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트랩을 빠져나오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한낮의 호치민은 찜통 그 자체다. 탄 손 낫 공항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빵빵하게 내뿜는 에어컨 바람이 더없이 반갑다. 호치민의 더위는 5월의 우기가 시작되기 전, 4월에 절정을 이룬다. 초절정의 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호치민에서 열리는 봉제기계/섬유전시회 ‘사이공텍스(Vietnam Saigon Textile & Garment industry Expo 2018)’를 참관하기 위해 5시간을 날아왔다. 봉제기계 제조, 무역, 유통, 의류생산 등 봉제산업 종사자 스물네 분이 본지가 마련한 이번 전시참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와이 쭁랑’도 어엿한 패션아이템

전시가 열리는 사이공 전시 컨벤션센터(SECC)는 푸미훙 뉴시티(Phu My Hung New City)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호치민시 중심부에서 15분 거리, 탄 손 낫(Tan Son Nhat) 국제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오토바이의 물결 속을 용케도 헤쳐 나간다. 오토바이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거리풍경이다. 통화하며 한 손으로 운전하는 것 쯤은 예사다.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한 손으로 핸들 잡고 또 한 손은 마차를 끌기도 한다. 위험천만해 보이나 여유만만한 표정이다. 너나없이 달인 수준이다. 둘은 보통이고 셋이 타는 모습도 흔하게 눈에 띈다. 오토바이 물결을 한참 보고 있으려니 어지럽다. 마치 굽이치는 냇물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짧은 스커트의 여성들은 ‘와이 쭁랑’으로 감싸고 오토바이를 탄다. 일종의 덧치마다. 베트남의 인구는 9천 6백만명에 이른다.
오토바이 대수는 약 4천 5백만대로 두 명에 한 대 꼴이다. 오토바이 시장은 물론이고 마스크와 헬멧 시장도 그만큼 크다. 오후 2시 반경, 전시장(SECC) A1홀 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여기서 입장티켓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저쪽 A3홀로 이동하면 기다릴 필요없이 바로 발급받으실 수 있다”라는 안내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 게 탈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전시홀을 이어주는 이동카에 올라 야외 천막부스 맨끝으로 이동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인 2시라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안내원의 말 대로 기다림없이 즉석에서 발급받아 천막 전시부스로 들어섰다.

조금 전 북적이던 A1홀 입구와는 사뭇 다르다. 한산했다. 패브릭 전시관이었다. 봉제기계 전시관을 보러온 일행들이라 아연실색할 수밖에. 낑낑대며 들고 있던 책(봉제기술) 박스를 입구에 놔둔 채 패브릭관 다섯개홀을 가로질러 봉제기계관인 A2홀 위치를 확인한 다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무겁게 가지고온 책 박스가 온데간데 없다. 그새 일행들도 봉제기계 부스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다. 다행히 박스는 일행이 챙겨 한국관 부스에 맡겨 두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전시참관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서야 한국관이 있는 A2홀에 발을 들였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Vietnam Fabric & Garment Accessories Expo와 동시에 개최된 이번 전시회는 베트남의 섬유 의류산업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최측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는 10개 홀(3만 2천 평방미터) 공간에 27개국 880개사들이 참가해 최신 섬유 봉제기기와 자동화 기술 그리고 봉제 원부자재를 소개하였으며 특히 넓은 공간에 제품을 여유있게 배치하여 쾌적하게 참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며 “그 결과 전시기간 중 3만여 봉제섬유산업 관계자들이 다녀가는 등 베트남 및 주변국가의 모든 구매자에게 원스톱 시장을 성공적으로 제공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둘러본 전시장 모습은 주최측의 포장(?)과는 조금 달랐다. 우선 섬유 봉제기기가 전시된 A1, A2홀의 경우 참관객은 붐볐으나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각 부스에 출품된 기기들이 참관객들의 동선을 고려치 않고 일반 매장에 빼곡하게 진열해둔 모양새였다. 게다가 소음이 엄청난 섬유직기가 군데군데 섞여 있어 상담은 커녕 옆사람과의 대화도 불가능한 부스가 많아 참가사나 참관객 공히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나 독일,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봉제기계전시회에 비해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도 떨어지긴 매한가지다. 총 10개 홀 중 패브릭과 액세서리 전시공간을 빼면 섬유 봉제기계 전시공간은 두개 홀이다. 한국봉제기계공업협회(회장: 손병준)는 이번 전시회에 한국관을 별도로 운영해 한국 참가기업들의 바이어 상담 등 비지니스를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헌국관에 ‘나원기계’를 비롯 17개사 참가

