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사람 | 배범삼 부회장•김성은 사장 | 창립 50주년, ‘Silver Star’ 은성전기(주)

다리미 반세기, ‘실버스타’ “세상 모든 주름을 펴고 싶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은성전기’가 지난 4월 24일, ‘밀레니엄 힐튼서울’에서 고객사와 바이어 그리고 친지를 초청, 축하 행사를 가졌다. 행사에 앞서 창립 반세기의 소회와 비전을 들어보기 위해 4월 초, 동사를 찾아 배범삼 부회장과 김성은 사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시간에 맞춰 종을 울리는 괘종시계가 소년의 눈엔 마냥 신기했다. 어느 날, 소년은 부모님 몰래 괘종시계를 벽에서 내려 분해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조립했으나 나사가 3개나 남이 있었다. 물론 시곗바늘도 멈춰섰다. 소년은 혼날까 봐 더럭 겁이 났지만, 아버지께 이실직고했다. 뜻밖에도 아버지께선 괜찮다고 허허 웃으시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들의 호기심에 관대하셨던 게다. 바로 산업용 다리미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산업용 다리미 메이커 ‘은성전기(주)’ 김득래 회장(87세)의 어릴 적 기억이다.

“아마도 당시 심하게 야단맞았더라면 지금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김득래 회장은 소년 시절 유독 기기를 뜯고 조립하는 데 호기심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이후 경기공고에 진학해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스무살에 공군에 입대해 당시 신규 도입된 공군기 정비 특기로 특채되어 8년간 장기 복무 후 제대했다. 복무 중 짬을 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제대 후 식품용 소다를 제조하는 경인화학에 공장장으로 입사해 전 생산공정을 자동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후 판매 관련 일에 종사하다가 1972년 ‘은성전기’를 창업하게 된 것. 60년대 말 70년대 초, 우리나라 봉제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재봉기를 필두로 봉제 주변 기기류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소모성 전기제품 중 스팀다리미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리미는 봉제공장에 필수품인데 당시 국산 산업용 다리미는 전무했다. 일본 다리미 3사(나오모토, 오사카덴끼, 하시마)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장악, 고가로 유통되고 있었다.

△ 은성전기(주) 김득래 회장

소비재보다는 산업재에 끌렸던 그는 주저없이 산업용 다리미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다리미 개발과 아이스크림 냉동고 제작 납품을 겸업하다가, ‘은성냉동’을 분사해 당시 공장장에게 맡기고서 다리미개발에 집중했다. 몇 년간 실패를 거듭하며 고전한 끝에 1978년 ‘별표’란 토종 브랜드로 산업용 전기스팀다리미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50년, ‘은성전기’는 ‘실버스타(Silver Star)’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 산업용 다리미 강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은성전기는 50년간 각종 의류제품을 다리는 다양한 종류의 산업용 다리미를 개발했다. 물통 다리미를 비롯 올스팀 다리미와 두 가지 특징을 복합한 스팀전기 다리미, 의류매장용 스티머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의 모든 주름을 펴고 싶다’가 아버지(김득래 회장)의 모토라고 귀띔하는 동사 김성은 사장은 “제 아들이 어릴 때 ‘다리미로 얼굴 주름도 펼 수 있어요?’라고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할아버지께선 ‘그럼, 펼 수 있지’라며, 대뜸 제게 ‘애미야, 너희들은 그걸 한번 개발해 봐라’고 하셨는데 여태 거기까진 개발하지 못했다. 이는 앞으로 50년을 더해 100년 기업, 은성전기의 또 다른 과제다. 그 어떤 주름도 펴는 제품들을 만들고자 한다. 장기 계획으로 피부의 주름까지도 포함한다.”라고 말했다.

