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박철호 | 나루지퍼 대표 인터뷰

“외주에 만족 못해 염색 공장 직접 만들었죠”

나루지퍼㈜는 서울 금천구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경기도 시흥에 염색공장 및 플라스틱 사출공장을 가지고 있는 지퍼 제작 업체다. 캘러웨이, 잔디로, 다이나핏, 밀레, 트렉스타 등 골프웨어, 아웃도어 브랜드 위주로 거래를 하고 있으며, 빠른 샘플 제작 능력, 높은 품질이 장점이다. 나루지퍼 박철호 대표를 만나보자. <편집자주>

(해당 특집의 다른 기사는 월간 봉제기술 2020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

나루지퍼 박철호 대표

“지퍼를 많이 아는 건 아니고, 다소 겉핥기식으로 배웠어요.”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박철호 대표의 겸손이다. “우리나라 지퍼는 1950년대 중반에 금속 지퍼 체인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원시적인 가내 수공업 형태였는데, 산업화 물결을 타고 발전하기 시작했고, 시설 기계화, 소재 다양화 등을 겪었죠. 1960년대에 한국지퍼가 일본 YKK와 기술제휴를 해서 수출용으로 지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삼도물산이 독일 업체와 손을 잡고 ‘DULON지퍼’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어요. 80년대에는 YKK가 내수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지퍼업체들이 경영위기를 맞았어요. YKK의 국내 점유율이 70%가 넘는 상황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국내 지퍼업계가 자생력 강화에 주력하고, 한국지퍼가 YBS 브랜드로 YKK에서 독립하면서 삼도물산, YBS, YKK 등 대기업들이 내수,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영세업체들이 나머지 시장을 나눠 가지게 되죠. 지금은 삼도물산이 사라지고, YBS도 경영난을 겪으면서 YKK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무역회사 세일즈맨, 지퍼회사에 가다.

박 대표는 80, 90년대까지만 해도 지퍼가 국가에서 밀어주는 대표적인 산업이었다고 했다. 한창 봉제 호황인 시기로, 지퍼가 없어서 못 팔았다는 것이다. IMF가 터지고 나서 원화 가치가 낮아지자, 수출하는 회사들은 더 큰 돈을 만졌다고 했다. “저는 사실 처음부터 지퍼 업계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회사를 설립하기 전 10년 정도는 밖에서 일했죠. 처음엔 무역회사 수입 부서에서 신용장 거래, 통관, 관세 등을 담당하는 업무를 3~4년 정도 일했어요. 그런데 보통, 직장인들이 한 파트를 3년 하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도사’가 되고, 사실 일이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수출파트로 부서변경을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어요. 그런데 수출파트 부서장이랑 이야기해서 ‘가고 싶다’, ‘와라’ 하고 이야기가 됐는데, 정작 원래 파트 부서장이 허락을 안 해줘서 일이 성사가 안된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표를 냈죠.”

시흥에 위치한 염색공정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박대표

박 대표는 한 파트에 너무 정체해 있으면 사람이 나태해진다며, 그게 무척 싫어서 사표를 냈다고 했다. “이후 ‘매크로지퍼’라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출근한 첫날부터 밤을 샜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처음엔 저까지 총 세 사람이 일하다가 규모가 커졌어요. 조그만 신생법인이었지만 ‘진웅’이라는 당시 큰 업체랑 거래하고 있었는데, 세계 텐트의 1/3쯤을 만드는 아주 큰 회사였어요. 미국 월마트에 납품도 하고요. 회사에 항상 인원이 부족했고, 새벽까지 패킹하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어요. 사장이 나중에 열심히 일한 만큼 결산 뒤에 보상을 챙겨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회사에 이익이 많이 생긴 뒤에는 140만 원인가를 장려금으로 챙겨주고 입을 닦더라고요. 곧장 퇴사하겠다고 했죠. 진짜 열심히 일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거예요.” 그 뒤 박 대표는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과장과 함께 회사를 나와서, ‘거봉지퍼’라는 업체에 입사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일 너무 재미있어

“거기에서도 주말 없이 일을 했는데, 그때는 일이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지퍼라는 아이템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아침에 선선할 때 서류작업을 하다가 반바지 갈아입고 패킹하고, 다시 옷 갈아입고 납품 하러가기도 하고요. 일요일엔 교회 갔다가 와서는 경리 업무하고, 자금 짜고. 생산라인에 지시도 내리고요. 직접 가서 기계를 움직이다가 종종 기계를 고장 내기도 하고….” “그 회사도 그만두게 된 건 회사가 베트남 진출을 하려고 했을 때 즈음이었는데, 사표를 쓴건 이제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통장 적금 170만 원으로 안양 석수동 공구상가에 사무실을 차렸어요. 딱 2000년도 7월 1일에 계약을 했죠. 보증금이 170만 원에 월세가 17만 원이었어요. 8평짜리 사무실이었죠.”