A2홀에 자리잡은 한국관에는 은성전기(실버스타 스팀아이롱), 나원기계(심실링기), 레빗쵸크(쵸크), 태우정밀(큐텍스 자동 절단기), WIT(패션용 필름), 정인테크(텐션.이송기), 일신기계(재봉사 와인더), 실론(심실링 테이프) 등 봉제기기와 부자재업체 외에도 태신(크로셋 편직기), 태신아이앤티(소폭 직기), 반도텍스맥(렌스헤밍기), 대일테크(염색기), 삼성침기상사(편직용 바늘), 영흥기계(부분 정경기), 이화에스알씨(연사기), 한스아이앤씨(포목 교정기), 해인기계(호부기) 등 섬유기기 업체 17개사가 참가했다.


이밖에도 베트남에서 봉제기기 사업을 전개 중인 양지인터내셔널, 파란인터내셔널, 태광인터내셔널 등 다수 기기 공급사들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으며 낯익은 세계 유명 봉제기기 브랜드 부스에는 한국 에이젼트사 담당자들이 한국 고객을 응대하며 마켓팅 지원을 펼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북적대는 섬유봉제기기 전시홀에 비해 패브릭과 패션 액세서리를 전시한 A3~A10홀은 매우 한산했다. 야외에 설치된 천막부스인 A9홀에는 Korea Textile Center를 비롯, (주)지레가씨, (주)가온니트, 가림텍스, Jain Co., Ltd. 성안합섬(주), 실사랑, 그리고 A11홀에는 효성 베트남 법인(Hyosung Vietnam Co., Ltd.)이, A7홀에는 유니임펙스 베트남법인(Uni Impex VN Co., Ltd.)이 각각 제품을 선보였다. 개략적인 전시장 레이아웃을 익힌 다음, 한국봉제기계공업협회 부스를 찾았다. 이곳은 오는 11월 14일부터 사흘간 대한민국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한국 봉제기계 섬유산업전시회인 GT Korea 2018 (Korea Int’l Garment Machinery & Textile Industry Fair 2018)을 알리는 홍보 부스이기도 하다. 기자 역시 ‘GT Korea 2018’을 준비하는 실무팀의 일원인지라 곧장 출품유치 예정사 파악에 들어갔다.


하루 전 이곳에 도착해 홍보활동을 전개 중인 GT Korea 실무팀에 합류해 전시장을 돌며 참가 유치를 위한 전략을 모색하기도 했다. 개막 첫날 오후에 입장한 터라 두시간 남짓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봤다. 내일은 10시부터 17시까지 왼종일 전시참관이다. 심도있게(?) 보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17시, A1홀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석식 장소로 이동했다. 40여분을 달려온 버스는 기와지붕이 네온빛으로 곱게 장식된 베트남식 레스토랑 길 건너편에 멈춰섰다. 길을 건너야 하는데 오토바이 대열이 끊어지질 않는다. 건널목도 신호등도 없다. 한참만에 현지인 가이드 Ly의 도움을 받아 줄지어 달리는 오토바이를 가로질러 천천히 건넜다. 사람도 오토바이도 멈춤없이 물 흐르듯 정리가 되는게 그저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아오자이를 예쁘게 두른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 길다란 식탁에 일행들이 마주앉았다. 베트남식 만찬이다. 쌀국수가 빠질 리 없다. 이어 이름모를 먹을거리가 줄줄이 등장했다. 접시를 비우기도 전에 또 새로운 찬이 나온다. 우리 말로 상다리가 휘어질지도 모르겠다. 모르면 물으라 했다. 가이드 Ly에게 상 위에 오른 베트남 음식의 설명을 부탁했다. 우리가 흔히 ‘월남쌈’으로 알고 있는 것은 ‘고이꾸온(Goi Cuon)’이다. 라이스페이퍼 위에 부재료를 넣어 말아 땅콩소스에 찍어 먹는다. 베트남식 파전이라는 ‘반쎄오(Banh Xeo)’의 맛도 독특했다. 쌀가루 반죽에 돼지고기, 새우, 숙주 등을 넣어 얇게 부쳐서 만든다. 기자의 식성은 잡식성이라 해외 어딜 가도 고민은 없다. 그런데 이번 일행 중 유독 입맛이 까탈스런 한 분이 있었다. 해외출장이나 여행땐 아예 입맛에 맞는 집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 했다.