 

= 토종 다리미 브랜드로 일가를 이룬 김득래 회장은?
[김성은 사장, 이하 K] 은성전기 1세대 창업주로서, 창립 5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하셨다. 자식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김득래 회장)는 섬세한 감각을 지니신 분이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시다가 ‘저거 가공이 덜된 거 같애’라고 말씀해 자세히 보면 그게 딱 불량이었다. 매의 눈을 가지셨다. 그만큼 집중력이 뛰어났다. 공고를 나와 기술적 기본 소양이 있는 엔지니어라서 직접 개발을 주도하셨기에 50년의 감회가 특별할 수밖에 없으신 게다. 회장님은 부품공장이 아닌 완제품 공장이라는데 굉장한 프라이드를 갖고 계신다. 몇백개 부품이 모여서 다리미가 되는 건데 그 중 한 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된 제품이 나오질 않는다. 50년 동안 한결같이 그 모든 걸 컨트롤해 오셨다.

△ 은성전기(주) 서울 사옥

= 반세기 동안 다리미에 몰두해 왔다. 여타 아이템의 유혹도 있었을 텐데?
[K] 다리미를 보다 완벽하게 제작해 한국산 다리미가 일본산을 넘어 세계 다리미시장을 제패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오로지 다리미에 집중하셨다. 주변기기는 사실 저희가 개발하고자 해서라기보다 바이어들 요구에 의해 제작‧공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에 의뢰해 제작하기도 하고 양에 따라 직접 만드는 것도 있다. 주변기기는 반드시 다리미와 관련이 깊은 아이템만 취급한다. 바큠 다리미대, 스팀 발생기, 미니 프레스, 휴징 프레스, 열전사기, 스포팅머신 등이다. 이처럼 다리미에 관련된 아이템 외 동떨어진 아이템은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단일품목에 집중해온 탓에 저희 나름대로 노하우가 쌓여 시행착오는 없다. 사실, 다리미라는 게 특별히 더 요구되는 기능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카테고리 안에서 좀 더 발전시키고 내구성을 비롯 품질 굳히기에 노력하고 있다.

= 창립 이후 지금껏 연도별 이슈를 소개한다면?
[K] 1970년대 별표 산업용 다리미를 개발‧제조해 내수판매를 하다가 1982년 미국으로 첫 수출을 하게 되었고 9년 만에 100만불 수출탑 수상의 쾌거를 이뤄냈다. 이후 1993년 포천 신평공단에 본사 사옥 준공을 계기로 공격적 영업망 구축과 함께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1994년 김득래 회장은 이러한 구상을 실현키 위해 사위(배범삼, 현 부회장)를 최일선 공격수로 등판시켜 ‘실버스타 다리미가 세계 1등, 표준다리미가 되는 기틀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배범삼 부회장, 이하 B] 1994년 처음 회사에 합류해 제안한 게 CI(기업 이미지 통합) 구축이다. 당시 CI에 관심을 가진 중소기업은 드물었다. 제조설비를 들이는 것도 아닌 CI 작업에 당시로는 큰돈인 1천 5백만을 쓰겠다는데도 회장님은 흔쾌히 오케이 했다. ‘별표’를 떼고 ‘Silver Star’를 새 브랜드로 기업 이미지 통합을 이뤘다. 새로운 CI는 해외 출장과 전시회를 통해 빛을 발했다. 바이어 발굴과 딜러 섭외를 위해 KOTRA 회원으로 가입, 해외시장조사와 함께 해외 교두보 마련에 올인했다. 해외전시회는 가급적 규모 있게 부스를 꾸며 딜러나 바이어 그리고 엔드유저에게 실버스타 브랜드를 각인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중남미를 비롯 여러 나라에서 실버스타 다리미 브랜드에 관심을 보였다. 미국이나 브라질처럼 큰 나라는 예외지만 한 나라에 한 바이어와의 거래가 저희 기준이다. 또 하나, 거래관계에 있어 선금 원칙이다. 브랜드, 품질, AS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외상거래는 하지 않고 선금 결제만 고수했다. 외상거래는 나중에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 서로 간 선결제로 신뢰가 쌓여 1년 보증, 2년 보증 그런 거 아예 없다. 바이어들의 AS 요구는 3년이 지나도 다 들어줬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런 거래관계가 이제는 완전히 안착됐다.

