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를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출판문화단지가 끝나가는 지점에 문발IC가 보인다. IC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하여 다시 재두루미길로 좌회전해 3분쯤 더 진행하면 ‘nawon’ 로고가 선명하게 나붙은 웅장한 건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씸실링기의 지존인 ‘나원기계(대표 : 서기원)’ 자체 사옥이다. ‘나원기계’는 아웃도어용 봉제품의 스티치 부위를 방수처리하는 씸실링기 전문 메이커이다.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건물 외관이 기자를 압도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내부시설 그리고 쾌적한 작업 공간을 구현한 공장 내부가 또한번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직원들의 휴식공간인 사내 카페에서 동사 서기원 대표와 마주했다.

듬직한 체구, 부리부리한 눈매, 서글서글한 미소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그는 1989년 3월, 서울 양평동 영등포유통센터 옆, 허름한 골목 안에 6평 공간을 빌려 첫 간판을 내걸고서 맨주먹으로 ‘씸실링기’에 몰두했다. 4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 1,400평 공간(대지는 3,200평, 건평은 3,400평에 이름)에서 최첨단 제조설비를 갖추고 여전히 씸실링기와 씨름 중이다. 장족의 발전을 이뤄낸 그야말로 외골수 장인(匠人)이다. 그를 만나 사이드스토리를 들어보고 첨단시설을 갖춘 공장 내부도 둘러봤다. 글로벌 브랜드가 된 ‘나원(nawon)’의 의미가 궁금했다. “딸 이름 ‘한나’에서 ‘나’, 제 이름 끝자 ‘원’에서 따왔습니다.” 별 의미는 없다면서도 설명을 덧붙인다.

“한나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 그리고 원은 으뜸 ‘원’이지요. 서 대표는 신실한 크리스찬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서 대표가 봉제기기와 연(緣)을 맺게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다. 그의 첫 직장은 문화방송(MBC) 보도국 엔지니어 부서다. 86 아시안게임 직전에 입사, 3년 간 근무했다. “그 당시 방송국 엔지니어들이 외부 알바를 더러 했어요. 극장식 나이트클럽에서 대형 가수쇼가 있을 때면 방송국 엔지니어들이 몰래 방송장비를 빌려주기도 하던 그런 시절이었죠. 대부분 일본제 고가 첨단장비들이라 이를 다루는 방송국 엔지니어들의 기술 수준도 월등했습니다. 88 올림픽 준비로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데 정문 경비원이 말을 걸어 왔어요.
그분 지인이 무슨 기계를 개발 중인데 문제해결이 안돼 끙끙 앓고 있다며 한번 만나 줄 수 있겠냐고 했어요. 만나 보니 씸실링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겁니다. 무엇에 쓰는 기계인지도 당연히 몰랐죠. 틈나는대로 방문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씸실링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거죠. 88 올림픽 준비로 방송국이 바쁜데 심실링기에 꽂혀 한눈을 팔다보니 눈밖에 났던거죠. 지방 방송국으로 좌천시키는 바람에 그만 둔 겁니다. 그때가 1989년이죠. 당시 개발 중이던 씸실링기를 영원무역 공장에서 테스트를 했습니다. 기계 설계 관련 협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성기학 회장님도 만나게 됐고, 봉제 특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지요.”
이후 그는 봉제주변기기 공급업체, M社에 들어가 잠깐 기계개발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만 안고서 결국엔 독립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첫 둥지를 튼 곳이 영등포구 양평동이다. 처음엔 자동 연단기도 만들었지만 이미 잘 하고 있는 곳이 있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씸실링기에만 열중키로 했다. 1991년도 쯤 영원무역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첫 오더를, 그것도 넘치게 수주했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태흥, 진웅, 신동, 효성, 반포 등 기라성같은 기업들로부터 구매가 이어졌다. 제때 납품하기 위해선 인력 충원이 필요했다. 제조설비도 더 들여 놓아야 했다. 더불어 요구하는 성능에 대응키 위해 연구 개발속도도 높여야 했다.
이런 이유로 좀 더 넓은 작업공간을 찾아 서울 남부지원 뒤편 100평 남짓 공장으로, 다시 신정동 인근 500평 규모로, 공장 이전을 거듭하며 볼륨을 키워갔다. 그즈음 임대공장에서 벗어나 자체 공장 마련을 위해 수도권 외곽에 부지를 물색하던 중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예외없이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 마침 거래하던 영국 바이어가 선뜻 20만 불을 내놓았다. 나중에 기계로 갚으라면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다시 힘을 얻었다. 점 찍어둔 파주시 동패리에 처음 500평을 사서 공장을 지었다. 이후 주변을 조금씩 사들여 2,500평 규모로 넓혔다. 넓은 작업 공간은 물론, 기숙사를 비롯 부대시설을 갖춰 나갔다. 그러던 중 파주일대 신도시개발로 공장 일대가 수용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지금의 공장 부지를 사들여 ‘꿈의 공장’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서기원 대표의 안내로 제조 현장을 둘러봤다. 쾌적한 작업 공간을 보며 ‘공장이 이럴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선 머릿속에 입력되어진 공장의 개념에 혼돈이 왔다. 높은 천정과 넓은 공간에 들어선 생산, 조립라인은 너무나 질서정연했다. LED 등은 작업 최적 조도에 맞춰져 있다. 노란색 에어호스도, 조립 중인 기계들도 오와 열이 착착 맞다. 조밀하게 설치된 닥트와 환풍장치는 분진을 용납치 않는다. 첨단 가공설비가 들어선 공간에는 작업인원이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다. 기술자의 명을 받은 첨단 장비가 알아서 척척 깎고 꺾고 자르고 다듬어 내기 때문이다. 머시닝센터 7대, CNC 자동선반 6대, 쇠를 자르는 레이저 컷팅기 1대, NCT 펀칭기 1대, CNC 절곡기 1대, 초음파 주파수 아날라이저 1세트 등을 갖춰 놓았다.
도장과 도금 빼고는 이곳에서 완벽하게 처리가 된다고 했다. 공장 내 생산, 연구, 자재, 조립, 가공, 관리, 연구소, 시험실, AS팀(영업)을 합해 현재 40명이 근무하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기숙사와 식당, 카페(휴게실)을 두고 있으며, 외국 바이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도록 4층에 호텔 부럽지 않은 게스트하우스(3개 룸)를 갖추고 있다. “씸실링기, 본딩기, 웰딩기 등 현재 우리 회사에서 제조되는 모델 종류는 30~40가지에 이릅니다. 용도에 따라 기계가 다 틀리죠. 기계 가짓수가 많은 이유는 원단 소재가 다양하고 원단 특성 또한 다양해 거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씸실링기는 계속 소재개발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합니다.
누가 어떻게 재빨리 바꿔 나가느냐에 승패가 갈린다고 봅니다. 바로 우리 회사가 첨단자동화 생산설비를 자체적으로 완벽하게 갖출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공장을 안내하던 서 대표는 개발 중인 미완의 기계 앞에 멈춰섰다. “이제 봉제기계도 자동화에서 한단계 뛰어넘어 로봇화로 가야 합니다. 1차로 신발 장비의 로봇화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맞는 로봇을 우리 설계팀이 자체적으로 개발 중에 있지요. 초정밀 분야 세계 최고인 스위스에서 로봇 부품을 가공하는 초정밀 시스템을 곧 도입할 것입니다. 어마무시한 가격이나 필요하기에 투자하는 겁니다. 물론 로봇 설계 전문업체와도 협업해나갈 것입니다.