“현지 음식에 적응해 보려 노력해 보았지만 인력으로 안되더라”며 챙겨 온 반찬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호텔을 체크인 했다. 일행들은 캐리어를 룸에 들여놓고선 호텔 뒷편에 있다는 여행자 거리로 행차했다. 이 거리는 조그만 까페와 숙소, 그리고 저렴한 가게들이 많아 백패커들 간 소통과 정보 공유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라 했다. 내일 오전 전시장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다는 핑계로 아쉽지만 소생은 몸을 뺐다. 대신 호텔 옥상(31층) 스카이라운지를 찾아 한 잔의 생맥주로 도심 야경을 안주삼아 첫날 일정을 마무리 했다. 이튿날, 06시 10분. 너무 이른 시간인가, 레스토랑이 조용하다. 어젯밤 여행자거리로 나갔던 일행들은 07시로 정한 모닝콜을 받고서야 레스토랑에 출몰할 것이다.
준비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 깔끔하게 셋팅된 창가 식탁에 앉았다. 서빙 직원이 다가와 “커피 드시겠냐?”고 묻는다. ‘어라, 다른데선 직접 가져다 마셨는데…’ 평소 즐기지 않는 커피지만 대접 받는 기분이라 그러겠노라 했다. 우아하게 조식을 즐기고 있는데 스마트폰 창에 페이스북 메신저가 도착했다. “호치민에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일정이?” 호치민에서 공장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오랜 지인이다. 30여년 전 업무적으로 자주 접하다가 해외로 나가 한동안 소식이 뜸했기에 더없이 반갑다. 오늘 저녁 호텔 로비로 찾아오겠단다.
전시 둘째날, ‘GT Korea 2018’ 참가업체 유치를 위한 미팅이 한국관에 마련된 GT Korea 홍보 부스에서 진행됐다. GT Korea의 중국 에이전트社인 ‘RITEX’의 Emily Yao 총경리로부터 중국 기기업체 접촉 내용을 비롯 참가유치 성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 / 승 / 전 / 생산라인 자동화


Emily Yao 총경리는 “다수 중국 메이커들이 오는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봉제기계전시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접촉 결과 이미 한국판매대리점을 통해 참가신청을 한 곳도 더러 있지만 다른 많은 메이커를 접촉 중이며 오는 8월초까지 중국 기기메이커의 참가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장 내에서 낯익은 한국 봉제기기 관계자들과 현지에 진출한 봉제공장 관계자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 봉제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심은 봉제자동화에 쏠려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 봉제공장 관계자의 이야기다. “한때 풍부한 인력에 매료되어 이곳으로 옮겨 왔지만 인력은 물론 인건비 상승 부담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이곳에 전시된 새로운 기종들은 인력절감을 위한 자동화에 맞춰진 느낌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봉제·섬유기업들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며 “봉제진출 1세대 기업들이 노동집약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산라인 자동화를 하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베트남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에 몰두 중인 파란인터내셔널 손동효 대표(사진)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은 공장자동화 개념이다. 얼마나 더 스마트하게 함으로써 경비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꾀하느냐가 관건이다. 재단 자동화, 봉제자동화 행거시스템, 사이니지 솔루션(Signage solution)을 통해서 직원들을 교육하고 영상을 쇼룸에 비치해 바이어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준다. 우리는 삼성 사이니지로 여기에 맞는 데이터들을 볼 수 있도록 솔루션도 만들고 관리한다. 이를 위해 삼성 사이니지 솔루션 베트남 총판을 맡고 있다”고 했다.
시장조사 차 전시장에 들렀다는 단추공급장치 전문업체 로이바의 백승규 과장은 “매번 전시회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자동화가 필수라는 점이다. 저희가 자동화기기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중국산과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까 여러 한국 메이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가격경쟁력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에서 싼 기계를 만들어야 되는지, 가격경쟁력을 불구하고 고퀄리티로 가야 되는 건지 헷갈린다. 중국 CISMA Show를 보면 중국 봉제기기의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자동화 속도는 엄청 빠르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게 우리 메이커들의 고민이다”라며 자동화 기기 개발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유수의 재봉기 브랜드와 낯익은 봉제주변기기 브랜드가 대부분 눈에 띈다.