주문 쇄도에 힘입어 2000년, 중국 절강성 가흥에 현지법인을 설립, 본격 중국 생산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듬해 300만불 수출탑 수상에 이어 2003년 중국 가흥공장을 완공해 바이어와 에이젼트들에게 ‘실버스타’의 중국산 출시를 공식화했다. 브랜드 인지도 확산과 더불어 중국 카피 제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03년부터 2005년경까지 중국에서 실버스타 브랜드를 카피하는 곳이 50여군데에 달했다. 당시 소송도 해봤지만, 중국에서 카피 소송해 승소하긴 정말이지 힘들다. 코트라 기록에 의하면 당시 한국업체 중국 카피 소송에서 이긴 곳은 우리 회사와 엘지산전 두 군데 뿐이었다. 2~3년 걸려 승소했지만 별 소용도 없었다. 이제는 중국 카피본이 나타나면 바이어들이 저희한테 알려준다. 어디서 얼마에 팔며, 이것이 샘플이니 가서 확인해 보라며 샘플 사진까지 보내준다. 그만큼 바이어들과 밀접한 신뢰 관계가 유지되고 있으며 지금은 다 친구 같은 사이다. 바이어들 중 세대를 이어가며 우리와 거래하는 곳도 다수다.

은성전기(주) 경기 포천 공장

= 글로벌시장에서 세계 유명 다리미 브랜드와의 경쟁력은?
[B] 1994년에 회사에 합류했을 때 다리미시장 넘버원은 일본산 나오모토였다. 그리고 오사가덴끼와 하시마도 상위권에 있었다. 당시 미국은 우리 제품을 수입하고 있었다. 출장 가서 봤더니 대부분 일본제와 일부는 이태리제를 쓰고 있었는데 고가였다. 일본제가 소비자 250불 수준이었고 저희 제품 소비자가는 120불로 절반가였으나 품질은 80~90% 수준까지 가 있었다. 이후 저희가 브랜딩을 했고 전시 갈 때마다 실버스타 브랜드 홍보에 온 힘을 쏟았지만, 일제를 선호하던 미국 바이어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았다. 결국 세일즈 방법을 바꿨다. 다리미는 취급하지 않고 재봉기만 하던 업체를 찾아가서 설득해 성사시켰다.

또 한군데는 OEM으로 거래를 텄다. 미국 동부는 ‘실버스타’로, 서부는 ‘퍼시픽’이라는 브랜드로 1996년부터 본격 판매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산에 밀려 세컨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미국 소비자들도 가격에는 민감했다. 가격경쟁력이 있는 우리 제품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미국 시장에서 스탠다드로 올라섰다. 앞서 언급했듯이 AS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사간지 1년 안에 문제 있으면 무조건 바꿔줬다. 우리가 판 시점에서 1년이 아니라 바이어가 판 시점, 즉 소비자 손에 들어간 시점을 기준해 1년 안에 망가지면 무조건 교체해 준 것이다. 바이어 입장에서 판매 조건이 매우 좋은 거라 2005년경부터 미국 시장 대부분이 저희 브랜드로 바뀌었다.

