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현지 르뽀 베트남 편 | POOGIN VINA CO., LTD.

‘과학봉제’로 흑자 경영 실현 ”

매출 4억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풍인무역의 핵심 생산기지인 베트남 빈증 법인인 풍인비나(POOGIN VINA Co., Ltd.)를 방문해 유호일 법인장을 만나 보았다. 안팎의 봉제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고 있는 치열한 모습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 풍인무역의 빈증 공장에 실제 와보니 규모가 크다. 이곳 공장이 해외 기지 가운데 핵심이라고 들었는데 이 법인을 비롯해 베트남 생산 현황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지금 풍인비나 빈증 법인은 전체 4개 공장을 합쳐 자체 75개 라인을 가지고 있고 현재 하노이에서 20개 라인, 그리고 다낭에서 16개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다낭 법인은 현재 한창 건설 중인데 공항에서 대략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베트남 공장은 빈증, 다낭, 하노이로 이어지는 남중북으로 길게 분산 배치되어 있으며, 이곳 호치민과 가까운 빈증 공장이 가장 큰 생산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풍인의 핵심 생산기지라 할 수 있다. 자체 라인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베트남 매출의 70% 가량이 이곳에서 발생된다.

정면에서 본 풍인비나

 베트남 생산기지를 바탕으로 풍인무역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비결은 무엇인가?
초창기 설립 후 처음 10여년 간은 우븐류 여성 의류만 주로 생산했고, 이후 니트쪽을 개발하고 생산을 확대해 볼륨을 키웠다. 우븐으로만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니트 투입 후 매출이 급격히 늘었고 창립 27년 만에 4억불 매출을 달성했다. 풍인의 강점은 무엇보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오더가 많다는 점이다. 다른 업체들은 절대 거래할 수 없는 바이어와 오더가 우리에게는 많다. 인도네시아 공장의 경우, FOB 가격 기준으로 600불짜리 여성 재킷도 많이 생산한다. 이런 제품은 판매가가 3,000불에 달한다. 최근 니트 물량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아주 평이한 옷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니트 중에서도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오더가 많다. 특히 니트와 우븐이 결합된 믹스 매치 제품을 많이 생산한다.

유호일 법인장

 올해 오더 상황은 어떤가?
4억불 실적 달성의 환호도 무색하게 실제 지난해 매출은 떨어졌다. 우리뿐만 아니라 규모를 막론하고 전 벤더가 다 떨어졌다. 그래서 전체 업계가 지금 비상상황이다. 특히 4월 들어서는 거의 전쟁이다시피 하고 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오더 수주전이 거의 쟁탈전 양상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틈새 전략으로 우리만 할 수 있는 오더가 많아 수주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향후 상황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바이어들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벤더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니트는 전반적으로 하락세이고 우븐은 다소 상승세인 점이 우리에게는 다소 유리한 국면이기는 하다. 다낭이나 하노이 공장은 우븐을 기본으로 우븐 니트 복합 제품 생산이 강세다. 그러나 이런 믹스매치 제품도 이제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다. 누구나 다 하는 품목이 되어가고 있는데 한 때는 특수 라인에서 이런 제품을 생산했다.

 가공임 동향은 어떤가?
작년 7월 현재 공장에 부임하고 현장 파악에 들어갔을 때 가공임 동향을 살펴보니 15%는 인상된 가격을 받아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상은커녕 인하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임금 인상 요소분 12% 정도를 반영하면, 공장 채산성면에서 봤을 때 약 27%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 부분 이 임가공비에 반영되면 공장은 간단히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가. 이 마이너스 요인을 안은 채 공장을 돌려 흑자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경쟁업체보다 더 저렴한 가공임으로 말이다. 결국 처음부터 흑자는 힘들고, 언제까지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본사에 제시한 후 가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마른 수건을 짜듯 원가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최대한 빠른 시점에 흑자로 전환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하노이, 다낭은 다 그런 경로를 거쳤다.

