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안정세에서 점차 오름세로 돌아설 무렵, 국내 최대 봉제수출업체인 S사의 한 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유가가 오르면서 해외공장 한 곳에서 한 해 보일러에 들어가는 기름 값만 억대가 나온다며 문제 해결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유가가 계속 오르기 시작하면 보일러에만 연간 소요되는 비용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고민으로 시작해 개발한 것이 지금은 해외 봉제공장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소각보일러이다.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수많은 난단, 소위 ‘기레빠시’를 태워 그 열원으로 스팀을 만들어내는 보일러.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난단은 돈을 주고 업자에게 뒤처리를 맡기는 것이 보통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소각보일러 개발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후반까지 업계에서 사용되었고 삼호보일러 역시 소각보일러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출업체와 손잡고 함께 만든 봉제공장용 난단 소각보일러 1호가 중미 니콰라과 공장에 설치되었다. 그 소각보일러 가동 1년 후, 한 해 1억 8천만 원이 소요되던 보일러가 유지비로 한 해 1천만 원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료비는 제로였고 소각보일러 설치로 한 해 1억 7천만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1호 소각로 설치 후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S사는 니콰라과를 비롯해 과테말라,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모든 해외공장에 소각보일러로 교체하는 공사를 벌였다.
S사 뿐만 아니라 내로라는 수출업체 H사도 이 소문을 듣고 해외 각 공장별로 소각보일러 검토 작업이 진행된 후 곧바로 교체 공사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어 닥친 소각보일러 열풍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늘 삼호보일러가 원조의 자격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삼호보일러의 소각보일러는 200대 이상이 보급되어 있는 상태다. 소각보일러 주문이 밀려들다보니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한 번은 대형 수출업체에서 6대의 소각보일러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1호기 제작을 끝내고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설치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 공장에서 테스트를 끝낸 소각보일러를 현지에서 설치하고 가동해보았더니 계속 연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6대 계약 분 중 1호기를 설치하는 상황이었으니 오죽 당황했겠는가? 급히 국내 공장의 생산 책임자를 불렀는데 비행기 표가 없다는 것을 거래 여행사를 동원, 사방으로 수소문해 어렵사리 최단 시간에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담당자가 와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잘 가동되던 보일러가 베트남에 와서 안 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이기원 대표는 현장에 있었는데 화도 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면서 결국 한 직원이 연통을 둘러보던 중에 이물질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보일러 현지 조립과정에서 작업자가 실수로 이물질을 넣고 빼지 않아 연기가 계속 발생했던 것이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하마터면 6대 보일러 계약이 파기될 뻔 했던 아찔한 장면이었다.
소각보일러 보급이 한창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어느 때부턴가 소각보일러에서 그을음이 난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사용연료인 폐원단의 원재료 성분이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그을음 발생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초창기 소각보일러가 보급될 시점에는 면계열의 자연 재료였다면 점차 의류의 고기능성이 강조되면서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등 석유화학 소재가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면계열의 자연 소재와 석유화학 소재의 폐원단은 소각보일러에서 연소 방법이 다르고 기술적인 대응도 달라야 했다. 분진 발생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거치면서 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삼호보일러도 많은 연구 개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금은 자연 소재나 석유화학 소재, 목재 등 어떠한 연료를 사용해도 분진이 거의 없는 전천후 보일러를 개발, 보급하고 있다. 요즘에는 환경친화적 보일러 개발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중미나 동남아 국가들도 점차 환경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이어 측에서도 되도록 공해 발생이 적은 친환경 설비를 요구하고 있다. 삼호보일러 역시 시대에 발맞춰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매뉴얼대로 사용하면 가장 좋습니다.”
소각보일러 전문업체의 수장으로서 이기원 대표가 알려주는 올바른 소각보일러 사용 팁(Tip)이다. 일반 기름 보일러와 달리 소각보일러는 사람이 연료를 직접 화구에 넣어서 가동한다. 따라서 연료를 넣는 방법이나 양에 따라서 화력의 편차가 있고 때로는 과부하에 걸리기도 한다. 특히 더운 지방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원단 쓰레기를 한꺼번에 넣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한번 넣을 때 지정된 중량을 넣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날씨가 더워 작업자들이 편법을 쓴다고 많이 넣어놓고 투입 주기를 줄이려는 꼼수를 부리다보면 연기가 많이 나고 스팀량이나 온도 편차가 발생하는 등 고장의 주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기본에 충실하게 매뉴얼대로 사용했을 때 소각보일러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고 수명도 오래 보장된다고 귀띔했다.

