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뷰 | 정재민 그릿팩토리 대표

프로모션 업체 CEO, 봉제공장 사장 되다

산업에 젊은 인재들이 들어오는 건 항상 중요하다. 새로운 바람은 새로운 인물로부터 불어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봉제산업의 새로운 바람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를 인물을 만났다. 프로모션 업체로 시작했지만 자사 공장을 세워 ‘봉제공장 사장’이 된 그릿팩토리 정재민 대표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봉제산업은 한국에서 소멸해서는 안될 산업이다. 비단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물자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었던 역량이 봉제산업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에서 옷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없으면 신진 디자이너, 창업가, 얼리 브랜드가 성장하지 못한다. 해외 대량생산에 의존해 옷을 만들어야 하고, 의사소통 시간, 물류비용 등 많은 장애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새롭고 참신한 브랜드들이 많이 태어나기 위해선, 그 나라에 봉제공장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패션산업이 각광받고,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는 아직 한국에 남아있는 봉제공장들에게 있다. 그러나 봉제산업이 계속되려면 젊은 인재들이 산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또 몇 십 년간 지속해왔던 기존 공장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야 끈질긴 인건비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릿팩토리 정재민 대표(37)는 일감이 들어오면 옷을 만들어주기만 하는 ‘수동적인 공장’에서 벗어난 능동적인 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4년 전 프로모션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믿고 맡길 공장이 많지 않아 직접 공장을 차리게 됐어요. 기존 공장들의 산업구조, 업무 방식이 재래식이어서 결과물이 좋지 않았거든요” 정 대표는 원래 유니폼 등 스포츠의류를 생산하는 ‘KNB스포츠’에서 7년간 생산관리를 맡았다고 했다.

스포츠의류 업체에서 생산관리 7년 브랜드가 원하는 공장 시스템 적용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가진 작은 회사였어요. 지금은 사옥이 있고, 연 매출이 몇 백억 단위로 나오는 회사가 됐지만요. 어떻게 보면 회사랑 함께 성장한 셈이죠. 스포츠 유니폼은 ‘어센틱’과 ‘레플리카’가 있는데, 어센틱은 실제 선수가 입는 유니폼과 동등하게 만들어지는 옷이고, ‘레플리카’는 그 의류를 단순 복제하지만 원단이나 봉제 퀄리티는 더 낮은 옷이에요. 근데 ‘어센틱’은 해외로 나가기 어렵거든요. 라이센서가 데상트, 아디다스 이런 곳인데, 바이어들이 해외 생산 제품을 신뢰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업무가 대부분 국내 생산관리였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브랜드에서 원하는 공장 시스템을 알게 됐고, 공장을 차리면서 적용했죠.” 공장을 차리고 나서는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복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공장 전경, 바닥이 쓰레기 없이 깨끗한 모습.

“특히 일하는 분들의 인권, 대우에 신경을 많이 쏟았습니다. 저희는 모든 직원을 다 월급제로 고용해요. 객공은 최대한 많이 꿰매야 돌아오는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빨리 만들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죠.” “공장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망한 공장을 인수해 리모델링부터 시작했어요. 보통, 공장을 인수해서 보면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잘못된 것 잘못된 대로 그냥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걸 일하기 좋은 조건으로, 배열부터 시작해 뜯어고쳐서 동선을 바꿨어요. 단순히 깨끗하게 하기보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요.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져요. 더러운 환경에서 아무거나 쌓아두고 일하면 옷을 막 밟고 다닌다던지, 알게 모르게 악영향을 줘요. 그래서 일부러 지하에는 가지 않았어요. 이모님들도 거기서 일하면 피폐해지고, 삶도, 일도 그런 분위기가 돼요. 햇빛 잘 드는 곳, 도로변에 있는 곳, 지하철에서 걸어갈 곳, 이런 환경적인 요인은 공장에 큰 영향을 줘요. 봉제는 결국 사람의 일이라서, 어디서 어떻게 근무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거죠.”

“저는 저희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봉제 마스터라 부르고 싶어요. 하나하나가 어디 가서 내로라하는 분들이에요. 자부심이 있고, 다른 곳에서 공장 사장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퀄리티를 보유하고 있어요. 공장을 운영해봤던 분들도 있고. 주인의식 있는 거죠. 월급도 높게 쳐드리고요.” 그렇게 품질이 안정되자, 그릿팩토리는 거래처의 신뢰를 받게 됐다. “자체 공장을 차리면 ‘공장이 놀 때가 많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지만, 고급 봉제 쪽으로는 오히려 일이 몰렸어요. 신뢰할 수 있는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바이어는 백화점 입점 업체, 그리고 쇼핑몰 중에서도 퀄리티가 높은 곳입니다. 일반 시장 제품은 단가가 안 맞아서 거래하지 않고 있어요. 저희는 가격 경쟁보다는 퀄리티, 가치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봉제 품질관리로 거래처 신뢰 얻어 다품종 소량, 고급 봉제가 특징

그릿팩토리는 최소 30벌부터 의류 생산이 가능하다. 평균 오더는 50~100벌, 많으면 1,000벌까지 간다고 했다. 대신 단가가 높다. “‘해외 생산에 비해 힘든 부분 많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데, 저가 의류는 해외 생산이 되지만 고급, 그리고 소량은 해외에서 하기 힘들어요.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 깐깐하고 요구사항 많은 오더는 해외에서 하기 힘들죠. 저희가 하는 건 해외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바이어들도 비싸게 주고서라도 여기서 하는 게 맘이 놓이고요. 사실 일반 의류는 요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더 잘 만들어요. 그렇지만 단순하게 얘기하면 저희는 그것보다 더 잘 만드는 공장을 갖고 있는 거예요. 중국은 대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저희는 다품종 소량이 가능하고요. 본사공장으로 대부분의 프로모션 오더를 커버하고 있고, 공장도 100% 자체오더로만 돌아가고 있어요.”

