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뷰 | 박지영, 안수희, 이현지 | GMH• 공동대표

디자이너가 직접 봉제까지? 데님 브랜드, GMH•

국내 봉제 장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옷에 정당한 가치가 매겨진다면, 그리고 그 자체가 브랜드가치가 되어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실마리를 GMH•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리미엄 데님 크루 브랜드’, GMH•의 박지영, 안수희, 이현지 공동대표를 소개해본다. <편집자주>

“디자이너 브랜드, GMH•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다. ‘봉제장인과의 협업’, ‘도시재생’, ‘디자이너의 제작공정 참여’, ‘데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품질’, ‘자립’, ‘공정 노동’, ‘청년 봉제’,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는 디자이너 라인’, ‘합리적인 가격’ 등이 그것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쉽게 다룰 수 없는, 묵직한 주제들이었다. 하나의 인생도 여러 가지 측면이 있듯, 브랜드나 기업에게도 여러 가지 면모가 있고 이를 하나의 글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GMH•로부터는 어떤 면모를 부각시켜야 할까. 고민이 되는 대목이었다. “저희 제품의 제작 단가는 사실 SPA 브랜드에서 소비자가로 내놓는 것보다 높아요. 제품 판매가가 8만 원 선인데, ‘사람들이 좋은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진을 높게 잡지 않았어요. 제품은 전부 국내에서, 봉제교육을 통해 인연을 맺은 데님 전문가 분들과 협업해서 생산해요. 한 아이템을 보통 워싱 최소수량에 맞춰 60~100장 만들고, 무신사 등 온라인이나 팝업 스토어 같은 행사를 통해 판매하죠.”

학생 신분에서 곧장 사업에 뛰어든 이유?

박지영, 안수희, 이현지 세 공동대표는 GMH• 설립 이전까지 모두 국내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있던 학생이었다. 학생들이 졸업 전후에 곧장 사업으로 뛰어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창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봉제장인 분들께 직접 데님을 배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거기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브랜드를 시작했죠.” 세 공동대표가 참여한 교육프로그램은 데님 장인인 차경남 ‘데님647’ 대표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소잉마스터 아카데미’ 데님특화교육 프로그램이다. 차경남 대표는 데님공장으로 쓰던 공간을 내어 교육을 진행할 정도로 ‘청년 봉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편 세 공동대표는 학업을 끝낸 뒤 취업하기보다는 본인의 디자인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그 두 가지가 결합해 브랜드로 이어진 것이다.

사무실, 판매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창신데님연구소

“처음 ‘소잉마스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봉제교육이 목적이었지, 브랜드 창업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창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아니었고요. 그렇지만 패션을 배우면 대체로 자기 브랜드를 하고싶어 하거든요. 한번은 데님 교육 중 선생님이 ‘취업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물어봤는데 손을 든 건 3명밖에 없었어요. 인원이 16명이었는데, 반 이상이 브랜드를 하고싶어 했죠. 그래서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브랜드를 시작하기엔 부담이 크니까, 선생님이 지원을 해주시기로 마음을 먹은 거예요.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같이 남아서, 공동브랜드로 진행하기로 했죠.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처음부터 망하지 않을 거고요,”

브랜드가 하고 싶었던 학생들, 우군을 얻다

“교육에 참여하면서 데님을 보는 눈이 크게 좋아졌는데, 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시장에서 유통되는 기성 데님들을 보면 어떤 문제점, 한계가 있는지 눈에 띄더라고요. 내가 배운대로 옷을 만들면 훨씬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만든 데님, 프리미엄 데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안수희 대표)” “원래부터 취업보다는 창업에 마음이 있었어요. 원래부터 캐쥬얼한 데님을 잘 입고 다니기도 했고, 수업을 통해 데님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기도 했고요. 사실 구체적인 플랜은 없었는데, 물 흐르듯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감이 있어요. 기회와 때가 좋아서, 마음 맞는 친구들, 좋은 사람들과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박지영 대표)” “원래 저는 식품영양학과였는데 패션을 복수전공 했거든요. 졸업하면서는 마음이 의류 쪽으로 기울었어요. 그런데 의류 관련 경력이 하나도 없어서, 조금 더 알아야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사실 브랜드 창업 교육이라든지, 다른 교육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같이 시작할 기회가 생기니까, 지금 하지 않으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생겼을 때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GMH•를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이현지 대표)”

박지영 대표는 중성적인 젠더리스 룩을 선보이는 ‘딜레탕티즘’ 라인을 맡고 있다.

