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불 수출을 향해 대형 엔진을 달다.
베트남 다낭 인근의 꽝남성 팬코 땀탕 공장은 10만 평 부지 위에 대규모로 건설되어 가동 3년 차에 이르고 있다. 향후 1만5천 명, 240개 라인의 매머드 공장으로 가동될 땀탕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한철준 상무에게 현황 및 전망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팬코의 미래가 걸린 대형 프로젝트, 베트남 남중부 다낭 인근 꽝남성 땀끼시 땀탕(Tam Thang industrial zone, Tam Thang commune, Tam Ky City, Quang Nam Province)섬유공단 조성 및 자체공장 건설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중국 산동성의 청도, 평도 공장 철수를 결정하고 베트남을 메인 생산기지로 만들려는 팬코는 기존 빈증 공장만으로는 늘어나는 캐파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생산기지 건설 목표를 세우고 여러 검토 작업을 거쳐 선택한 지역은 꽝남성. 호치민, 하노이 지역이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포화상태에 이르러 인력확보가 힘든 상황을 감안, 항구 항만 시설이 잘 갖춰지고 인건비 수준도 저렴한 꽝남성을 적지로 선택했다. 꽝남성은 자체 인구뿐만 아니라 인접한 성에서 인력 유입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결국 이곳 꽝남성 땀탕산업공단에 단일 공장으로는 손꼽히는 대규모의 공장을 2015년 7월 기공, 1년여 만에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 팬코가 조성한 전체 공단 부지 250헥타르(약 58만 평) 가운데 자체 공장 부지만 총 30만 평방미터, 약 10만평 규모다. 폐수처리 시설 등의 부속시설까지 합하면 총 4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버티컬 일관체제 공장이다. 워낙 부지가 넓은 탓에 10개 공장동들은 동선을 고려해 빼곡히 붙여 배치했다. 중간에는 공장 2개 동을 합친 규모의 공장동 하나가 위용 있게 자리잡고 있는데 물류창고 용도의 건물이다. 땀탕 공장 건설은 2015년 현지 지방정부와 MOU를 체결 직후 토목공사와 건설공사가 거의 동시다 시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40만 평방미터 거대부지 위에 버티컬 생산 체계 완벽 구성

부지 주변으로 도로도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길을 닦아가며 수풀 숲을 밀어내고 공장 건설이 진행되었다. 한국인의 저돌적인 돌파 기질이 여지없이 증명되었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공장은 놀라운 속도로 완공되었고 건물이 들어서자 바로 인력을 모집하고 2016년 중반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숨 가쁘게 밀어붙인 결과 현재 전체 10개 동의 공장 동 가운데 5개 동이 설비를 마무리하고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땀탕 공장의 일부 시설은 중국 청도와 평도에서 건너온 것이다. 평도의 염색, 편직 라인 시설을 비롯해 청도 봉제 기기 설비까지 이곳으로 옮겨왔다. 전가의 보도처럼 일관, 버티컬 생산체계를 중시하는 팬코의 기업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어쩌면 팬코의 철학이 담겨있는 곳이 땀탕 공장이다.
현재 3개 주요 오프쇼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공장은 모든 인원이 충원되고 풀가동을 가정했을 때 240개 라인, 월 6백만 피스, 연간 7,200만 피스의 의류를 생산하게 된다. 연간 편직 10만kg, 포염 10만kg도 생산하며 전체 인원 약 1만 5천명 가량이 일하게 된다. 베트남의 현재 메인생산기지인 빈증공장이 179개 라인에 연간 5100만 피스 규모임을 감안할 때 땀탕 공장은 그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최대 규모의 매머드 공장이 된다. 그래서 땀탕 공장은 팬코의 미래가 걸려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팬코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이는 뼛속까지 팬코맨이라 할 수 있는 한철준 상무다. 사회생활 첫발을 딛기 시작하면서부터 27년째 오직 팬코맨으로만 근무하고 있는 그는 팬코의 첫 해외기지인 중국 청도 진출에서부터 철수, 그리고 마무리까지 20년을 현지에서 생활하다 이곳으로 베트남으로 새로 부임해왔다. 이런 이력을 가진 만큼 그는 팬코의 오프쇼어 역사와 함께 한 인물이다. 회사의 미래라는 중책을 맡은 만큼 반드시 정상화의 반열에 올려야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 아직도 공장 풀가동을 위한 준비로 하루해가 짧은 한철준 상무를 드넓은 땀탕공장 현장에서 만났다.

