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라운지 | 이관득 ‘우보’ 대표

빠르게 변하는 제조업, 그리고 봉제

‘우보’는 회사 설립 22년째인 생활섬유 전문업체이다. 누비, 이불, 베개, 패드 등 침구류에 사용되는 커버 제품을 비롯해 퀼팅이 들어간 조끼 등 간단한 의류 제품도 생산한다. 동사 이관득 대표는 봉제를 비롯한 제조업이 시대적인 변화에 어떤 대응을 해왔는지 고민하면서 혁신의 방향을 찾고 있다. 그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았다. <취재: 이상철 국장>
이관득 대표

≡ 지난해 ‘코로나 19’ 발생으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어땠나?
거래처별 기복이 있다. 기존 재래시장이나 백화점 등 오프로드 쪽의 매출은 줄고 온라인 마켓, 홈쇼핑 등의 매출은 비교적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 생활이 많아지고 관련 제품 교체 수요 시기가 맞아 떨어져서인지는 모르지만 소비침체 양상이 확연했던 의류보다 생활섬유 쪽 경기는 좀 나았다고 생각된다.

≡ 코로나 사태 이후 경기 침체가 너무 큰 탓인지 봉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수시장에 기대고 있는 국내 소재 제조업체는 이젠 달라져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기간산업이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해외로 많이 빠져 나갔다. 의류의 경우에는 완제품으로 수입해서 국내 시장에 대량으로 들어온다. 특히 중국은 예전보다 소롯트 단위의 제품 생산도 가능하고 생산설비, 기술 수준도 좋아져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제품을 수입해서 국내에 유통시킬 수는 없다.

국내 제조도 어느 정도 유지되어야 한다. 엄밀히 말해 과거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던 것은 수출을 위한 것이었고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중국 등지에서 OEM 생산해 내수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은 크게 메리트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봉제는 인건비 비중 때문에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으나 내수시장만 놓고 보았을 때는 인건비 비중이 그렇게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 기준으로 보았을 때 원자재와 인건비, 그리고 일반 관리비 정도로 생산비의 비중을 나눈다면 인건비는 약 30% 수준으로 제한적이다. 그 30%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내수시장은 단납기에 반응생산,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략이 필요한 곳이다. 이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해외생산이 정답이 될 수 없다.

우보는 각종 커버류를 생산하는 생활섬유 전문업체이다.

≡ 그러면 이제 봉제, 그리고 제조업에 대해 고민해 봐야할 시기가 아닌가?
지금 하청 임가공 공장이 힘든 것은 과거 섬유산업이 한창 부흥하던 때와는 너무 많은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봉제산업은 기술도 있었고 관리도 잘 됐다. 그러나 지금 그 기술과 관리력이 해외로 모두 빠져 나갔다. 기술도 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소규모 임가공 봉제공장들이 과거와 같은 기술과 관리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힘들다. 예전 방식과 기술만 가지고는 소규모 임가공 업체들이 소량 다품종이 대세인 지금 바이어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고 시장에 대응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봉제공장에 원부자재 입고가 제대로 안되면 그것이 도착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 예전에는 원청에서 이런 관리가 철저해서 공장들은 그저 일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봉제공장 사장이 원부자재 입고부터 직원 관리, 임금 지급, 심지어 가공임 결제 받으러 다니는 일까지 다한다. 성/비수기가 있어서 오더는 한꺼번에 몰리고 일이 있을 때는 주야 없이 일하다가 일 끊기면 손가락 빨아야 한다. 봉제공장은 일만 할 수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우보는 각종 커버류를 생산하는 생활섬유 전문업체이다.

≡ 지금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철저히 노동법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봉제업 현실은 어떤가?
4대보험, 최저임금 적용 등 법을 준수하며 공장 운영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 공장이 많지 않다. 제대로 하려면 퇴직금 정산하고, 어느 선에서 정리하고 다시 리셋해서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어서 관행적으로 가다가 결국 나가떨어지고 만다. 대부분 이런 식의 공장들이 많은데 그런 공장들은 답이 없다. 생산성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외주를 빼도 생산성이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낮아져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돈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10장 하던 실력이 이제는 5~7장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봉제공장이 많은 면목, 화곡, 봉천 등지의 봉제 밸트라인의 공장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의류 쪽에 경쟁력이 없으니 우리 같은 생활섬유 분야로 아이템 변경을 시도하는 공장들이 있는데 설비와 기술 부재로 진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생산 현장에는 연단기, 자동재단기(CAM) 등 자동화 장비가 다수 도입되어 있다.

≡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내수시장은 다변화하고 있다. 소량다품종, 품목 다변화되고 있는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단순히 재단 봉제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 수준을 넘어 원부자재 수급, 금융 등 자본컨트롤 등의 분야까지 관리가 가능한 제조업체가 되어야 한다. IMF 금융위기에 회사를 나온 이후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유통, 프로모션 보다는 제조업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조업을 선택한 이유는 제조만 잘 한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유통업자들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제가 지향한 제조업은 단순 임가공이 아니고 제품 생산에 경쟁력을 가진 업체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ODM, 비중을 높여야 한다. 타산업 분야지만 ODM 전문업체인 화장품 제조업체 ‘한국콜마’의 사례를 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업계에서도 ODM 전문업체가 유통과 생산 사이에서 역할을 잘 한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ODM 전문업체가 기획, 연구개발 분야를 담당하고 기술 개발을 지속한다면 유통이나 브랜드에서는 제품 공급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단순 하청 임가공업체들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요즘 유통이나 브랜드 업체가 과거처럼 시즌별로 발주하는 개념으로 사업을 하면 다 망한다. 미리 발주하는 시스템은 돈을 깔아놓고 사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자재 구매, 물류, 생산, 재고가 다 돈이다.