풍인비나 빈증 공장에는 약 50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 베트남에서 봉제업의 향후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의 법인장 모임에 자주 참석한다. 호치민 인근의 대형 공장 법인장들이 대부분 참석하는 이 모임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제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참석한 법인장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경험이 많은 이들인데 이들이 하는 말이 대개 비슷하다. ‘No where To where’라는 것이다. 더 싼 곳을 찾아 베트남을 떠나도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법인장들 뿐만 아니라 바이어들도 이제는 안다. 그들 역시 다른 곳으로 눈길을 주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기존 하던 곳에서 더 뽑아낼 수 있을까, 더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벤더들에게 린시스템 등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라고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베트남 법인장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베트남은 최근 주변국에 비해서는 임금인상폭이 드라마틱하게 높게 올라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다만 통상임금법을 적용함으로써 임금 계산법이 달라졌다. 베트남에서 더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잘 살펴야한다. 여건이 만만치 않다. 베트남의 통상임금법은 예를 들어 기존에 60만원 지급받던 근로자가 120만원도 받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 통상임금법은 수당과 보험금 등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고정비용을 기본금에 산정해 계산한다. 이럴 경우 맹점이 오버타임에 있다. 오버타임에 적용되는 수당은 150% 지급해야 하는데 기본금에서 계산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달라진 통상임금법을 적용하고 베트남에서 더 뽑기 위해서 바이어들은 리드타임을 줄이라고 한다.

예전에 65일 주던 리드타임을 45일로 줄이고 이제는 25일까지 줄이려고 한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과학봉제’라고 명명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봉제는 사람과 기계가 일대일로 붙어서 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인간의 감정변화나 능력 그 밖의 변수가 작용할 수 여지가 많다. 쉽게 예를 들면 유독 생산성이 오르지 않은 라인이 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날따라 부부싸움을 한 근로자들이 많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리팀들은 항상 라인을 분석하고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봉제는 좀 더 세밀하게 관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어떤 관리적인 수치를 0.5까지 파악했다면 지금은 0.55까지 단위를 세밀화한다. 베트남이 통상임금법이라는 임금적 압박이 있고 여기에 바이어가 리드타임을 줄이라는 시간적 압박을 주는 상황에서 벤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서 마른 수건을 쥐어 짜 물방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철저하게 라인과 생산을 분석하고 관리팀은 마치 전산팀이 된 듯이 그래프와 수치 싸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한사람을 줄이고 더 생산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대개는 장비를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행히 풍인은 기계 장비에 대한 투자는 과감하다. 제 역할은 공장에 필요한 장비를 본사에 피드백해주는 것인데 거기에는 합리적인 이유와 나름대로 파악한 수치가 제시되어야 한다.

풍인비나는 풍인무역의 전체 4억불 매출 실적 달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 달라진 통상임금법 적용으로 현지 업체들의 대응도 다양할 텐데 풍인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우선 잔업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1일 1시간 30분이 적정 시간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잔업을 아예 없앤다면 좋겠지만 그럴 경우 근로자들이 임금이 줄어 반발을 살 수 있고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적정 잔업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잔업으로 최대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리드타임을 줄이기 위해서 생산체크 단위도 줄이고 있다. 기존에는 한 시간 단위로 체크했다면, 이를 50분으로 줄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5분으로 줄여 체크하고 있다. 생산체크 단위를 줄이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가하면 심리적인 문제인데 작업자들이 시간을 체크할 때 한 장이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생산체크 단위를 줄여서 11번을 더 체크하면 하루 11벌이 더 생산된다. 이런 작은 생산성 증가가 모이면 큰 역할을 한다.

 생산단위만 줄인다고 근로자들이 따라와 주나?
봉제는 분위기 즉 일하려는 의욕이 중요하다. 무작정 목표량만 던져놓고 하라면 누가 하겠나. 적절한 인센티브 부여로 작업 열의를 높여야 한다. 단순히 생산목표량을 어느 정도 초과달성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럴 경우 목표량만 달성하고 더 이상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정확하고 세밀하게 초과 목표 달성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지급도 한 달 단위로 하던 것을 주단위로 끊어서 지급하는 것으로 바꿨다. 지급방식도 통장 입금이 아니라 시상식을 열어 초과달성한 라인에 직접 봉투를 지급하여 경쟁심 유발과 동기부여를 했다. 통장으로 바로 받게 되면 인센티브의 효과가 별로 없다. 이렇게 조금씩 나눠서 지급되지만 전체적인 규모는 기존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각 라인별로 혹은 공장별로 너무 차등이 가지 않게 관리한다. 각각의 특성이 분명한데 너무 불공평하게 지급되면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비교적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생산체크 단위를 줄여 세밀한 관리를 해나가고 있는 현장 내 모습

 인력 문제는 없는지?
우리 공장은 장기 근속 직원이 많다. 그래도 미싱사가 부족하다. 주변보다 전반적인 수당이 높아 다른 공장들의 원성도 듣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그동안 능동적으로 인력 모집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우리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반경 15킬로 이내의 마을을 대상으로 적극 구인 캠페인에 나설 예정이다. 주 공략지는 여자 미용실이 한 마을에 3개 이상 있는 동네다. 이 동네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회사를 홍보하고 적극적이고 친밀한 접촉을 통해서 인력을 확보해올 것이다.