올해 목표 가동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전체 10개 동 가운데 현재 5개 동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1개 동은 유니클로 전용라인으로 운용 중에 있습니다. 향후 공장 증설과 캐파 확대는 오더 상황과 경기 전망을 복합적으로 판단해 단계적으로 설비율을 높여나갈 예정입니다. 아직 초기 설립 공장이어서 바이어들도 어느 정도 판단을 해야 할 것이지만 고무적인 것은 주요 바이어들의 평가가 좋고 향후 전망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면 올해 목표는 8개 동 가동으로 잡고 있습니다.”

총 가동 목표 인원이 1만 5천명인데 인력 확보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하는 것이 저를 비롯한 직원들이 맡은 임무 아니겠습니까. 예상으로는 7,000명까지는 무난하게 인력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모집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꽝남성의 전체 인구가 약 150만 명 가량이며 그 중에서 저희가 필요로 하는 20~30대 노동 가능 인구는 남녀 각각 10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북쪽 트어티엔후에(Thua Thien-Hue)성, 다낭(Da Nang)직할시, 남쪽으로는 꼰뚬(Kon Tum) 성, 꽝응아이(Quang Ngai)성 등에서도 노동 인구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향후 15,000명을 고용하기 위해서 기숙사 시설도 공단 인근에 별도로 마련했습니다. 약 2000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규모인데 지금은 소수 인원이 생활하고 있고 대부분은 인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출퇴근합니다.

초기 공단 조성 과정에서 기초 인프라가 열악해 고충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입주기업에 대한 혜택은 어떻습니까?
속해 있는 공단 전체는 약 250헥타르 규모인데 주변이 정말 빨리 바뀐다는 생각이 들만큼 하루가 다르게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도로는 저희가 공장을 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국도와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편리해졌습니다. 이 공단은 팬코에서 조성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꽝남성 주정부가 개발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핸들링은 중앙정부가 관여할 만큼 국가적으로도 관심이 높습니다. 중앙정부에서 관심을 쏟는 만큼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에 대한 세제혜택도 많습니다.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받고 있는데 가장 큰 것이 소득세를 15년간 유예해 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7년간 면제해주고 나머지는 2년간 10%, 나머지 기간 동안은 50% 납부입니다. 중국이 저희가 진출할 당시 2년 면제에 3년 감액해준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공단의 섬유 봉제 관련 기업의 입주 현황은 어떻습니까?
섬유 관련 업체로는 저희를 비롯해 개성에 있던 문창기업과 영진비나, 덕산엔터프라이즈 등이 진출해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타이어코드 업체인 효성이 진출해 있습니다. 스리랑카의 한 유명 대기업도 패션 가먼트 사업 분야에 진출해 있고 타이완의 1000명 규모 봉제업체와 국내 캠핑, 배낭 관련 업체도 한 곳 진출해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청도, 평도 공장 철수 후 생산설비를 이 곳으로 이전해 왔는데 그 철수와 이전 과정이 순조로웠는지요?
중국 철수 타이밍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한중간 사드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철수를 매듭지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처음 진출한 것이 지난 1994년이었습니다. 당시 산동성 지눌이라는 곳에 투자했고 이후 1995년 장구 지역에서 경영난을 겪던 회사를 인수한 것이 본격 진출의 시작입니다. 이후 청도 공장은 45개 라인에 2천명까지 규모를 늘렸고, 봉제를 비롯해 염편직 생산라인까지 갖춘 평도 공장을 2005년 지어 2006년부터 가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국 봉제환경 악화로 철수를 고민하다 2016년 완전 철수를 감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저희가 중국의 생산설비를 이곳 베트남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사업을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철수를 결정하고 관계 당국과 상담을 했더니 그들 역시 공인들의 임금 문제만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 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모든 법절차에 따른 폐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당국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상당수의 공장들이 야반도주하다시피 공장을 버리고 귀국하던 때였습니다. 폐업을 결정하고 통보했을 때 직원들의 반발이 만만찮았습니다. 전체 직원 중에서 일부에서 집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지 매체까지 동원하며 이슈화하려 했습니다. 저희는 변호사를 선임해 최대한 잡음 없이 현지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폐업절차를 밟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이 20년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 대해서 최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반발하는 직원들과는 제가 직접 일주일간 개별 면담을 진행해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폐업에 따른 보상을 제시하며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폐업절차를 순조롭게 마무리했고 사회 이슈화 없이 조용히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염편직을 비롯한 대부분의 봉제 제조설비를 베트남으로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공장 정문 앞에 포크레인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폐업 공장의 모습에 비하면 저희는 순조롭게 잘 마무리한 케이스로 업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베트남으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 부임했을 때 공장 상황은 어땠나요?
2016년 5월31일 도착해 6월 1일 출근해보니 새로 뽑아놓은 직원 1000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일하고 있던 인원이 1000명가량 있었습니다. 새로 뽑아놓은 인력들은 전혀 조직화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각각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각 공정별 파트별로 분리했습니다. 순발력이 있고 이해가 빨라 보이는 직원은 조장으로 정하고 재단, 봉제, 완성 파트별로 인원을 나누고 교육에 들어갔습니다. 약 3개월 교육을 거쳐 테스트 오더 넣고 점차 안정화시켜 나간 것입니다. 전혀 조직화되지 않은 1000명을 데리고 가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이들 인원은 2차로 급히 모집한 인력이고 공장 가동과 함께 1차로 모집했던 인원은 자체적으로 운영했던 봉제아카데미를 통해 훈련받고 투입되었던 인원입니다. 교육기간 동안 생활비를 지원하여 어느 정도 기능을 익혀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에 2차 모집 때보다는 좀 더 조직적이고 수월했을 것입니다.

