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뷰 | 이상욱 | 쉐어원프로퍼티 대표

디자이너와 봉제공장 커뮤니티 만남의 장, ‘창신아지트’

특이한 패션업계 사람을 만났다. 디자이너, 봉제공장이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지, 도시설계·공간설계의 관점에서 공간을 구성하고 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상욱 쉐어원프로퍼티 대표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이번엔 조금 특이한 건물주(?)를 만났다. 보통 공간을 임차하는 이가 공간의 목적, 구성, 인테리어 등을 생각하고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봉제공장을 위해 공장부지를 임차한다면 공간의 용도와 라인구성, 내부 장식 등은 전적으로 봉제공장의 책임인 것이다. 한편 여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

“저는 건축학 중에서도 도시개발·계획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대문 패션집적지와 창신동 등 근린 생산기지가 제 관심 분야였죠. 동대문 패션집적지는 전 세계에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경우입니다. 패션 밸류체인이 일정 지역에 집중되어서 시너지 효과가 크고, 빠른 샘플 제작, 빠른 양산이 가능하죠. 동대문에 대한 관심이 저를 패션 업계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창신동 일대에 대한 논문도 여러 편 썼죠.”

동대문 패션시장 흥미 느껴 봉제 관심 도시개발•계획 전공, 창신동 관련 연구

쉐어원프로퍼티 이상욱 대표가 하는 일은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동선과 공간을 설계하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해 부동산가치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저는 패션업계의 각 밸류체인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자주, 끈끈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디자이너와 봉제공장은 같은 패션 밸류체인에 속하면서도 사실 서로 깊은 의사소통을 할 일은 그다지 없다. 대규모 브랜드나 벤더업체에 속한 디자이너는 직접 공장 관계자와 만날 일이 없고,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적당한 공장을 찾는 것은 큰 시련이다. 디자이너와 봉제인이 끈끈하게 소통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연구실의 프로젝트로 출발한 일입니다.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면 패션산업이 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었어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이 됐는데, 쉐어 팩토리를 구성해 봉제 인형 등 오더를 직접 해본다던가,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죠.” 그리고 그 시도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창신 아지트’다. “창신 아지트는 여러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층은 디자이너 열 몇 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고, 2층은 봉제공장이 3개 업체 입주해 있죠. 3층은 팝업 스토어 등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듣기만 하면 ‘그냥 봉제공장과 디자이너를 붙여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갖가지 생각들이 숨어 있다.

창신 아지트의 1층은 디자이너가 입주할 수 있는 공간, 2층은 봉제공장, 3층은 팝업 스토어 등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디자인과 생산, 리테일의 접점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욱 대표는 단순한 공간 제공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다 더 ‘중재자’에 가깝게 묘사했다. “입주 공장이나 입주 디자이너의 숫자만 생각하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3층 공간을 ‘리테일’이라고 묘사하긴 했어도 규모가 큰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디자이너도, 공장들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있어요. 공간 제공자인 저도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고요.” 그리고 이런 커뮤니티들의 선순환 의사소통이, 조금씩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상욱 대표의 설명이었다.

패션 밸류 체인에 속한 각 커뮤니티 접점 추구 시행착오 줄이는 등 서로 도움줄 수 있어

“여기 입주해 있는 디자이너의 대부분은 사실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얼리 브랜드’예요. 신생 브랜드가 직면하는 도전은 생각보다 많죠. 그림에 불과한 디자인이 옷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단계를 거쳐야 하고, 갖가지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노하우도 필요해요. 실제로 경제성을 가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디자인을 어떻게 ‘패턴’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만들어진 패턴을 위해 어떤 원단과 부자재를 고를 것인지 등이죠. 노하우가 없어 잘못된 부자재나 원단을 고르면 필연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견딜 만큼 단단한 자금력을 가진 얼리 브랜드는 거의 없죠. 그런데 이부분은 사실 실제로 제작을 하는 봉제공장에서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에요. 단지 1회성 거래라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이 무조건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잘 되지 않을 옷을 오더 받거나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준다면요. 신생 브랜드 하나 잘 커서 고정거래처가 생기면, 공장에서도 충분히 이득이잖아요?”

“또 공간 제공자인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아무래도 제 분야가 ‘공간’을 다루다 보니 리테일 업계와의 접점이 많거든요. 이를테면 얼마 전에는 입주한 디자이너 분들의 제품을 무인양품 내 팝업 공간에 전시·판매할 수 있도록 주선한 적도 있어요. 판매채널에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죠.” 이상욱 대표는 봉제공장 대표들이 디자이너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수 있을지 회의도 진행한다며, 이와 같은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추후에는 이런 패션 밸류 체인 간의 파트너십, 협업 플랫폼을 개발해볼 계획도 있어요. 1회성 거래가 아니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인 거죠.”

공간 제공자로서 리테일 업계 연결 이해관계자 간 파트너쉽 플랫폼도 계획

여기 입주해 있는 대부분의 신진 디자이너는 여러 작업상의 문제를 노하우를 가진 봉제공장 대표들과의 소통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창신 아지트 공간 내에서의 효율성도 주목할 만하다. 디자이너의 사무실은 보통 원단 샘플, 간단한 재봉기, 레이저 각인장비 등을 들여놓아서 일반 사무 공간보다 필요한 공간이 넓다. 그런데 ‘창신 아지트’에서는 공용 장비실을 따로 마련해 놓아서 필요한 개인 공간의 면적이 상당히 줄어든다. 개인 공간의 면적이 작으므로 각각의 디자이너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사무실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입주 봉제공장 입장에서도 좋은 환경에서 오는 작업에 대한 자존감, 협업, 일감 등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서로 간의 피드백을 일상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장점이죠. ‘이럴 땐 어떤 부자재를 써야 할까요?’라는 식으로, 이웃과의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하고요.” 쉐어원프로퍼티는 패션업계 이외에도 거주를 목적으로 한 공용 생활공간, 다른 업계의 코워킹 협업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 개발의 장점은, 도시설계·공간설계의 관점에서 해당 업계의 공간을 재구성함으로써, 업계 당사자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짚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봉제 산업에 인식 변화 필요성 커 영향력 크지 않아도 변화에 보탬 되길

‘창신 아지트’에서는 공용 장비실(左)을 따로 마련해 놓아 개인 공간의 면적이 작아져 각각의 디자이너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개인 사무실(右)을 꾸릴 수 있다.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 즉 임대업의 관점에서도 기존의 패러다임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원하는 사람이 해당 공간을 빌려서 알아서 채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공간을 구성하면 그 공간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 윈윈 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의 공유 거주 공간 등 공간의 관점에서도 복합적인 시도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상욱 대표는 ‘창신 아지트’와 쉐어원프로퍼티의 지향점이 구조 변화라고 했다.

“지금의 봉제·패션산업 구조도, 공간 임대사업의 구조도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 관점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고, 패션산업의 구조도 각자의 밸류체인에 안주해 그 중간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장 위기인 건 봉제산업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환경이 열악하고 고령의 사장님들도 그렇지만, 한편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인식적인 부분이에요. 대부분의 봉제업계 종사자들은 열악한 환경이나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회의감, 부끄러움 같은 걸 가지고 있고, 본인의 직업에 대한 자존감도 낮은 편이에요. 앞서 디자이너 브랜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했지만, 결국 오더를 받는 입장에서는 ‘을’이라는 인식도 있고요. 이런 인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바이어’와 동등한 협업 관계, 파트너십을 구축해서 조금 더 나은 환경,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의 일에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요. 패션산업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니까요. 제가 하는 일의 영향력이라는 건 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변화에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