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현지 인터뷰 | 이재철 | Sujin Co., Ltd. 대표

악재 극복하고 생존 가능성 높여야

우븐류 아우터 전문 생산업체인 수진은 이재철 대표가 지난 2017년 하반기 설립한 신생업체다. 800명 가량의 인원으로 가동되는 동사는 국내 내수를 비롯해 일본, 중국 내수 등 다양한 오더를 소화한다. 이재철 대표를 만나보았다. <편집자주>
이재철 대표

⟫⟫최근 미얀마 진출업체들의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요즘 이 지역 봉제업계 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 저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최근 업계에서도 명망 있는 리딩 업체가 복종, 단가, 수량 불문해서 오더가 있으면 받겠다고 재미얀마 봉제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는 SNS 단체방에 내용을 공지한 일이 있다. 미얀마에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이런 업체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황이니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어떻겠는가.

⟫⟫미얀마 봉제에 직격탄이 된 요인으로 이번 겨울의 높은 기온을 꼽기도 한다.
지난겨울 한국에 다녀왔다. 한겨울이었는데 스키장 개장을 안했다고 하더라. 그 때쯤 상해에 있는 지인에게도 연락이 왔는데 그곳도 한참 추워야할 겨울날이 영상 21도라고 했다. 겨울이 아니라 봄 날씨라는 것이다. 보통 상해가 겨울에 10도 정도 되어야 하는데 이상 고온으로 동계 의류가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13억 인구의 중국 내수가 기온 여파로 직격탄을 맞고 있으니 중국 내수 오더를 많이 하는 미얀마 공장들이 힘든 것이 당연하다.

⟫⟫미얀마가 유독 더 어려운 것 같다. 
미얀마는 한국 내수나 일본 오더를 하는 공장이 많다. 특히 한국계 공장들은 80% 이상이 우븐류 아우터 생산업체들이다. 이런 공장들이 60개 이상 되는데 한국과 일본 오더가 경기 침체로 대폭 감소하니까 대체할 것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중국계 공장들의 오더를 재하청 받는 상황인데 이것도 사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예전에 그랬지만 캐파 부족해 다른 공장 찾다가 한국 공장에 넣을 곳 없으면 중국계 공장 찾아갔다. 지금 미얀마는 중국 공장들이 자기들 공장에 캐파 없으면 한국계 공장에 오더 주는 상황이다. 우선 자기들끼리 먼저 하고 안 되면 그 다음에 순서가 넘어온다. 중국 업체들과는 언어적 문제도 있고 해서 비즈니스하기 편한 것은 아니다.

수진은 800여명의 인원으로 우븐 아우터를 생산한다

⟫⟫오더난 이외에 현지 봉제환경의 악화도 많이들 지적하는데…
휴일이 크게 늘어났다. 달력을 보니 올해는 휴일이 무려 84일이나 된다. 갑자기 빨간 날이 이렇게 늘어나면 공장들은 죽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오더는 없고 휴일만 늘어나면 공장들은 라인 돌려야 이윤 나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답답하다. 여기에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오는 5월 14일 최저임금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로 원래 계획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연말 총선과 연결되어 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최저임금 인상 등의 당근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비롯한 포퓰리즘 정책을 마구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집권 세력은 포퓰리즘 정책을 펼쳐도 당장 내적으로는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은 외투기업들이 떠안아야할 문제이지 내국인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저임금도 외투기업이나 철저히 지키지 로컬기업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총선은 현재 문민정부인 집권세력에게도 중요하지만 외투기업들도 중요하다. 만약 이번에 문민정부가 집권에 실패할 경우 당장 GSP 연장 문제가 대두된다. 문민정권 체제가 무너지면 유럽은 GSP 혜택을 더 이상 연장해주지 않을 것이다. 군부세력이 집권하면 유럽 오더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문민정부와 군부의 집권 가능성을 60:40 정도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군부세력은 연정을 제안했는데 아웅산 수지가 반대했다. 그런데 군부 세력은 56년간 미얀마를 집권한 세력이다. 수지가 집권하면서 미얀마가 좋아질 것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했지만 실제 뿌리 깊은 군사정권의 영향권을 쉽게 벗어나진 못했다. 정치 관료의 윗선은 오랜 민주화투쟁을 했던 인사들로 채울 수 있었지만 실무진들은 군부세력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집단으로 당장 교체하기가 힘들다. 결국 행정 실무는 군부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문민정권이 재집권하면 좀 더 좋아질 수도 있지만 급격하게 변화의 물결을 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설립 2년 반을 넘긴 수진은 국내, 일본, 중국 내수 오더를 생산한다