그릿팩토리는 특히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사실 월급제 직원을 유지하려면 일감이 필요하다. 일감이 불안정하면 직원을 유지하기가 어렵기에 객공을 쓰고, 객공을 쓰면 퀄리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면 거래처의 신뢰를 잃고, 일감이 더욱 더 줄어든다. 대개 하락세를 걷는 공장들은 이런 악순환을 겪는다. 그렇다면 품질을 유지하기만 하면 오더가 쏟아질까? 그렇지는 않다. 정 대표는 그릿팩토리와 다른 공장의 차이점이 마케팅 부서의 존재라고 말했다. “저희는 공장을 하고 있지만 프로모션으로부터 출발했잖아요? 단순히 ‘옷을 좋아하는 초보자’ 분들도 옷을 만들고, 팔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어요. 전혀 의류를 안 만들어본 사람들도 저희를 통해 옷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디자이너 브랜드나 스타트업 하시는 분들을 위해 프로모션 회사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셈이죠.”

품질만 갖춘다고 오더 유지되지 않아 프로모션으로 출발 다양한 솔루션 제공

“사실 단순하게 옷을 좋아해서 시작하는 분들은 혼자 시작하면 대부분 망해요. 정말 아무 기반이 없는 분들에게는 쓴 소릴 해서 돌아가라 한 적도 있어요. 원래는 대부분 의뢰 받아서, 돈 챙겨서 내보내겠지만 저희는 그냥 되돌려 보내요. 마케팅에 대해서, 옷에 대해서 공부하고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거죠. 만드는 것과 판매하는 건 굉장히 다른 일이에요. 옷을 좋아한다고 잘 팔지는 못하는데, 대부분 자기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돌려보낸 분들 중 다른 업체 가서 실패했다가 다시 돌아온 분도 계세요. 그분은 무신사 입점 브랜드에서 일하다가 자기 옷을 만들고 싶어서 나오셨는데, 저희와 단가가 맞지 않아서 돌려보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싸게 옷 만들어준다는 공장이 많으니까 그리로 간 거예요. 결국 엉망진창으로 옷이 나왔어요. 공장에서 책임감도 없고 ‘될 대로 되라’ 그런 식으로 옷을 만든 거죠. 이런 식으로 저희에게 다시 돌아온 분들이 몇몇 계세요.”

프로모션 업체로 시작해, 자체 마케팅 부서를 운용하고 있다.

한편 중견 업체들 대상으로는 마케팅,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생산만 해주는 공장이 아닌, 의류생산에 관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솔루션 기업을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저희의 강점은 의류에 특화된, 전문적인 마케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쇼핑몰들이 대행업체에 다 마케팅을 맞기고 있는데 사실 문제점이 제법 있거든요. 일단 의류를 다루지 않은 사람들이 마케팅을 하는 게 문제예요. 그런 회사들은 보통 이런저런 상품을 다 다루는 종합 마케팅 회사거든요. 통계자료만 가지고 하는 마케팅과 의류에 관한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하는 마케팅은 달라요. 업무 이해도가 높은 마케팅이 보다 정밀하죠. 저희는 데이터가 있어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이 많이 팔렸는지 알죠. 트렌드도 항상 봐왔고, 업무 이해도가 훨씬 높죠.”

중견 업체 상대로 마케팅 서비스도 제공 “규모 커지면 공장 인수 나설 것”

정 대표는 앞으로 규모가 커지게 되면 공장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1공장, 2공장 이런 식으로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규모가 늘어나면 다른 공장을 인수할 계획이에요. 다들 힘드니까 공장을 운영하다가도 월급 받는 게 마음 편하다는 분들이 많거든요. 공장 인수하는 게 제일 빠르죠.” “패션창업하는 분들을 위한 솔루션이나, 강의도 계획하고 있어요. 안 될 것 같은 의뢰는 돌려보내는데, 계속 새로운 분들이 문의를 주시거든요. 한분 한분 찾아가서 설명을 해줄 수도 없고, 책 만든다던지, 카페를 개설, 좀 도움을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도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어요. 시중 브랜드 옷들이 실제로 제대로 된 옷인지 분석해보는 컨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기존 사업모델에 안주하고 벗어나지 않는 것이 현재 봉제산업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봉제업계에선 늘 일감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기존 공장 사장님들이 오더를 능동적으로 찾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현실에 안주해 있기보다는, 반평생을 이미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생각의 전환이 없는 한 살아남기 힘들다고 봐요. 대다수 분들이 은퇴할 나이에 가깝기도 하고요. 더 열심히 하기도 어렵고, 자식들도 이어받지 않죠. 이런 상황이니까 도전적인 마인드로 일하기 어려운 거예요. 경쟁력이 점점 줄어드는 거죠.”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