 큰 공장을 운영함에 있어서 법인장의 역할 중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법인장이지만 사무실에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장을 살피고 기술 가진 담당자들과 수시로 문제점을 상의하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간혹 관리자인 내 시각이 기술자들이 간과한 부분을 알아챌 때가 있고 그런 점을 하나씩 개선해나가면 현장에 작은 도움이 된다. 자체 본공장은 우리가 관리하면 되지만 하청 협력공장 관리는 더 힘들 때가 많다. 협력공장들의 자금 문제나 운영에 관해서 본사에서 관리하기가 힘들어 베트남 법인이 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 부분을 잘 맞춰주어야 전략적으로 하청공장을 관리해 나갈 수 있다. 우스개소리로 ‘놀고 먹는 것이 법인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실제 말 그대로 공장 내에서 함께 놀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인장은 직원들과 같이 생활하며 함께 하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이 생활해보면 일하는 직원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법인장의 조절 능력이 발휘된다. 한량처럼 공장을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 속에서 예리한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월급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법인장인데 가장 큰 역할이 바로 조절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법인장은 그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적절한 과목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소통하고 다독여야 한다. 제가 웬만하면 공장 내에서 기숙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끔 본사에서 최고 결정권자들과 현지 법인 직원들과 식사를 하게 된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속에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어떨 때는 강한 질책성 얘기를 들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어떤 것이 중요한 이야기이고 어떤 것은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법인장의 역할이다. 질책을 받았다고 그것을 아랫선에 그대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법인장이 판단해서 필요한 것을 취하고 때로는 그냥 흘릴 것은 흘릴 필요도 있다. 법인의 사기를 위해서 법인장은 당근과 채찍을 정확히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봉제라인 모습

 인도네시아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고 들었는데
청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회사생활까지 합치니 근 20년 넘게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했다. 부친께서 대한항공이 인도네시아에 출항하면서 현지 지사에 근무하셨다. 가족들이 모두 현지에서 생활했고 나는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내다가 대학 1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한 학기도 못 채우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공부해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 한국인 1호 학생으로 입학해 졸업까지 마쳤다. 이후 인도네시아 사업 진출을 확장 중이던 K상사 기획조정실에 특채되어 입사하였고 이 업체가 야심차게 준비해오던 비료사업부 사업권을 따기 위한 프로젝트팀에 소속되어 일했다. 계분을 활용해 비료를 만들어 현지 판매를 위한 사업권이었는데 현지 정부와 관련 수의계약을 맺기 위해 국내 경쟁업체와 치열한 쟁탈전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결국 그 팀은 해산하고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는데 섬유사업본부로 근무지를 옮겨 약 7년간 일했다. K상사는 인도네시아 봉제 수출 개척 1세대였던 업체로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에는 비교적 사업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그 때부터 봉제와 인연이 시작된 거다.

총 4개의 자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풍인비나는 외부 협력공장도 다수 가동하고 있다.

 이후 행보도 궁금한데?
K상사 근무 당시 회사는 수출 봉제 사업이 거의 끝물이었다. 결국 섬유사업본부를 퇴사하고 이후 취직한 데가 수영복으로 유명한 A사였다. 이 회사는 좀 독특한 데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 본사에서 실험적인 해외소싱을 한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수영복을 생산하는데 저는 지사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너도 아닌 역할을 수행했다. 1인 지사장제였는데 급여가 없었다. 지사장이 오너이면서 직원 신분이기도 했다. 공장을 운영해서 이윤을 취하는 시스템인데 오더는 본사에서 주고 내가 에이젼트가 되어서 생산 후 이윤을 가져갔다. 대신 리스크에 대한 대비 명목으로 월 1만불을 고정적으로 지불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현지에 공장 섭외하고 관리 인원 채용하고 영업하고, 공장 관리하여 본사로 납품하는 것이 임무였다. 클레임에 대해서는 5대 5로 회사와 내가 책임을 물기로 하고 모든 생산을 진행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선진화된 운영방식이었다. 당시 이렇게 운영한 재무재표를 살펴보면 썩 나쁜 편은 아니었다. 채용인원이 20명가량이고 하청 협력업체8개 공장을 운영했다. 협력공장들은 마스터계약을 체결해 1년 내 전라인을 우리 오더만 하는 조건으로 했다. 그리고 월 1만불의 리스크 비용을 받았다. 수영복은 7개월이 성수기이고 나머지 5개월은 가동 유지만 하는 정도였다.