이제는 봉제산업에도 자동화는 일반화 되어버렸지요. 로봇화가 살 길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잘 만들어 놓은 장비를 카피하기 급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원천적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기법이라든지 봉제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계를 우리가 미리 연구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기 위해선 봉제현장과 매우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영원무역 봉제공장과 협의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은 ‘제발 내가 동(動)해서 살 수 있게끔 만들라’고 주문합니다. 다들 어렵다고 합니다. 기계가 팔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기계가 안 팔리는 게 아니고 내 아이디어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아이폰이나 삼성 갤럭시폰이 이제 더 이상 안 팔린다고 가정합시다. 여기에 기가 막히고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가 더해져 기능이 추가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갖고 있던 거 다 집어던지고 다시 구입할 겁니다.” 중국 청도공장에서는 주로 구 모델 위주로 생산한다. 본사 공장과는 차별화 되어 있다. 근래들어 중국 현지인이 운영하는 의류공장들이 베트남, 캄보디아,미얀마, 인도네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데 ‘청도나원기계’는 이들을 상대로 씸실링기를 상당량 수주받아 공급해오고 있어 현재 가동 사정이 아주 좋은 편이라 했다. 서기원 대표는 “베트남 하노이 공항 인근 쪽에도 기계 조립공장을 준비 중이며 앞으로 인도네시아에도 조립공장을 둘 것”이라 밝혔다.

국내외 전문 전시회 참가에 대해, 서 대표의 생각은 명료하다. 타이밍만 맞으면 국내외 봉제기기 관련 어떠한 전시회에도 다 참가하겠다는 것이다. “전시를 하면서 시장동향도 살피고, 봉제기기에 대한 견문도 넓히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는 게 그 이유죠. 중국 ‘청도나원기계’의 경우도 1년에 서너군데는 자체적으로 참가하며 전체적으로 연 10~12개 전시회에 참가하는 편입니다.” 즉발적 전시효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존재감을 확인시킴과 동시, 고객과의 호흡을 맞추기 위함이라 했다. 부쩍 관심이 커지고 있는 무봉제에 대한 생각도 들어봤다. “봉제쪽에서의 무봉제는 대체로 본딩작업을 얘기하는데 그동안 본딩 작업하던 것은 웰딩 작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옷을 봉제공정 없이 완벽하게 붙여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기계만 해결해야 되는게 아니라 제대로 붙이기 위해서는 패턴도 바뀌어야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아무 원단이나 무봉제를 가능하게 하는게 목표입니다. 지금 수준은 재봉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초음파를 이용해 붙이는 정도이지요. 앞으로 획기적 방법이 나올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린 올해만해도 무봉제 관련 기계특허를 20건 정도나 출원하는 등 전력을 다하고 있지요.” 제대로 된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기계가 입체화 되어야 한다는 게 서 대표의 지론이다. “모든 옷은 입체적이지요. 퍼커링 역시 기계가 입체적인 옷모양과 연동되지 않아 발생하는 것입니다. 씸실링기 헤드가 옷모양을 따라 움직이 듯 재봉기나 프레스도 입체적인 옷모양에 따라 연동되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봉제산업에도 4차혁명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