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뷰 | 박수홍 | 베이글랩스 대표

스마트 줄자, 치수 재는 가장 쉬운 방법

줄자로 쉽게 치수를 기록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신체나 의상의 치수를 줄자로 기록할 때, 보통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첫째, 줄자를 댄다. 둘째, 수치를 눈으로 읽는다. 셋째, 수기나 키보드 등으로 데이터를 기록한다. 이렇게 글로 옮겨 놓으면 치수 기록은 간단한 과정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치수를 측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둘레를 재고 난 뒤, 수치를 눈으로 읽으려면 손을 움직이거나 눈높이를 줄자에 맞춰야 한다. 수기나 키보드로 기록하려면 줄자를 내려놓고 다시 손을 움직여야 한다. 한 두 번은 어렵지 않지만 100번, 1000번 반복한다면 금방 피로해진다. 한 명은 측정한 뒤 숫자를 부르고, 한 명은 받아쓰는 2인 1조 방식을 쓰면 그나마 낫다.

그렇지만 조금 더 스마트한 방법을 기대해 볼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베이글랩스의 스마트 줄자, ‘파이’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스마트 줄자’는 굉장히 간단한 아이디어다. 줄자로 잰 정보가 자동으로 컴퓨터 및 스마트기기에 저장된다. 대다수의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아이디어의 심플함은 꽤 특이해 보인다. 측정을 자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하고 떠올리지 않을까? 실은, 베이글랩스를 설립한 박수홍 대표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박 대표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삼성코닝 기술개발팀에서 책임연구원을 거친 기계공학 전문가로, 다양한 재료에 최적화된 설계를 연구하면서 줄자를 쓸 일이 많았다고 했다. 매번 줄자로 길이를 재고, 펜으로 기록하는 과정이 불편해 스마트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찾아보면 그런 제품이 이미 있을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그런 제품이 잘 없더라고요.” 사실 스마트 줄자는 간단한 아이디어이지만, 실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센서가 중요하다. 베이글랩스는 치수 감지 센서를 직접 개발해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간단한 아이디어, 정밀함 섬세함 갖춰 구체화

“광학 눈금 방식은 카메라 센서가 정밀하게 인쇄된 줄자의 눈금을 읽어서 치수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광학식의 문제점은 일단 정밀하게 눈금을 인쇄하는 비용이 꽤 된다는 거예요. 단가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오랜 시간 사용해 눈금이 닳으면 측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내구성 문제도 있는 거지요. 한편 회전감지 방식은 베이글랩스가 직접 개발해 원천기술을 확보한 방식입니다. 눈금에 의존하지 않고 기계식 회전을 감지하기 때문에 측정이 더 정밀하고, 오래 사용해 줄 부분이 닳더라도 해당 부분만 쉽게 교체할 수 있죠.”

그렇게 1세대 스마트 줄자 ‘베이글’이 제작됐다. “1세대 줄자는 일종의 ‘만능 줄자’가 컨셉이었어요. 자로 잰 수치를 스마트기기로 전송하는 건 물론이고, 이것저것 할 수 있도록 많은 기능을 넣었어요. 줄자로 직접 재지 않아도 레이저, 초음파로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당시 1세대, ‘베이글’은 대박을 냈다. 2016년 당시 미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한달 만에 135만 달러를 모금하며 박 대표는 일약 스타 CEO가 됐다. 국내·외 각종 스타트업 관련 상을 받기도 했다. “1세대 제품 ‘베이글’은 상당히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이게 ‘반짝 아이디어 상품’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베이글랩스는 한 번의 성과에 크게 기뻐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시장 조사를 통해 야심차게 넣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능들이 제대로 다 쓰이지는 못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특히 초음파 원격 측정과 같은 기능은 오차 때문에 정밀한 측정에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베이글’은 가정용 DIY 가구, 건축, 산업 현장 등 갖가지 현장을 상정해 개발됐지만 주 고객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부분들 중 실제로 유용했던 것은 일부분이었다. 군더더기가 있었던 것이다.