⟫⟫미얀마의 군부 세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
미얀마에도 재향군인회와 같은 조직이 있는데 이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본의 한 신문에서 미얀마내 외투 기업 중 군부와 관련되어 제재 대상이 되는 기업 리스트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제재 리스트는 군부 조직과 연계된 기업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투자기업도 포스코를 비롯해 5개 기업이 포함되었다. 여기에 봉제업체도 한 곳 포함되어 있다. 이 업체는 재향군인회에서 지분을 49% 보유하고 있다. 제재 대상 업체들은 오래 전에 이곳에 투자한 업체들이다. 과거에는 투자 방식이 현지 기업과 합자 형식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이런 지배구조가 아직 남아 있다.

제재 대상 기업들은 지분 구조를 바꾸려고 지분 매입을 시도했으나 그들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기업들의 문제점은 재투자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가 이윤을 재투자하고 새로운 설비도 도입해야 하지만 그들은 이런 부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지분에 따른 이윤 배분에만 관심을 둔다. 따라서 공장의 설비나 재봉기를 교체하려고 해도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장에 설비 투자를 하려고 하면 왜 이윤을 빼돌리려 하냐고 항의한다는 것이다. 공장 내에 자신들이 임명한 관리자도 심어놓았기 때문에 49% 지분에 따른 이익은 철저히 가져간다. 결국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 단독법인으로 투자하는 수순을 밟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이 봉제업체 역시 이런 수순을 밟고 있다.

⟫⟫미얀마에 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
2010년 이랜드 주재원으로 처음 왔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오퍼상을 운영했었다. 미얀마에 온 후 고속승진으로 법인장 직책도 빨리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잠깐 서울 본사에서 일했고 다시 방글라데시 파견을 임명 받았다. 방글라데시 파견은 도저히 힘들다고 회사에 건의해 베트남 하노이 공장으로 갔다. 그런 후 다시 원래 있던 미얀마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 생활을 유지하다가 2년 반 전에 제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마땅한 공장 부지를 얻지 못하다가 지금 이 공장에 터를 잡았고 부지가 모자라 바로 옆에 건물을 임대해 공장 한 곳을 더 가동하고 있다. 임대비 문제 때문에 대형 공장을 못 구해서 지금 형태로 2개 동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현재 약 800명 가량으로 우븐 아우터 제품을 생산한다.

남성 봉제 기능자들도 간혹 보인다

⟫⟫미얀마에서 생활하는데 힘든 점이 있다면?
미얀마에서 거주한 기간만큼 수명이 준다는 말을 제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이 농담처럼 한다. 미얀마는 공기가 좋지 않다. 한국에서 미세먼지 수치가 80을 넘으면 안 좋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140 정도는 일상적이다. 미세먼지 수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 좋다는 설도 있다. 이유는 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특히 몇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공기 흐름이 좋지 않다. 또한 건축, 개발 사업이 많다. 우리는 건축현장에 물을 뿌려 먼지를 잡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아예 없다. 우리는 물걸레로 먼지를 닦아 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먼지를 털어낸다. 수질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최근에는 지하수를 정수하여 먹는 교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기 등 해충이 많은 것도 생활하는데 불편하고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다.

⟫⟫미얀마의 저렴한 인건비에 대한 메리트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하던데…
해외에서 봉제공장을 오래 하신 분이 저에게 해준 말이 있다. 인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 직원들 월급을 맞춰 주지 못해서 낑낑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왜 미얀마라는 먼 이국땅까지 와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느냐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얀마는 공휴일이 많고 오버타임 차지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200%로 높다. 이런 여건으로는 월급 맞춰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공장들이 매일 2시간, 토요일에는 4시간 오버타임을 한다. 오버타임 차지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것이 문제다. 미얀마가 한반도의 3배 면적이고 남한의 7배 면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장을 할 수 있는 곳은 양곤과 인근 지역 밖에 없다. 미얀마의 전체 전력의 65%를 양곤과 인근 지역에서 사용한다.

