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스토리 | 고일현 | 조은미싱 대표

‘오드람프’의 인기, 등산 인구 증가가 한 몫

봉제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재봉기를 비롯해 봉제기기와 관련된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봉제 관계자들로부터, 삶을 살아가면서 이들 기기 장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이번호에는 그 첫 순서로 서울 금천구 소재 ‘조은미싱’의 고일현 사장이 들려주는 오드람프 재봉기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1997년 IMF 사태가 터진 이후 우리들의 삶은 많은 것이 알게 모르게 변화되어 있었다. 평생 직장으로 여기던 곳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사태가 생겨나고 은행, 대기업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 광풍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혹은 목숨까지 버려야 했는가? 직장을 잃은 가장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울분을 삼키며 산으로 찾아들었다. 한두명씩 늘어나던 등산인구가 과히 이 시기를 거치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매니아 위주로 즐기던 등산은 IMF 이후 국민 레저로 부상하면서 전국의 산야가 형형색색의 등산복으로 수놓아졌다. 등산복, 그 중에서도 차이나칼라와 집업티 형태의 대표적 등산 티셔츠가 마구 쏟아져 나온 것이 아마 이 무렵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등산 티셔츠는 이후 약 10여년간 일상 생활복의 모든 것을 대체하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등산복에서 외출복으로 혹은 골프복으로 변신해 전국 어디서나, 심지어는 외국으로 나가는 공항에서도 이 복장이 대세로 자리 잡기도 했다. 등산 티셔츠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할 무렵 나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재봉기 중에서도 좀 더 차별화되고 특별한 아이템이 있어야 향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국내가 아니라 해외 메이커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주로 중국과 대만 업체를 물색했다. 당시 등산 셔츠는 여러 가지 디자인이 시도되고 있었다. 몸판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다채로운 형태의 디자인이 출시되고 있었다.

등산복 디자인의 다양한 시도 오드람프 수요 증가 불러와

국내에 있던 많은 봉제공장들이 원래 하던 아이템을 접고 니트 계열의 등산 셔츠 제조에 너나없이 뛰어들고 있을 시기였다. 등산 셔츠에 여러 조각의 재단물을 이어 봉제하는 방식이 새로운 디자인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브랜드들은 경쟁적으로 조각 조각 재단물을 만들어 옷을 만들었다. 그 당시 니트 조각물을 붙이기 위해서 필요한 장비가 오드람프 재봉기였다. 등산셔츠의 대유행으로 오드람프 재봉기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다가 2003년 대만 재봉기 브랜드인 메가소우(Megasew)를 발견하게 된다. 메가소우 오드람프를 주목하게 된 것은 당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쌍차송 즉 앞뒤 톱니의 이송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장비였기 때문이다. 오드람프 작업시 쌍차송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긴 재단물을 봉제할 때는 처음과 끝의 길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축성 있는 원단도 봉제해 나가다보면 길이가 달라질 때가 많다. 이럴 때 앞 뒤 톱니의 속도를 조절하면 2개 원단의 길이를 맞추기가 쉽다. 또한 원단을 겹쳐서 놓느냐 맞대서 놓느냐에 따라서도 변수가 생긴다. 이때도 쌍차송 기능이 있으면 길이 맞추기가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쌍차송 기능을 가진 유일한 재봉기였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대만으로 건너가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당시 메가소우는 그리 큰 회사가 아니었다. 대만의 대형 재봉기 브랜드에서 일했던 설립자가 독립해 시작했던 회사였고 공장도 아담했다.