사용자 반응 토대로 실제 필요한 구체적 기능 갖춰

“조사를 해 봤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어요. 당초 염두해 뒀던 DIY 가구나 건축 같은 분야보다는, 헬스케어나 패션 쪽에서 스마트 줄자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아예 그는 신체 치수 측정에 특화한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두루뭉술한 아이디어 대신 고객의 구체적인 사용 시나리오를 산업별로 분석해, 가장 적합한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것이 2세대 스마트 줄자 ‘파이’다. 파이라는 이름은 원주율 기호에서 따왔다. ‘파이’는 2019년 상반기에 출시됐는데 또한 시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기자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봐도 개인이 작성한 사용 후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다이어트 줄자’, ‘체지방 줄자’로 검색되는데, 소비자들은 신체 수치 측정과 정보 입력을 통해 체지방을 측정하는 등 몸 상태를 관리하는 데 제품을 사용했다. ‘줄자’라는 내용은 같지만 건축이나 가구에 쓸 것을 고려했던 이전 제품과는 다른, 조금 더 좁은 포지셔닝인 것이다.

이렇게 만든 2세대 제품은 헬스케어 용도 이외에도 의류산업 쪽 수요도 끌어들이게 되었는데, 산업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아직 조금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건 2019년 12월에 저희가 출시한 3세대 제품이에요. 의류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계속 반복적으로 치수를 측정하고 기록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편리하도록 최적화되어 있어요. 2세대 제품보다 더 좁은 영역에서 구체화를 시킨 겁니다.” 1세대 제품이 참신하지만 다소 용도가 두루뭉술했던 반면, 세대를 거치면서 3세대 스마트 줄자는 의류산업에 딱 알맞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

“2세대 제품은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보를 스마트기기에 전달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보통 산업용 데이터를 기록할 때는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쓰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스마트기기에 아예 블루투스 키보드로 인식되도록 제품을 만들었어요. 스마트 줄자로 길이를 재고, 버튼을 누르면 설정에 따라 엔터 혹은 탭을 입력하는 겁니다. 일일이 데이터를 옮기지 않아도 어떤 서식에든 바로 기록이 가능해요. 잘못 측정된 기록을 지울 수도 있고, 인치와 같은 다른 단위로 변환해 기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윈도우, 맥, 안드로이드 등 설정만 조정하면 다양한 기기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어요. 원래 측면에 달려 있었던 디스플레이를 사용자가 바로 볼 수 있게끔 전면으로 옮겼고,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둘다 대응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위 아래로 회전시킬 수도 있어요. 양복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줄자 끝을 걸 수도 있고….”

박 대표는 열정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설명했는데,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하나하나 언급하자면 지면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3세대에서도 여전했다. 박 대표가 기계공학을 전공한 탓일까,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위 ‘공돌이 감성’이 제품에서 느껴졌다. 초음파 원거리 측정 등 신기하지만 용도가 애매한 기능 대신, 현장에 알맞은 기능을 채우려고 고심한 흔적이 제품 곳곳에서 엿보였다. 3세대 제품 출시 이후에는 어떤 행보를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도해보고 있어요. 업체들 중에는 측정한 데이터를 사내·외 공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문의하기도 하는데, 이런 수요에 맞춰 치수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해요. 한편 쇼핑몰과 연계해 고객들에게 스마트 줄자를 배송, 직접 신체 데이터를 측정하게 한 뒤 그에 맞춘 커스텀메이드 청바지를 배송해 주는 사업 모델도 구체화해보고 있어요. 사실, 이런 시도들은 다방면으로 뻗어 있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하드웨어 생산에서 나아가, 치수에 관한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신체 치수하면 베이글랩스가 떠오르는, 그런 기업이 되고 싶은 거죠. 요즘은 각종 쇼핑몰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페이스북, 네이버로 로그인하는 시대잖아요? 언젠가는 쇼핑몰 로그인 페이지에서 ‘베이글랩스로 로그인하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의 ‘큰 그림’이라고 할까요. 클라우드 신체 데이터로 로그인하면, 그에 맞는 맞춤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거죠. 이런 로그인은 각 사이트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일부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신체 치수로 로그인해서, 그에 맞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건 상당한 혁신이 아닐까요? ”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