= 해외에서 카피 제품을 맞닥뜨리면 어떤 느낌이고, 대응은?
[B] 2002~2003년 되니까 산업용 다리미시장이 진짜 실버스타와 가짜 실버스타, 둘로 딱 갈라졌다. 사실 우리 입장에선 별로 나쁠 것 없었다. 이로 인해 모든 봉제산업 종사자들에게 ‘실버스타’가 다리미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짜 등장 전에는 브랜딩 되어도 아는 사람만 알았다. 중국에서 우리 제품이랑 똑같이 만들어 전시회를 통해 대대적으로 ‘실버스타’를 선전하는 바람에 이제 중국 전역이 다 알게 됐다. 이렇듯 가짜들도 많이 팔려 품질 저하 오해로 인한 피해도 있지만 ‘실버스타’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확산시켜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카피제품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저는 일본산 다리미와 경쟁을 해 시장을 뺏어 왔는데 중국 카피 업체들은 ‘실버스타’를 놓고 자기들끼리 치고받기 하다가 50여 개이던 카피업체가 현재 세 곳으로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평정이 되면서 우린 우리대로 중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코로나 재난으로 해외출장, 오프라인 전시회 기회가 사라져 애로사항이 많았을 텐데?
[B] 저희 바이어들은 친구나 다름없다. 전시회장에서 보지 않아도 이미 다 안다. 이럴 땐 전화 한 통이면 통한다. 그동안 긴 세월 이어진 인간적 관계 덕이다. 미국에서든 남미에서든 전화로 ‘얼만큼의 수량을 보내달라’고 하며 물품 대금을 보내온다. 일단 신뢰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 설명은 필요 없다. 코로나 재난 중 상대국 셧다운으로 2~3개월 살짝 힘든 시간은 있었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는 남미를 1년에 평균 세 번씩 갔다. 특별히 할 말은 없어도 무조건 얼굴 보러 가는 거다. 만나서 업무적 이야기를 사실 얼마나 하겠는가, 뻔한 건데… 가족들 만나 밥도 먹으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그 나라 금융, 문화, 경제 사정을 피부로 느껴 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렇게 쌓은 신뢰가 결국 이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려움을 덜어주고 있는 셈이다.

= 다리미 하나로 반세기를 기록했다. 앞으로 50년 ‘산업용 다리미’의 운명은?
[K] 곁가지 없이 단일 아이템으로 50년이다.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개구리와 다르지 않아서 어떤 돌멩이에 맞을지, 어떤 물결에 휩쓸리지나 않을지 늘 위태하다. 방심하면 돌멩이에 맞고 물결에 휩쓸려 사장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50년을 이어온 것은 기적이며 축복이다. 창업주의 뜻을 이어 다리미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선도한다는 각오로 2세 경영에 임하고 있다. 또다시 100년 기업을 목표로 가족경영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스물아홉살인 아들은 외부에서 경험을 더 쌓은 다음, 합류키 위해 현재는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밖에서 부모가 미처 놓치고 있는 많은 것을 보며 견문을 넓힌 다음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산업용 다리미라는 아이템 특성상 앞으로 50년도 큰 지각변동은 없으리라고 본다. 옷 공장에서 사람 손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동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그러기에 절대로 ‘다리미’란 물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옷을 안 입고 몸에 무얼 쏴서 가리는 세상이 오지 않는 이상 뭔가를 걸쳐야 한다면 다리미는 살아남을 아이템이 확실하다. 한때 링클프리 소재가 유행한 때도 있었다. 안 다려 입어도 된다고 광고하지만 구김이 완벽하게 펴지진 않는다. 또한 생산공정 중에 솔기를 가르지 않고 옷을 만들 순 없다.