그러나 직접 출품한 곳은 몇 안된다. 대부분 베트남 판매대리점을 통해 전시되었다. 그러다보니 전시 공간에 각종 브랜드로고가 함께 붙어 있고 장비 또한 뒤섞여 있다. 새로운 기종을 선보이는 전시회라기 보다 이것저것 잔뜩 진열해 놓은 매장과도 같은 분위기다. 패브릭, 액세서리 등이 전시되어 있는 A9홀은 실내가 후텁지근하다. 천막관 실내 천장을 가로질러 설치된 천으로 만든 간이 닥트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오나 뜨거운 외기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A11홀에는 효성그룹이 베트남 현지법인(Hyosung Vietnam Co., Ltd.)을 통해 스판덱스 섬유인 크레오라 에코소프트와 수영장의 염소 성분에 강한 크레오라 하이클로, 의류 착용시 발생할 수 있는 불쾌한 냄새를 없애주는 크레오라 프레쉬 등을 선보였다. 또한 사계절 내내 덥고 습한 베트남 현지 기후에 맞춰 자외선 차단, 흡습속건, 냉감 기능성을 보유한 폴리에스터 소재인 아스킨(Askin)과 나일론 소재인 아쿠아엑스 등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 참관 중인 은하봉제 박재진 대표는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자동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살길을 찾기 위해 전시회 투어 기회를 자주 갖고 있다. 나 혼자만 봐서 될 일이 아니기에 직원들을 동행시켰다. 지난번 전시(상해 CISMA)에선 200% 만족하고 돌아왔는데 이번은 200% 실망이다. 전시규모도 작은데다 우리 공장에 필요한 아이템을 찾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11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GT Korea 2018’가 더욱 기대된다”고, 전시관을 분주히 오가다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시다.

본지와 함께한 참관단 일행은 오후시간을 시내 투어로 조정해 빠져나간 터라 혼자서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반드시 비나썬(Vinasun Taxi)이나 마일린(Mailinh Taxi)이라 쓰여진 택시를 타라”는 현지가이드 Ly의 말에 따라 전시장을 나와 택시 승차장에 줄을 섰다. 믿을 수 없는 택시를 타게 되면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하나, 길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미터기 금액을 올리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정코스로 호텔까지 주행하면 대략 12만동 나올거라 했다. 택시기사에게 호텔 명함과 함께 15만동을 보여주며”오케이?”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뱅뱅 돌 것 같은 불안감 없이 차라리 이런 방법이 좋다는 가이드 Ly의 팁을 준수한 것이다. 퇴근길 러시아워에 좀비처럼 몰고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잘도 피해가며 30분만에 호텔 앞에 데려다 주었다. 호텔룸에 들어서니 티비 화면에 내 이름이 적힌 메시지가 떠 있다. 호텔 밖에서 귀중품을 잘 지키란 당부다. 가방은 어깨에 메고 도로를 걸을 때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잘 챙기란다. 오토바이 날치기가 심하다더니 호텔측에서도 이런 식으로 고객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나보다. 막간을 이용해 전시장에서 만난 분들과 교환한 명함을 리멤버 앱으로 정리한 후 지인과 만나기로 한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다.

고깃집 ‘아리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봉제기기업으로 시작, 공장컨설팅으로 나름 교민사회에 일정 역할을 하게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에게서 들었다. 이국에서의 사업을 꾸려간다는 게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때로는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벼랑끝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가 존경스럽다. 참관단 일정 3일차다. 오늘은 구찌 쇼핑(?)이다. 오해마시라. 명품 구찌(Gucci)가 아니라 월남전 땅굴인 구찌(Cu Chi)터널 체험이다. 체크아웃을 마친 일행은 09시 30분, 버스에 올라 구찌터널로 향했다. 차량 정체 극심하다. 도로변 나무그늘에 해먹을 줄지어 걸어놓은 쉼터가 이색적이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세워놓고 한숨 자고 가는, 일종의 졸음쉼터인 모양이다. 호치민의 젖줄이라는 사이공강도, 실개천도 한결같이 탁한 흙탕물이다. 두시간여를 달려 고무나무가 즐비한 지역을 지나 버스는 구찌터널 주차장에 멈춰섰다. 월남전 당시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이다. 잔혹하고도 열악했던 게릴라전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 주는 터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구찌터널은 그야말로 과학이다. 치밀한 계산과 사소함도 놓치지 않은 설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어 봉제품(의류, 가방, 신발 등) 짝퉁시장인 ‘사이공스퀘어’를 둘러본 후 사이공강 선상 위에서 호치민의 밤풍경을 만끽하며 Tiger맥주를 곁들인 만찬을 끝으로 공항으로 이동, 일정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