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 ‘방호복 버블’? 일선 봉제업체 피해 확산

유통 업체의 무리한 중복 오더로 대금 미결제 등 다발적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데…

지난 4, 5월, 코로나19 사태로 일반적인 오더가 급감한 한편, 방호복을 비롯한 방역물자의 수요가 증가하며 기존 오더의 대안이 되는 듯 했다. 특히 해당 시기에 방호복을 생산했던 봉제인들에게서는 ‘일 때문에 바쁘다’, ‘쉴 세가 없다’는 발언이 끊임없이 나왔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붙인 ‘K-방역’이란 이름이 한창 설득력을 얻고 있을 시기였다. 실제로 외국 기업들과 접촉한 업체들이 ‘방역 선도국가’라는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이득이 존재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봉제업체들 사이에서도 ‘가뭄의 단비’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다. 본래 F/W 시즌 준비로 성수기를 맞이했을 봉제업계에 코로나19 여파로 오더가 급감했고, 그 와중에 대량으로 떨어지는 방호복 오더는 이를테면 ‘한 줄기 빛’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방호복 오더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수요가 부쩍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판다’, ‘만들기만 하면 다 나간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고, 따라서 그 사이에 도사리고 있던 위험을 충분히 경고하지 못한 것이다. ‘시장질서가 혼잡해지고 있다’는 언급은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은 곳곳에서 방호복에 뛰어들었던 봉제업체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가뭄의 단비’였던 방호복, ‘골칫덩이’로 발목 잡힌 봉제업체들 한숨 가득

서울 독산동의 S 사는 J사로부터 오더를 받아 방호복 3만 여장을 생산했으나, J 사는 물건의 일부를 찾아간 뒤에 더 이상의 제품 수령을 하지 않고, 1억여 원이 넘는 대금도 결제하지 않았다. 해당 업체 대표는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돈을 빌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업체인 B 사도 대금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사 제보도 여러번 하고, 대금 회수를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해결이 안 되요 해결이.” 방호복을 생산했던 업체들이 납품 이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아예 제품 수령을 거절하고 있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들의 피해 규모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다양하다. 피해를 받은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위에도 피해 사례가 많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1차적인 문제는, 다른 먹거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야말로 ‘너도 나도’ 방호복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방호복은 어디까지나 ‘특수복’으로, 1회용 소모품이긴 하나 1년에 몇 십만 벌 정도가 소비되는 제품이다.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제품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를 영세 봉제업체뿐만 아니라 대형 벤더업체, 중소 유통업체, ‘나까마’로 흔히 불리는 중개상 등 온갖 영역의 사람들이 방역물자 생산, 유통에 뛰어들었다. 또한 ‘물건이 있기만 하면 팔린다’는 인식은 유통업체들이 물량 확보에 안간힘을 쏟는 원인이 됐다.

너도나도 방호복 유통에 뛰어들자 유통업체들 간의 가격 전쟁, 물량 선점으로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됐다.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1선 병원에서 방호복 없이 진단을 수행할 수 있는 부스형 진료소를 광범위하게 도입하며 국내 수요가 점차 잦아들기도 했다. 7월 24일 기준, 국내 코로나19 격리 환자는 9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치료 인력이 입는 방호복의 숫자는 제한적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통업체들이 물량 확보를 위해 여기저기 벌려 놓았던 오더들이 문제가 됐다. 판매 수량을 낙관적으로 예측한 유통업체들의 무차별 오더가 악성 재고를 대량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재고를 처리할 능력이 없자 유통업체들은 대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제품을 수령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비단 ‘나까마’ 등의 중간 유통업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뢰 있는 유통업체에게서도 대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날이 지날수록 시장질서 더욱 혼탁, 관계 당국의 관심이 절대 필요

지난 방호복 취재에서 “계약금을 50% 선입금 받고, 중간 납품 때마다 결제를 받은 후에 마지막에 처음 받은 50%를 물건 대금으로 정리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B사 대표마저도 대금을 일부 못 받은 경우가 있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건 갈수록 시장질서가 혼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품 수령 거절, 대금 미지급 등의 사례는 물론, 방역물자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방역물자가 한창 이슈가 됐던 지난 3~5월, 의료용 방역물품을 상시 구매·비축함으로써 안정적인 국내수요 창출, 관련 산업 활성화와 더불어 방역물품 제조기업에 대한 지원, 경영·금융 컨설팅 등 지속적으로 국내 생산기반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던 바 있다. 국내 방역에 기여하고 있는 봉제업체들에게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백현 기자 bhlee@bobbin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