땀탕 공장이 회사가 목표한 정상 가동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공장 규모가 워낙 커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목표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바이어 오더 상황과 경기 전망이 양호하다면 현재보다는 2배 정도 확대된 8개 동의 생산설비 확충과 현장 가동이 올해 목표입니다. 땀탕 공장은 이제 가동 3년차에 불과한 신생공장이지만 무엇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되리라 예상합니다. 그 지원군은 바로 한참 먼저 진출해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빈증 공장입니다. 지금까지 팬코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오프쇼어 투자를 잘 진행해 왔습니다. 청도 진출 이후 평도 공장을 추가로 설립했고 비록 가동연도는 길지 않지만 이 공장 덕분에 주요 바이어와 거래를 확대할 수 있었고 덕분에 회사의 매출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중국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진출한 빈증공장도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청도, 평도 공장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최고의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땀탕 공장 역시 최고수준의 생산성과 품질을 인정받는 빈증공장이 있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목표한 정상궤도에 순조롭게 올라설 수 있을 것입니다.

OEM, ODM 전문기업이지만 팬코는 오래 전부터 패션 브랜드 사업을 지속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체 브랜드 사업은 섬유제조기업이 병행해가야 할 사업이라고 오너께서 오래 전부터 강조해 오셨던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제조업 마인드가 강한 기업이다 보니 다소 한계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옷 한 벌을 만들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할 때 패션유통 기업이라면 옷이 가진 값어치를 판단하지만 제조기업들은 원가부터 먼저 따집니다. 제조 원가보다 몇 배를 매길 수 있는 옷도 있지만 어떤 것은 원가 이하로 책정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제조로 출발한 기업이다보니 이런 부분이 좀 약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동안 브랜드 사업은 사실 순탄치는 못했습니다. 대형할인매장용 브랜드도 그랬고 중국 청도에서 진행했던 브랜드 사업도 최대 20개 매장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팬코는 부단히 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이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은 ODM 오더가 대세입니다. 시즌별로 유행할 디자인과 소재를 찾아 자체 개발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타겟층의 패션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소재 개발 등 전반적인 부분을 주체적으로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체 역량이라 할까 관련 노하우도 당연히 쌓이게 됩니다. 브랜드 사업을 할 수 있는 파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힘을 가지고 계속 그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제조업과 병행할 수 있는 자체 사업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도 브랜드 사업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좀 더 발상의 전환과 내부혁신이 된다면 언젠가 좋은 결과를 거둘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목표는 무엇입니까?
베트남 3년차인 제가 이곳 땀탕 공장에 실현하고 싶은 목표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제조기업으로서 QDCS(Quality, Development & Design, Cost, Speed)를 핵심가치로 정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가치를 실현해 내기 위해 올해 저희 공장에서는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야 한다, 한 번에 하자”라는 실천 구호를 매일 외치며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공장을 만들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별 직원들의 마인드가 정말 중요합니다. 중간 관리자들이 회사의 목표와 가치를 이해하고 현장 직원들에게 이를 심어주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장의 구호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이왕이면 실패를 최대한 줄이자고 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