은성전기(주) 중국 가흥 공장

= 국내 의류매장을 평정한 ‘스티머’도 효자 아이템이다. 독점적 시장 점유 비결은?
[B] 오래전, 미국 출장길에 ‘스티머’란 아이템을 처음 접했다. ‘스티머’는 미국서 많이 팔리는 아이템으로 다리미와 원리가 비슷해 회사로 돌아와 개발을 제안했다. 당시 3년 정도 개발 과정을 거쳐 초기 제품을 출시했다. 의류매장에서 매일 박스를 뜯어 접히거나 구겨진 옷을 펴서 진열해야 하는데, 스티머를 사용함으로써 매장 인력 절감은 물론 신속․깔끔한 다림질이 가능해, 입소문이 번졌다. 백화점을 비롯 각 의류매장에서 주문이 쇄도하자, 여러 업체에서 스티머를 출시하기도 했다. 저희 스티머는 3시간 반을 과열되지 않고 연속 사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설계되었고 아침에 한 번 물을 채우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용량과 효율성 면에서 고객들이 저희 제품을 주로 선호했다. 현재 내수․수출 비중이 40:60으로, 다리미와 함께 스티머가 내수시장을 상당 부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 현재 실버스타 아이템의 생산은 어디서 이뤄지고 있나?
[B] 2005년까지는 메이드인코리아로, 이후부터 메이드인차이나로 바뀌었다. 현재 중국 가흥공장에서 90% 조립되고 있다. 스티머는 한국 포천공장에서 모두 조립, 출고된다. 공장이 중국으로 가서 좋은 것은 제조원가가 많이 내려간 점이다. 아직도 제조에 있어 한국보다 훨씬 유리하다. 만약 다리미를 한국에 가져와서 만들면 원가가 40~50%는 올라갈 것이다. 원부자재 인프라는 한국과 똑같다. 처음엔 품질 개념이 없어 많이 힘들었다. 2000년에 처음 중국에 들어가서 부품 납품처 구축과 토지 매입해 공장 짓느라 생산은 2005년부터 가능했다. 물론 그동안 한국 공장에서 생산은 끊김없이 이어졌다. 중국 공장 가동을 미국 바이어들이 특히 반겼다. 이유인 즉, 한국에서 계속 생산하면 제품가가 올라갈 텐데 중국으로 가서 생산해 제품가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 중국 공장을 관리 운영하며 22년을 보냈는데, 현지 적응 팁?
[B] 브라질 가서 공장 차리라면 주저해도 중국 가서 공장 차리라면 쉽게들 간다. 그만큼 중국을 쉽게 생각한다. 많은 한국 분들이 ‘한국은 이런데, 중국은 왜 이러냐’고 한다. 말이 안 된다. 중국은 중국이라서 그런 거다. 중국법에 A라고 적혀 있고 한국법에는 B라고 적혀 있다 치자. 중국 가서 여기 왜 B라고 적혀 있지 않냐는 것과 같다. 또 하나 극명한 예를 들면, 우리나라 세무서에 가서 ‘나 수출하는데 관세환급 해줍니까?’ 하면 ‘네, 해줍니다’라고 한다. 그 대답 안에는 100% 해주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반면, 중국 세무서에 가서 ‘관세환급 해줍니까’ 하면 관리는 ‘네, 해줍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왜? 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중국 관리는 속으로 ‘왜 품목은 언급 않지?, 품목마다 관세가 다른데…’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물어보지 않으니까 됐나보다 한다. 속인 게 아니다. 나중에 보니까 ‘어라, 내 품목은 왜 50%만 환급해 주지?’ 자, 그럼 누가 잘못한 걸까? 우리나라 사람은 ‘얘네들이 속였다. 해준다 해놓고 안해줬다.’라고 하겠지만 중국 관리는 ‘해준다고 했지, 언제 내가 다 해준다고 그랬나. 이건 품목마다 다 다른데 네가 물어보지 않았잖아’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 고정관념을 가지고 상담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자기 품목 관세환급이 얼만지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도 남 탓만 한다. 이러한 예가 엄청 많다. 물론 중소기업들은 인력도 없고 정보도 없어 이렇게 당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은 정보를 갖고 움직이기에 물론 이렇지는 않다. 저흰 그래도 한 지역에서 오래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는 네트워킹이 괜찮은 편이다.

= 끝으로 관련 업계 또는 고객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은?
[B/K] 지금까지 ‘실버스타’를 믿어주신 고객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모든 바어어가 한결같이 저희와 함께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신뢰할 수 있도록 품질과 신의로 보답할 것이며 100년 기업을 향해 브랜드를 가꾸어 나가는 데 전사적인 노력을 다하겠다. <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