사실 ‘소잉마스터 아카데미’에 관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상당히 많다. 서울시 도시재생 부서에서 지원한 사업이기도 하고, ‘봉제지원’, ‘도시재생’과 같은 키워드와 상당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GMH•도 ‘도시재생 사업 성과’, ‘봉제지원 사업 성과’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처음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면 닥칠 수 있는 다양한 난관은 아주 다양하다. 단가가 적당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품질이 안정된 공장이 필요한데 그런 공장은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원단이나 패턴 단계에서 제작을 염두해 두지 않으면 과도한 공임이 나오거나, 공장에서 제품을 제대로 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번 사고가 나면 제품 전체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안수희 대표의 ‘에이프릴풀스희희’는 만우절의 웃음처럼 키치하고 위트 있는 감성을 가진 라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습득해야 하며, 그 과정을 견딜 자금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기는 매우 쉽다. 차경남 대표과 GMH•의 협업은 이런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 됐다. “데님의 패턴, 봉제에 대한 높은 이해가 GMH•의 차별점이에요. 사실 데님은 워싱 등 특수한 부분이 많아 국내 대학 커리큘럼에서 깊이 있게 배우기는 어려워요. 패션과에서는 사실 의류 전반에 걸쳐서 봉제를 한두 번 해보는 정도가 전부고, 대부분 디자인 위주의 교육이죠. 저희는 현업에 계신 패턴, 봉제 선생님으로부터 데님 아이템의 역사, 원단 지식, 데님 디자인, 봉제현장의 중요성을 폭 넓게 배우고 이해했어요. 봉제과정에도 직접 참여해 생산보조 역할을 수행하고, 저희가 제작한 패턴의 피드백도 받고요. 디자인 요소를 설계할 때, 머리로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구현이 안 된다거나, 의도하지 않게 공임이 크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패턴과 제작공정에 대한 지식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제가 생각한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장점이 되죠.”

협업의 이점 컸지만 자금 문제는 난관

이현지 대표의 ‘유일뮤즈’는 몽환적인 감성의 캐주얼 모던 룩이 특징이다.

한편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역시 자금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안수희 대표는 해외 인턴을 준비하면서 모았던 자금을 다 부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생활비, 비행기 값으로 쓰려고 모아뒀던 적금을 다 깨서 사업자금으로 부었어요. 그러면서 나름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부족했죠. 또 수익구조 전환이 빨라야 초반비용이 매출로 이어지고, 그 뒤로 투입되는 비용이 다시 수익을 내는데, GMH•의 인지도가 낮아 한동안은 잘 회전이 되지 않았어요. 사실 지금도 거기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중이긴 해요. 저희는 이게 제품 자체의 문제인지, 브랜딩, 마케팅의 문제인지 한동안 고민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제품에 관해서는 정말 최상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결론이 났고, 마케팅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매출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저희는 제품의 퀄리티 면에서 자부심이 있고, 스토리도 잘 전달했기 때문에 저희 브랜드에 대한 호응은 높은 편이에요. 저희 가게에 찾아오시는 경우 열에 다섯은 저희 옷을 사가시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코로나19 당시 온라인 입점이 된 마켓이 없어서, 매출에 정말 많은 타격을 받았어요. 새학기, 개강, 봄놀이, 벚꽃축제 등 구매의 원동력이 되는 동기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고요.”

작지만 버틸 힘 있는 브랜드, 성과 보여줄 것

코로나19 관련 지원 프로그램이 많지만, 정작 지원을 받는 건 거의 없다고 했다. 아예 예비 창업자나 창업 초기가 아니어서 못 받거나, 업력이 2년이 안 돼서, 고용을 안 해서, 고용보험을 안 들어서, 매출이 떨어졌다는 증명을 못 해서 등등, 지원사업 대상자 기준에 해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해서 좀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서로 ‘우린 옷 팔아서 먹고사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웃음) 지금 목표는 일단 사람들이 다시 옷을 사 입을 때까지, 저희 제품을 알리면서 살아남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위기가 닥치면 큰 기업은 살아남고 작은 기업부터 문을 닫아요.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버틸 수 있다면, 상황이 좋아질 때에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는 앞으로 더 잘될 거라고 생각해요.”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