생산 현장에는 연단기, 자동재단기(CAM) 등 자동화 장비가 다수 도입되어 있다.

그 각 과정을 제대로 관리 못하면 금방 망한다. 유통하는 회사는 유통만 하고 제조업체는 생산만 제대로 해주면 서로 이익이다. 제조업체는 유통, 브랜드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원하는 칼라나 수량, 납기, 품질, 소량 단납기, 수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제조하고 공급해낼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된 제조 협력업체를 만나는 것은 유통이나 브랜드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역할 분담이 확실히 되면 제조업체는 제조만 열심히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유통업체도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어 자기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 쓸데없이 생산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 단계가 되면 기술자는 자기 기술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제조업체는 오더, 자금, 결제, 영업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제조 협력업체가 유통사와 호흡이 맞으면 10년이고 20년이고 거래가 이어진다.

생산 현장에는 연단기, 자동재단기(CAM) 등 자동화 장비가 다수 도입되어 있다.

≡ 제조업체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나?
예전에는 원청이나 브랜드에서 기획, 원부자재 구매, 생산, 하청 등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때는 기술과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유통은 유통만 잘해야 하고 생산은 능력 있는 협력업체에게 넘겨야 한다. 제조 협력업체는 예전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혁신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오너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말고 사내 전산화, ERP 구축 등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유통업체도 여러 업체에 죽 깔아놓는 공급망을 만들지 말고 한군데서 집중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손실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곳으로 공급망을 분산시켜 줄줄 새는 비용만으로도 우리 회사는 먹고 살 수 있다고 거래업체들을 설득한다. 그래서 제조 공장이 많이 투자를 해야 한다. 제대로 체계를 갖춰서 공급에 안정을 줄 수 있는 제조사로 인정받아야 한다. 설비, 기술력, 인력 등 제대로 생산능력을 갖춘 후에는 원가 계산에 좀 더 치밀해져야 한다. 기존과는 다르게 개념 정립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생산 원가에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산정해야 한다. 원단 쓰레기는 허가 받은 업체에 정식으로 처리하고 그 비용은 생산원가에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거래가 원가 개념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거래였다. 우리 업계만 보아도 통상 거래 가격이라는 것이 없다.

재봉기 1대당 넉넉한 작업공간을 할애한 우보의 봉제 생산 라인

의류는 수 년 동안 해온 것이 있어 어느 정도 가격이라는 것이 있는데 생활섬유 분야는 그런 것이 없다. 주먹구구로 계산해 가격 책정했다. 이렇게 거래하는 것보다 정확히 수치로 증명되는 원가 계산을 통해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제조사나 바이어 입장에서 모두가 유리하지 않을까. 저는 오랫동안 표준 가격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거래업체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던 간에 스스로 타당성을 가지고 생산원가를 계산해서 거래 표준 가격을 만들어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거래처는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고 수치로 제시하여 구체화하면 아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생활섬유 업계는 스타일이나 색상만 바뀌어도 가격이 바뀐다. 애초에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의류는 오랜 시간 표준화된 것이 있는데 이쪽 계통은 그런 것이 없어 가격 책정이 더 엉망이다.

재봉기 1대당 넉넉한 작업공간을 할애한 우보의 봉제 생산 라인

≡ 봉제업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 회사는 기술자를 인정해준다. 회사 정년은 60세이지만 기술이 있고 건강이 유지되면 최대 69세까지는 근무할 수 있다. 기술이 좋은 것이 누가 뺏어 가지 않는 것이다. 기능 인력은 재봉기 한 가지 기종에만 능숙한 것이 아니라 두서너 가지 기종 정도는 다룰 줄 아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다변화되는 생산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력을 많이 확보하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능인력이 2~3종 정도의 기계를 다룰 줄 안다면 더할 나위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도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복지에 좀 더 투자할 수 있다.

예전처럼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야근, 특근을 밥 먹듯 하는 것이 아니고 주5일 근무에 40시간 일하고 연월차 휴가를 충분히 누리면서 봉제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지금 주 40시간 근무에 연차 휴가는 15일 보장해주고 있다. 이렇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예측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환경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봉제공장의 작업환경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 작업 현장은 닭장의 케이지 수준이다. 재봉기 한 대당 적정 면적을 할애해 쾌적한 환경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보 외경 모습

≡ 업계에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조업체 대표로서 업계에 납기와 관련된 관행을 바꾸는 제안을 하고 싶다. 봉제를 비롯해 제조업체들은 납기에 맞추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그럼 반대로 신속한 납기를 요구하는 경우에 제조업체들은 급행료를 받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을까. 납기 늦다고 고액의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면 정상 납기보다 빨리 입고되는 것을 원한다면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받아야한다. 납기를 급행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상 업무시간 외에 오버타임이나 휴일 근무 등이 필요할 수도 있고 인력이나 장비를 더 투입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급행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지금껏 갑을 관계 때문에 봉제업계가 이런 요구를 못했다. 이젠 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