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 (주)애플라인드 대표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둔 강원도 원주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가 되어 젊은 인구의 유입도 많아져 생기 있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 기업도시 산업단지의 3,300평 대지 위에 건평 3,000평의 본사를 짓고 사무, 개발을 비롯해 봉제, 완성, 물류 등의 생산 인프라를 두루 갖춘 (주)애플라인드의 김윤수 대표는 자신의 31년 봉제 노하우를 결집해 사명감으로 원주 본사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한다. 그의 사명감은 섬유·봉제가 진정한 미래 산업이며, 그 어떤 산업보다 가치 있고 존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다부진 표정의 김윤수 대표는 본사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31년간 봉제업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실패를 해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신축해서인지 건물이 훌륭합니다. 본사를 원주에 두신 이유가 있으신지?
이곳에 오기 전에는 판교에 본사가 있었습니다. 저희 사옥에는 물류를 비롯해 봉제 완성 생산현장, 그리고 사무동, 개발실, 직원 복지 시설 등이 고루 갖춰져 있습니다. 현재 시설을 계속 확충 중이며 근로자들 모집도 한창 진행 중입니다.
본사를 원주에 둔 이유는 이곳이 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젊고 활기가 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원주는 20~40대, 즉 일할 수 있는 인구비율이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높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문에 교통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인구 유입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도시이며 이곳을 기점으로 섬유 봉제산업을 새롭게 꽃피우고 싶은 바람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의류수출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고 해외 공장도 운영해 본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에서 ‘Applerind(애플라인드)’라는 자체 브랜드 사업을 진행하시는데…
OEM을 전문으로 생산하던 업체라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1991년, 우리나라와 제일 가까운 중국 땅 ‘위해’에 첫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무역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어의 요구 조건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중국 땅을 노크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 그 후에 연길에 스웨터 공장을 투자했다가 동포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몸만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에도 나가보고 심지어 아프리카 케냐까지 나가서 봉제를 했습니다. 아프리카까지 다니며 이십여년을 해외로 떠돌았지만 남은 것은 빈 손 뿐이었습니다. 결국 얻은 결론이 내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OEM은 내 사업이 아닙니다. 내 브랜드를 가지고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내 사업입니다. 제가 아프리카를 왜 갔겠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하면 부라보를 외치는 바이어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관세혜택도 많아 생산할 수만 있으면 바이어들은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습니다. 바이어들이야 환호하지만 정작 우리 같은 OEM 납품 업자들은 남는 것이 없습니다. 바이어들이 아프리카에서 생산하니까 이것도 깎고 저것도 깎아서 결국 내 손에 남는 것은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문을 보실려면 봉제기술 2016년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