많은 근로자가 일하고 있지만 풍인비나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비수기에는 경상운영비를 제외하고 회사 지원금 1만불을 합치더라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연간 따져보면 상당히 수익이 좋았다. 수익은 좋았지만 당시 잠을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별로 없었다. 1인 다역을 소화해야했기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었다. 그러다가 변화가 찾아왔다. 수영복 업계는 글로벌한 환경이라도 좁은 게 사실이다. A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을 지켜보던 미국의 한 바이어가 당시에 통 큰 제안을 해왔다. A사 수영복 생산을 하더라도 비수기에는 다른 바이어 오더를 투입했기 때문에 인연이 된 바이어였다. 당시 이 바이어는 전 세계 수영복 바이어 중 가장 큰 업체였다. 공장을 통째로 차려 줄 테니 자신들의 물량을 최소 80% 정도는 생산 공급하라는 주문이었다. 요구하는 시설은 모두 투자하겠으니 운영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해서 바이어의 요청대로 공장을 만들었다. 많을 때는 인원이 6천명에 달했다. 이 바이어가 통큰 투자가 가능했던 것이 연간 매출이 10억 불에 이르는 업체였기 때문이다. 주 거래업체가 월마트와 타겟이었는데 단순 임가공이 아닌 제품을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구조였다. 월마트, 타겟에서 수영복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업체가 만든 수영복을 대량으로 사가는 구조였다. 그 만큼 자금력이나 모든 것이 갖춰진 바이어였다. 한번 수주하면 단위가 1백만장 짜리가 많았다. 6천명 자체 공장을 풀가동하고도 성수기에는 하청라인만 200개 정도를 더 가동해야 할 정도였다. 국내 아무리 큰 대형 벤더가 오더를 해달라고 해도 유휴 캐파가 없을 정도로 물량이 컸다. 이렇게 대형 공장 몇 년 하다가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바이어가 언제 얼마만큼의 오더 주겠다고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등 허언하는 빈도가 증가했고 내 정보통에도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았다. 결국 공장을 정리하기로 했는데 원소유주가 그 바이어였으므로 양수양도하기 위해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당시 국내 한 업자에게 공장을 처분했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공장 하나를 양수양도하는 것이 쉬운 절차는 아니었다. 이 공장을 마지막으로 20여년의 인도네시아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동으로 향하는 현지 근로자들

 풍인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내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풍인무역이 현지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오너께서 공장 오딧 통과에 대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탁해오셨고 그럴 때 가끔 일을 도와주곤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난 후 얼마 있다가 만났는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하면서 바로 출근하라는 통보 아닌 통보를 받았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은 채 부장 직함으로 출근했는데 대뜸 베트남으로 출장가라고 하셨다. 한국 근무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지금 베트남에 와 있다.

 현재 베트남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행정적인 문제나 일처리, 관료와의 관계에서 어렵고 답답할 때가 많다. 실제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시달릴 때가 많다. 대사관 주관의 베트남 진출 주요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보면 현지 관료들에게 많은 업체들이 시달리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지적재산권 문제로 이유 없이 급습하듯 관리들이 들이닥치는 것이나 타겟성 세무조사 같은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관료들의 앞뒤가 맞지 않은 행정 처리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공장 내에는 모든 하수처리관이 매설되어 있는데 외부로 배출할 곳이 없다. 외부에 하수관을 만들어주지 않고 공장 내 하수관을 문제 삼는다. 외부 하수관을 만들어주지도 않고 하수 처리를 왜 따지냐고 하면 그들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대면하고 간 뒤에 얼마 후 또 다른 관료가 들이닥쳐 똑같이 배수시설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나타나면 우리로서도 참 어이가 없다. 관료들의 업무처리 능력이나 불합리한 행정 처리에는 아쉬움이 많을 때가 종종 있다.

취재: 李相澈 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