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人 | 이건희 | 대진어패럴 대표

동대문시장을 일컬어 ‘한국의 패션밸리’라 했다. 각종 의류, 가방, 신발을 비롯, 봉제 원부자재, 액세서리의 원스톱 쇼핑 인프라를 갖추고 한국을 넘어 글로벌 패션디자인 허브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H&M, ZARA, UNIQLO로 대별되는 SPA브랜드의 약진과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 그리고 중국산 의류의 대거 유입은 동대문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이 여파는 동대문시장과 인접해 있는 소규모 의류공장에 밀어닥쳤다. 동대문시장에 젖줄을 대고 살아가는 많은 봉제인들을 맥빠지게 만들었다. 어딜 가나 일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하루 걸러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은 그나마도 다행이라 했다. 원단을 싣고 봉제골목을 누비던 오토바이 행렬도 뜸해졌다. <편집자주>

기자는 최근 한 재봉기공급점 J대표와 어려워진 업계 사정을 주고받던 중 귀가 번쩍 열리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거래처인 봉제공장을 노크하면 첫 인사가 십중팔구는 ‘죽을 맛이다’ 내지 ‘너무 힘들다’고 해 덩달아 기운 빠지는 경우가 잦은데, 중구 신당동에 있는 ‘대진어패럴’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재봉기 돌아가는 소리부터 무척이나 기운찹니다. 경험상 쌩쌩 돌아가는 공장이란 감이 팍 오죠. 재봉기를 비롯 생산에 필요한 주변기기의 자동화 레벨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도 사장의 밝은 표정과 봉제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가 마치 딴세상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궁금했다.

총체적 난국에 무엇이 그를 지탱하게 하는지. J대표로부터 연락처를 건네받아 전화 버튼을 눌렀다. 기자의 방문 요청에 밝은 목소리로 흔쾌히 응했다. ‘대진어패럴’은 남녀 상의 토탈생산업체로 동대문시장과 인접한 중구 신당동, 전철 청구역과 신당역 사이 다산로 35번길에 자리한 5층 건물에 입주해 있다. 2층과 3층을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약속시간에 맞춰 3층 사무실로 들어섰다. 패턴캐드 작업 중인 직원이 기자를 맞았다.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선 이건희 대표와 수인사를 나눴다. 듣던대로 표정이 밝다. 공장 한 켠에 마련된 구내식당 겸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이 대표와 마주앉았다. 그가 봉제에 발을 들여놓은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옷 만드는 과정을 보며 자랐죠. 부모님께서 의류 봉제업을 해오셨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공장을 드나들며 나라시(연단) 작업을 돕기도 했어요. 한때 아버지께선 보세의류 쪽에 손을 대다 부도를 맞아 큰 충격에 빠졌던 모습도 지켜봤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신 터라 아들이 봉제 일을 가까이 하는 걸 무척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지금껏 부모님께서 저 이거 하는지 모릅니다. 패턴사무실만 운영하는지 아세요.” 그럴수록 봉제를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건희 대표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옷 만드는 매력에 점점 빠져 들었다.

논스톱으로 디자인 제품 개발 및 생산이 가능

캐드 패턴실

“시장제품 공장에 들어가 재단보조로 시작해 봉제 일에 본격 덤벼들었죠. 군 제대 후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패턴이라는 생각에 라사라학원에 등록해 패턴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 외가쪽에 패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패턴이 낯설지 않고 재미가 있었어요. 재미있다보니까 자연스레 관련 서적을 자주 찾게 되고 책을 쓴 저자를 찾아가서 배우기도 할 정도로 나름 열정이 있었습니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개인지도 받으러 다니며 입체패턴도 익혔습니다. 너무 깊이 빠져들다보니 나도 패턴 관련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기더라구요. 이후 브랜드 일을 할 것인가, 시장제품 일을 할 것인가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좀 더 일을 빨리 배우고 싶은 욕심에 시장제품 쪽을 택했습니다. 옷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만들어지고 옷의 포인트는 어딘지, 어디 포인트를 살려줘야 되는지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옷을 이해하는데 있어 최고의 스승은 ‘시장’이었죠.”

이 대표는 30대 초반에 패턴사무실을 오픈, 독립했다. 오너와 패터너의 꿈을 동시에 실현하게 된 것이다. 패턴과 샘플작업을 대행하면서 점차 제품생산라인 구축에 몰두했다. 자동화 생산설비를 하나둘 들이면서 동대문 시장권역에서 알음알음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공장으로 입소문이 번져 나갔다. 동대문시장에서도 비교적 퀄리티 레벨이 높은 ‘’제평’과 ‘에이피엠 플레이스’ 오더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1억원대를 홋가하는 첨단 다운주입장비를 도입했다. “주변 분들이 들여놓은 다운 주입기를 보며 쑥덕거리더군요. ‘거금 들여 설치해 놓았는데 언제 사용해서 본전을 뽑을려나’ 하고요. 제 생각은 여기서 함께 일하고 있는 식구들과 오래 같이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자면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어야지요. 시장에서 만난 다운재킷이 유명브랜드 못지않다는 걸 품질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설비를 제대로 갖추면 일감도 따라온다고 봅니다. 힘든 시기지만 오너가 재투자하는 것을 보면 직원들도 힘이 날 것입니다.”

