는 일이 적어서 인원이 낭비되고, 어떨 때엔 일이 많으니까 객공을 불러다 써야 해요. 그런데 외부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분들은 평소엔 자기 일 보면서 일하다가 필요할 때는 늦게까지 일하는 식으로, 일을 조정할 수 있으니까 인력을 데리고 일할 때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듭니다.” 그는 약 15년 전부터 위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했다. 그래서 비교적 원활하게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최근 들어 이와 비슷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업체들은 아직 그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영주패션 작업현장

“또 제가 하고 있는 품목은 아웃도어라 다소 이런 시스템을 적용하는 게 수월한데, 티셔츠 같은 간단한 품목의 경우엔 빠르게 만들어내고(공정 개수가 적고) 개당 단가가 낮아 해당 방식을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이 날 취재는 다보어패럴을 뒤로 하고 마무리했다. 다음 날 상봉역에서 내린 뒤 다보어패럴과 동일한 건물의 골프티셔츠 등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영주패션(대표: 정혜연)에게로 곧장 향했다. “다 마찬가지에요. 그나마 저희는 조금 돌아가는 거고…….” 직원은 열두 명인데, 정규로 두고 있는 인원은 거의 없고 인터넷 오더를 주로 받는다고 했다.

그 전에는 브랜드 물건을 봉제했다고 한다. 정 대표에 따르면 2010년 초반까지는 브랜드 오더만으로도 수량이 꽤 됐는데, 그 이후로는 해외로 오더가 거의 빠져나갔다. 재작년 기준으로는 800장 이상이면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그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정 대표가 거래하는 주 쇼핑몰은 훈스(HUNS)다. 인터넷 오더는 어떻게 계속 받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처음 시작부터 ‘훈스’의 주 거래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처음부터 갑자기 저희가 주 거래처가 된 건 아니었고, 메인공장에서 오더를 다 소화하지 못하면 2차, 3차로 오더를 받는 그런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1년 전 쯤에 원래 메인으로 거래하고 있던 공장이 거래조건 등의 이유로 물량을 튕겼는데, 쇼핑몰 측에서 그 업체를 안 잡고 저희한테로 그 물량이 오면서 메인 거래처가 된 겁니다.” 최근 겪은 애로사항은 없냐고 묻자, 퇴직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고 했다. 4대 보험을 들고 퇴직금을 주는 경우에 기능 작업자 임금이 160만 원 선이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200만 원 선에서 월급을 주는데, 보통 이 금액은 퇴직금을 포함한 금액이라 추후 따로 퇴직금을 지불하지 않기로 하고 고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을 그렇게 합의해놓고는 마지막에 가서는 퇴직금을 요구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한 번 그렇게 당하니까 빼도 박도 못하겠더라고요. 고작 한 번인데 타격이 컸습니다.”

또 한창 성수기에 결근하는 경우도 애로사항으로 언급했다. 성수기 때 하루 빠지면 작업자는 자신의 일당만 제하면 되지만, 공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 2~3배의 손해가 난다는 이야기였다. 성수기 때 벌어야 비수기 때도 월급을 줄 수 있는데 비수기 때는 결근하지도 않는다며 정 대표는 웃었다.

숨 가쁘게 봉제업체 탐방을 마쳤다. 사전 섭외에 다소 어려움을 겪어 대부분의 업체를 현장에서 즉시 섭외해 취재했으나, 흔쾌히 맞이해준 많은 업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