양곤의 인구가 600만명인데 그 중 절반을 여성으로 친다면 300만명 정도가 된다. 이 인구에서 봉제가 가능한 연령대의 인구를 분류하면 대략 50만명 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양곤 지역에서 봉제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약 60만명이라고 한다. 봉제업에 필요한 적정 가용 노동력을 이미 초과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7~8년 전만 하더라도 미얀마에는 115개 정도의 봉제공장이 있었다. 이중 약 80% 이상이 한국계 공장들이었다. 그 때 봉제업에 고용된 인원이 약 15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계 공장들이 대거 진출했다. 규모와 숫자 면에서 한국계 공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규모 투자를 했다. 이렇다보니 노동인구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니까 수준이 낮은 인력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산성도 낮지만 비용은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매일 아파서 결근하는 직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주로 하는 오더는 어떤 것인가?
원래 한국 오더를 주로 했는데 물량이 줄어들어 작년 성수기부터 중국 업체의 유럽 오더를 재하청 받아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계 봉제업체들이 진출하기 전인 7~8년 전만하더라도 미얀마에서는 대부분 한국계 공장들이 오더를 핸들링 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럽과 중국 내수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 진출한 중국계 공장들이 미얀마 전체 오더의 약 90% 가량을 좌지우지 한다. 중국인들이 90% 오더를 흔들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바이어들이 아시아 지역에서는 홍콩, 상해 등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기 때문에 손쉬운 중국 벤더에게 오더를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모든 자재가 중국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고 특히 수출기업들에게 11% 증치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월등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즘 중국 정부는 해외 사업을 하는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되어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은 거의 중국판이 다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미얀마에 투자하는 중국 공장들을 보면 중국 정부의 지원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케 한다.

중간 공정 아이롱 작업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임금 인상 요인이 있어도 달러 가치가 올라 인상요인을 방어해주기도 했는데 어떤가?
그동안 미얀마는 달러 환율이 임금 인상 요인을 방어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는데 미얀마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최근에는 그런 영향을 덜 받고 있다. 이유는 있다. 미얀마와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국경 무역의 결제 수단이 달러가 아니고 위엔화로 대체되고 있어서 달러 강세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과의 국경무역 뿐만 아니라 경제 관계의 볼륨이 커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고 결국 환율로 인한 임금 인상 요인의 상쇄 효과를 더는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 중국 의존도가 점점 심해져 가는데 어떤가?
우리가 생산하는 주품목인 아우터는 자재가 중요하다. 아우터 자재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아우터 바이어들이 홍콩이나 상해로 발걸음이 늘어나는 이유가 자재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중국 생산업체들이 늘어났고 한국 기업들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봉제기업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과거 수출전선에서 활약하던 봉제 전문가들도 많이 줄어들어 이제 50대 중후반이 마지막 세대가 되고 있다. 봉제에 있어 중국의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는 베트남과 봉제 여건에서 비교되곤 한다.
베트남은 미얀마에 비하면 봉제하기 좋은 나라다. 30년, 50년까지 공장 지을 땅도 임대해주고 기업하기 좋은 제반 환경을 국가에서 밀어준다. 그에 비하면 미얀마는 땅값도 비싸고 건물 임대료도 상당히 높다. 전기 사정도 안 좋고 요금도 비싸고 물류 인프라는 해상운송의 경우 국내를 기준으로 하면 베트남에 비해 10~20일 더 걸릴 정도로 불리하다. 그 모든 불리함을 낮은 인건비로 위안을 삼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곳에 오래 일한 원로들이 요즘 미얀마에서 왜 봉제공장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배운 게 봉제라서 업에서 손을 떼지 않았는데 이제 힘들다고 이구동성이다.

미얀마에서 최저임금이 생긴 것이 4년 전이다. 그 전에는 오버타임을 많이 시켜도 1인당 지급 임금이 35~50불 정도에서 해결되었다. 그 때와 비교해 가공임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제반 인프라도 좋아진 것이 별로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월급만 올랐다는 것뿐이다. 미얀마 봉제의 불리함은 가까운 곳에 베트남이 있다는 점이다. 하노이에 잠깐 있을 때 한 오더의 가공임 문제로 힘든 협상을 한 적이 있다. 하노이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가공임을 제시하며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힘드니 미얀마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시했다. 미얀마라면 이 가격에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계자는 자신이 오너라면 미얀마로 가겠는데 월급 받는 직원인데 굳이 이 물량을 가지고 미얀마로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더라. 미얀마 봉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이런 수준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이런 저런 사정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많은 미얀마 봉제업체들의 고민은 4월까지 어떻게 버티는가에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같이 소규모 업체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각자도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혈안인데 우리 역시 지금 규모에서 최대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아직 출발한지 2년 반밖에 안된 신생업체여서 초기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극복해나가야 한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있을 것이다.

<취재: 이상철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