“제품 하나는 믿을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소각보일러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그렇지 사실 삼호보일러는 소각보일러만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라 섬유 봉제 외에 다양한 산업분야에 사용되는 보일러를 생산하는 종합보일러 메이커이다. 봉제업계에 워낙 많이 알려진 덕분에 이 분야 전문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타 산업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탄탄한 토종 보일러 기업이다. 삼호보일러는 1969년 ‘삼호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현재 이기원 대표는 4대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고 종합보일러 메이커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보일러 전문업체였지만 이 대표가 취임하기 전에는 거의 한 가지 보일러만 생산하는 단촐한 기업이었다. 삼호보일러는 강원도 철원에 공장이 있다. 철원에서 포천, 서울로 이어지는 국도 변에는 과거부터 식품 공장을 비롯해 양말, 염색 공장들이 많았다. 공장이 위치한 철원부터 사무실이 있던 서울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 주변의 공장들과 주로 거래했다.

사무실과 공장으로 이어지던 길이어서 접근성이 좋아 업체들과 자주 만났고 A/S도 제때 해주었기 때문에 이곳 업체들은 다른 메이커 보일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밀착된 영업에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당시 취급했던 보일러의 성능에도 그 비결이 숨어있었다고 한다. 동사가 창업 후 30년을 버틸 수 있게 만든 보일러가 바로 입형연관식 보일러다. 동사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입형연관식 보일러는 사용이 편리하고 내구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제품이었고 고객들의 신뢰도도 높았다. 울타리는 좁았지만 고객과 밀착된 영업으로 30년을 버텨올 수 있었지만 환경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유지할 수 없었다고 이 대표는 밝혔다.
대학 졸업 후 대형보일러 업체에서 잔뼈가 굵어온 그였기에 삼호보일러에 임원으로 입사 후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직접 인수하면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입형연관식 보일러 하나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고 보고 산업용 보일러 쪽으로 아이템을 늘려갔다. 식품, 섬유용 보일러에서 점차 대형 특수 보일러와 고효율 보일러 쪽으로 개발을 시도해 하나씩 새로운 제품 진용을 갖췄다. 보일러 종류가 늘어나고 판매도 증가하면서 매출도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기존 철원 공장은 옆 부지까지 매입해 공장 크기를 2배인 5천평으로 늘렸다. 여기에는 제조시설 뿐만 아니라 직원복지를 위한 다양한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휴게실을 비롯해 기숙사, 샤워실, 사무동 등의 시설을 완비해 근무 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보일러는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장비입니다.”
삼호보일러가 강조하는 고객 우선주의는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A/S 정책에서 잘 나타난다. 삼호보일러의 장비는 섬유 봉제뿐만 아니라 식품 쪽 분야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중 두부제조공장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두부 만드는 공정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고된 과정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두부 공장은 새벽 2시부터 제조가 시작된다. 전날 불려 놓은 콩을 스팀으로 찌는 과정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보일러가 고장 나면 재료를 모두 버리게 된다. 불린 콩은 재사용을 할 수 없어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한다.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삼호보일러가 A/S를 1년 365일 24시간 가동 체계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식품 분야뿐만 아니라 동사 전 장비의 A/S는 1년 365일 24시간 가동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사 보일러가 50여년 사랑 받는 이유도 고객들이 A/S 하나 만큼은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A/S를 강조하다보니 간혹 해외공장에 설치한 보일러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조사의 결함이던 사용자의 실수이든 A/S 요청에는 자사 제품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고 밝혔다.

“50년 한 우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세월 동안 쌓인 노하우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저희 경쟁력 아니겠습니까.”
올림픽 전후로 보일러 업체가 많게는 300개 업체가 넘었다고 한다. 그 후 IMF 등을 지나면서 급격히 줄어들고 재편되어 지금은 1/10도 채 안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군사정권 시절 운동을 좋아했던 대통령이 운동장 가득 걸려있는 보일러 업체 광고 현수막을 보고 ‘보일러 업계가 이렇게 호황인가’라는 말은 했을 정도였다. 그 많던 보일러 업체는 어디로 갔을까? 기술을 갖추지 못한 군소업체들은 모두 장막 뒤로 사라졌다. 지금은 대형업체와 기술력을 갖춘 업체, 그리고 일부 신생업체들이 생겨나 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지만 삼호보일러는 50년 역사와 그 동안 쌓인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그것이 큰 자산이자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저희는 영업사원도 많지 않고 마케팅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여건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일했기 때문입니다. 직원 모두가 제품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저희 제품을 믿고 찾아주며 그것이 계속적인 성장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