제대로 사용하면 큰 수익 발생 소비자 맞춤형 A/S 해주어야

메가소우 오드람프를 주목하게 된 것은 당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쌍차송 즉 앞뒤 톱니의 이송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장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수준이 높았고 재봉기 품질도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가격대도 상당히 높았다. 일제 오드람프 재봉기보다는 약간 낮은 수준이었으나 당시 국산 브랜드 제품보다는 가격이 꽤 높았다. 오드람프 가격이 높았던 이유는 A/S 문제도 있었다. 오드람프 재봉기는 원단에 따라 다양한 봉제 변수가 생기는 장비이다. 오드람프 재봉기 사용에 익숙하지 못하면 많은 불량이 발생하고 생산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장비 특성을 알고 원단과 잘 맞춰서 사용하면 제조업체가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량 재봉물 실 뜯어내다가 날 새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판매 후 서비스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용업체가 문제를 호소하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오드람프는 다른 재봉기에 비해 서비스 콜을 요청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장비였고 그것을 감안해 가격대도 비교적 높았다.

그렇지만 제조업체들은 가공임이 높아 제대로 사용하면 큰 돈도 벌 수 있었다. 등산티 생산은 대략 10여년 정도 국내에서 호황세를 보였다. 그 동안 이 장비의 보급대수도 늘어나 우리도 수백대를 국내 봉제현장 곳곳에 보급시켰다. 일제를 비롯해 미국, 국내 브랜드 등 다양한 오드람프 재봉기가 이 시기에 많이 보급되었지만 우리는 메가소우 오드람프만 취급했다. 본봉이나 오버록 등은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취급하지만 이 기종은 한 가지만 고집했다. 워낙 익숙하기도 했고 소비자들 반응도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등산이 국민레저로 등극한 이후 그 인기는 아직도 여전하지만 등산복 제조환경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대략 10여년 전부터 등산티셔츠 생산이 점차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등산상의 티셔츠로 활기를 띠던 공장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골프웨어가 메우고 있기는 하지만 물량 자체가 등산복과 비교해 많지가 않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오드람프 재봉기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판매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4년 전부터 요가복이 인기를 끌면서 반짝 보급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최근 요가복도 해외생산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생산에 의존하던 요가복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가 싸움에 밀려 해외생산으로 변경하는 브랜드가 많다. 요가복 시장이 불붙으면서 오드람프 등 관련 장비를 대거 갖췄던 봉제업체들이 최근에는 물량이 없어 가동률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오드람프 보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희소식이 날아들기도 했다.

요가복 생산 업체 늘어나 반짝 인기 제조업체에 맞게 개조해 보급

일제를 비롯해 미국, 국내 브랜드 등 다양한 오드람프 재봉기가 이 시기에 많이 보급되었지만 우리는 메가소우 오드람프만 취급했다. 워낙 익숙하기도 했고 소비자들 반응도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만 메가소우 재봉기의 국내 에이젼트인데 미국의 한인 봉제업체가 오드람프 재봉기 구매 오더를 준 것이다. 분명 미국에 메가소우 에이젼트가 있는데도 굳이 한국에 있는 우리 회사에 주문을 넣은 것이다. 한인 업체다보니 아무래도 현지 에이젼트보다 한국인과 거래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주문도 한두대가 아닌 10여대 이상으로 계속 진행되는 물량이었다. 요가복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작업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원단 샘플과 완제품을 요청했다. 오드람프의 특성상 원단 성격을 알아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보내준 샘플과 원단 특성을 파악한 후 그에 맞게 개조할 부분은 개선해 1차분을 보내주었다. 사용 후 상당히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후 2차분 주문이 들어와 현재 선적 준비 중이다.

오드람프 사용에 있어 제일 중요한 부분이 원단에 맞는 노루발을 장착시키는 것이다. 오드람프 재봉기는 얇고 탄력성이 좋은 원단부터 군복과 같은 우븐 원단 같이 다양한 작업을 한다. 그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이 노루발을 그 원단에 맞게 개조하여 장착시켜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이 작업은 직접 진행해 왔고 그 노하우가 많이 쌓여있다. 노루발이 잘 맞으면 오드람프 사용은 기능자의 숙련도에 따라 작업의 능률이 결정되고 나머지 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 등산복의 인기로 20년 이상 이 재봉기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국내 봉제산업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인연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대만 본사도 그동안 많이 성장해 이제는 제법 규모 있는 제조 강자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