 

-소량오더 토탈 생산에 최적화
시장제품 특성상 오더는 소량으로, 평균 칼라당 20장 정도다. 퀄리티가 있고 공정이 까다로운 일감은 기간을 좀 더 주기도 한다. 생산이 빨리빨리 되지 않기 때문에 칼라당 기본 40~50장 정도 오더도 있다. 동대문시장 제품이 주력이나 인터넷 쇼핑몰과 개인브랜드 제품도 생산한다. 지금 저희한테서 나오는 물건은 흔히 생각하는 시장퀄리티를 넘어선다. 그러다보니 객공은 쓸 수가 없다. 숙련도가 A급인 월급제 작업자로 짜여져 있다. 이래야 뭘 집어넣어도 돌아간다. 소량오더에 최적화되어 있다. 갑자기 대량오더가 투입되면 생산 흐름이 흐트러진다. 그 일을 끝내면 뒷 일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렇기에 적당한 양으로 아이템을 늘려가며 하는 시스템이다. 양이 많을 경우 협력공장으로 돌려 처리하기도 한다.

– 사이클 빠른 시장제품에 눈코 뜰새 없다.
원단이 들어와 일주일이면 완성되어 매장에 걸려야 한다. 아이템에 따라 3~4일에 끝내야 하는 것도 있다. 일요일에 디스플레이 해야할 경우 토요일에 다 끝내지 못하면 DP용으로 몇 장만이라도 먼저 만들어 보내야 한다. 이런 것들은 공장 입장에서 굉장히 스트레스이고 마이너스다. 시장제품이 보편적으로 다 그렇다. 그것도 못해주면 공장을 바꿔 버리겠다 으름장이다. 이러다보니 하루 평균 수면이 5시간 정도다. 월급직원들은 제시간에 퇴근하지만 저는 남아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가는 시장제품이 너무 힘들어서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보고도 싶다. 그러나 경기 탓인지, 기존 브랜드 제품하시는 분들이 꽉 잡고 있어 연결이 쉽지않다. 세컨 브랜드라도 나오면 소개를 받고 싶으나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 제품퀄리티는 생산설비 수준과 비례한다.
시장제품을 만드는 공장들은 시장경기가 안좋을 때마다 좀 더 길게 갈 수 있는 큰 거래처를 잡을려고 한다. 그런 곳일수록 아이템의 퀼리티나 스타일 수준은 당연히 한수 위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들 공장의 생산설비부터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의류제품의 퀄리티는 저만치 앞서고 있는데 생산설비는 제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다면 문제다. 제대로 갖춰져 있을 때 기회도 온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에서 주위 공장 하시는 분들에게 최소 투자 설비들을 알려주면 투자하길 꺼린다. 확신이 서질 않는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무엇이든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먼저 필요하다. 경험하면서 잘못되는 것을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 내가 뭘 더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 공장 역시 객공을 쓰고 있다면 아마도 생산설비투자를 덜 했을 것이다. 거래처는 점점 더 고급 원단을 쓰게 되니 봉제 퀼리티에 신경 안쓸 수가 없다. 설비투자에 욕심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 봉제인력, 고령화로 기술 단절 우려
인력 구하기가 쉽지않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40대 후반도 찾아보기 힘들다. 50대 중후반에서 60대 초반 분들이다. 이 분들은 앞으로 10년 넘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저 역시 5년, 10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이들과 함께 힘껏 달려 볼 것이다. 고령화로 인한 봉제기술 단절이 우려된다. 인력에 관한 한 당장은 뾰족한 답이 없는 게 문제다. 지금도 인력이 많이 부족해 근무형태가 일당제로 바뀌기는 분위기다. 요즘 주 52시간이다, 최저임금인상이다 해서 공장문 닫고 장사로 돌아서는 분들도 많다.

신당동으로 토탈의류 공장 유입
신당동 지역은 저희같은 토탈 의류공장이 별로 없었다. 중앙시장, 왕십리 쪽에 흩어져 있던 다이마루는 월곡동, 중곡동 쪽으로 이동했고 아현동, 회현동 일대 재개발로 그쪽에 있던 토탈패션 공장들이 신당동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단추구멍 뚫고, 단추 달고 마무리(시아게) 아이롱하는 부분공장은 여전히 많다.

– 샘플팀 운영, 디자인 제품 개발 및 생산 가능
일단 저희 공장에 상담 오시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잘 할수 있는가를 궁금해 한다. 다음으로 현장에서 하는 옷들을 보여달라고 해서 살펴 본다. 퀄리티를 나름대로 보게 된다. 그다음에 품목들마다 기본 공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자신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이 어떤지 묻는다. 그렇게해서 본인들이 스스로 할수 있겠다 없겠다를 판단하는 식이다. 공장에 일감을 맡기려는 분들은 하나같이 제일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봉제 품질은 뒷전이다. 이른바 ‘보물찾기’다. 이런 생각은 이젠 버려야 한다. 저희 공장에서 현재 생산 가능한 아이템은 재킷, 다운, 핸드메이드, 덤블 링킹작업, 블라우스, 팬츠, 스커트 등 20~40대 여성복 위주이다. 우븐 토탈 작업 및 디자인 패딩 작업, 우모 주입장비를 갖추었으며 공장 내 캐드 샘플 시스템을 두고 샘플팀을 별도 운영해 논스톱으로 디자인 제품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하다.

[인터뷰 : 차세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