염색공정

박 대표는 공장 없이 사무실만 가지고 있는 지퍼회사들이 지금도 많다고 했다. “사실 공장 없이 사무실만 가지고 있는 지퍼회사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 회사들은 보통 ‘제조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 외주로 이뤄져 있는 거죠. 이런 식이에요. 염색되기 전 지퍼를 생지라고 하는데, 다른 회사에서 생지를 납품받아 가져오면 염색소에 의뢰를 하는 거예요. 염색소에서 물건을 찾고 슬라이더도 발주를 내죠. 사이즈 작업을 해야 하면 해당 작업을 해주는 곳에 의뢰를 넣어요. 이게 제조에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직접 안하지만 원자재 사서, 투입해서 완제품이 나왔잖아요. 사실 이런 곳들이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는 곳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요.”

엄격한 품질관리, 염색공장 설립으로 이어져

“저희는 지퍼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염색공장도 갖추고 있는데, 저희가 공장 설비에 투자를 하게 된 계기는 품질관리 때문이에요. EXR, K2, 다이나핏, 살레와, 필라 이런 브랜드들과 거래를 하면서 품질을 따질 수밖에 없었어요. 지퍼 하나 납품하면 보통 이백 원에서 천 원이잖아요. 그런데 옷에 클레임이 걸리면 십 몇만 원을 물어줘야 한단 말이에요. 당연히 저희가 품질을 따질 수밖에요. 사실 계속 검사하고 납품해도 사고가 날 때는 나요. 근데 문제는, 기존 지퍼를 하던 2세대 사장님들이 납기에 맞추려고 품질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지퍼생산 공정

“지퍼 2세대 사장님들은 대개 기술자들이에요.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고집이 세죠. 사실 한 분야를 그렇게 깊게 파고들어가지 않으면 마스터가 될 수 없어요. 고집 세고, 주관 확실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못 올라가고요. 그렇지만 그분들의 단점이 있는데, 물량떼기에 너무 익숙하다는 점이에요. 물량을 맞추려다 보니 품질을 도외시 하는 거죠. 저희가 납품을 해서 클레임을 먹으면, 저희도 원인제공자를 찾아서 클레임을 걸거든요. 지퍼 염색은 굉장히 중요한 공정인데, 염색을 잘못하면 지퍼의 칼라가 원단 쪽으로 넘쳐서 묻어나요. 그러면 그 옷을 다 물어줘야 돼서 타격이 심각하죠. 그래서 염색공장에 클레임을 걸었더니 ‘알았어, 클레임 받을 테니까 다음부터 오지마’라는 반응인 거예요. 거래를 안 하겠다는 거죠. 그게 스트레스 받아서 염색공장까지 만들게 됐어요.”

“회사가 커지게 된 계기는 EXR과 거래하면서부터예요. 사무실을 차리고 그해 9월에 EXR이란 신생 브랜드를 소개받았어요. 없는 돈에 금형도 파고, 12월 달까지 샘플만 하다가 다음 해 1월부터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죠. 지금은 EXR 브랜드가 다소 기울었지만, 당시만 해도 지퍼를 최초로 액세서리 개념으로 사용한 브랜드였었어요.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서 저희 회사도 같이 규모가 커졌죠.”

연구개발 중요해 규모있는 기업이 적절

플라스틱 사출공정

“사실 지퍼는 대기업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퍼는 20세기의 손꼽히는 발명품이고, 의류에 꼭 필요한 부자재예요. 만드는 데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이어서 연구개발이 반드시 필요한데, 사실 소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에는 한계가 있는거죠. 대기업이 자본을 가지고 일으켜 세울 필요가 있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지금은 YKK에게 밀리지만, 결국 나중에는 중국 업체들에게 전부 잡아먹힐 거예요.”

“작년 재작년에 영업부침을 겪었고 올해 코로나 사태도 생기다보니 꽤 어려움을 겪었어요. 염색이나 플라스틱 사출작업도 원래 저희 제품만 했는데, 지금은 다른 지퍼회사 것도 해주고 있고요. 그쪽은 ‘R&D 지퍼’라고 나루지퍼 법인과 분리되어 있는데, 이쪽과 저쪽 모두 나름대로의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거죠.” “저희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어요. YKK 같은 경우 일단 납기가 3개월이 걸려요. 그에 비해 저희는 짧은 납기를 가지고 있고, 샘플작업도 빠르죠. 샘플을 굉장히 금방 만들어요. 팩스를 넣고 오면 도착하자마자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예요. 염색 작업이나 테이프에 이빨을 박는 것도 하루면 충분해요.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