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뷰 | 신민정 | 라잇루트 대표

“디자이너의 구상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도록”

봉제인들이 바라는 개선은 각양각색이지만, 그 끝을 따라가 보면 핵심은 결국 양질의 오더으로 귀결된다. 좋은 일감만 꾸준히 생기면 봉제회사에 걱정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좋은 일감은 어디서 올까? 이는 좋은 의류회사, 좋은 브랜드를 전제로 한다. 결국 옷 파는 사람들이 성공해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감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옷을 팔고 싶은 사람들은 누굴까? 가치를 담은 옷, 여태 없던 새로운 옷, 그리고 ‘내 옷’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 결국은 디자이너들이다.

당장 내 입에 풀칠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디자이너들이 좋은 옷을 만들수록, 봉제회사에도 일감이 많이 생긴다. 봉제회사의 성공은 결국 거래처의 성공에 달려있기 마련이다. 거래처가 커지면 봉제회사도 따라 커지고, 거래처가 쪼그라들면 봉제회사도 무너진다.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타나고 성장하는 일은 패션산업 전체에 걸쳐 중요한 문제다.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는 라잇루트(Rightroute)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조금 더 쉽게 세상에 내보일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다.

‘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오래가지 못할까’ 문제의식으로부터 라잇루트를 시작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는 라잇루트(Rightroute)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조금 더 쉽게 세상에 내보일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다.

특히 라잇루트 브릿지(Rightroute Bridge)는 의류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이니 단체가 원하는 단체복, 작업복의 디자인을 공모전 형태로 모집해 디자이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기업은 기성복이 아닌, 회사의 고유한 가치를 담은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라잇루트 신민정 대표는 원래 건축회사에 다니며 패션 관련 파워블로그를 운영하는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같이 협업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6개월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면서, ‘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오래가지 못할까’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라잇루트를 시작했다.

“왜 브랜드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의류제조 부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보통 ‘패션’하면 화려한 런웨이나 선망받는 삶을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떠오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핑크빛으로 보이는 거죠.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대부분의 디자이너나 봉제공장은 다 소시민, 소상공인이고, 환경도 열악해요.” 신민정 대표는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정말 잘 하는 친구들도, 자신의 디자인을 옷 형태로 소비자에게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어요. ‘한번이라도 내가 만든 옷을 소비자에게 내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들이 정말 많아요. 디자이너들의 꿈을 조금 더 쉽게 실현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라고 생각해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실무를 기반으로 한 생산 커리큘럼 개발 첫 서비스가 ‘라잇루트 아카데미’

신민정 대표가 처음에 착수한 작업은 실무기반 생산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의류 자체,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우지만 실제로 어디서 원단을 구하고, 어디서 옷을 꿰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교가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아요. 봉제회사 사장님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가격도 얼마가 적당한지 전혀 모르니까, 가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고요. 봉제공장 사장님들의 입장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요. 이런 부분을 알려주는 수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첫 서비스인 ‘라잇루트 아카데미’를 출시했어요.”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제가 직접 원단 염색까지 의뢰하보면서 시스템을 익혔어요. 제일 쉬운 맨투맨으로 어떤 공정이 필요한지 테스트하면서 6~7개월이 걸렸고, 교육으로 만드려면 좋은 사장님과 협업해야 하니까 공장도 여러 곳 찾았어요. 완벽한 퀄리티의 옷이 나올 수 있게 루트를 만드니까 1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패션을 모르는 입장에서 의류제작이 어렵지 않았는지도 물어봤는데, 그 당시에는 옷 만들어 보는 것이 취미생활의 일환이어서, 오히려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만들었다고 했다.

“작은 수량이 가능한지도 몰라서 첫 맨투맨은 100벌을 만들었고, 단체복 반팔티를 600개 만들기도 했죠. 만들고 나서 파는데는 한 4년이 걸렸어요. 안 팔려서 일부 기부하기도 하고요.(웃음) 아마 패션을 전공했으면 시작을 못 했을 것 같아요. 현실을 알면 알수록 너무 힘들고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일단 커리큘럼을 만들고 나니까,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이 선뜻 지원해 왔어요. 지금 인터넷에 라잇루트를 검색해 보시면 라잇루트 브랜드 쇼핑몰이 먼저 뜰 거예요. 거기에 걸린 제품이 아카데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옷이에요. 교육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판매까지 해 보는 거죠. 소비자 테스트를 할 수 있게요. 보통 아무것도 없는 회사에 선뜻 교육을 받으러 오진 않잖아요? 그런데 창업 전 테스트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운영하니까, 2회차부터는 매번 참여 디자이너를 추려야 할 정도로 신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디자이너와 기업의 가교역할 플랫폼, ‘라잇루트 브릿지’에 집중

라잇루트 브릿지는 기업들이 원하는 단체복, 작업복을 선택·제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공모전 형태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지금은 11기를 마지막으로 ‘라잇루트 아카데미’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신민정 대표는 말했다. “코로나로 오프라인이 잘 안되기도 하고, ‘라잇루트’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드는 생각이, 매 시즌마다 옷을 만들면서 패스트패션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게 된 것 같아서요. 빠르고 트렌디함을 추구하다보니 옷을 금방 입고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것 같고, 쓰레기 배출이라던지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래서 지금은 라잇루트 브릿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라잇루트 브릿지는 디자이너들이 조금 더 쉽게 자신의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이도록, 기업에게는 회사의 고유한 가치를 담은 옷을 선택·제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공모전 형태의 플랫폼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공모전에 참가하듯 제시한다. 선정된 디자인은 라잇루트를 통해 생산, 납품된다. “이제 기업의 유니폼도 기성품이 아닌, 회사의 정체성 담긴 제품을 입어야 되는 시대예요. 개성, 그리고 컨텐츠의 시대니까요. 특히 2020년에는 젠더리스 유니폼이라던지, 한복 느낌의 교복처럼 유니폼 시장에 새로운 형태의 옷들이 도입되고 있어요.”

신민정 대표는 기업이나 단체만의 개성을 담은 옷을 만드려는 수요는 많은데, 그동안 그 수요에 대응하는 플랫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의류제작, 프로모션처럼 아예 단체복을 기성복처럼 만들어주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의류디자인, 패션디자인 외주’로 검색하면 제대로 찾기가 힘들죠. 이건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문제인데,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옷으로 제작하려면 결국 직접 브랜드 론칭을 통해 옷을 만들거나, 대기업에 입사해서 디자인을 담당하거나, 도매시장 같은 곳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할 수밖에 없어요. 선택지가 별로 없는 거죠.” 신 대표는 ‘산업이 바뀌어야 디자이너의 취업률, 폐업률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봉제공장들과 파트너 형태로 협업 꾸준한 거래로 이제는 손발 척척

“플랫폼을 구축하자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관심을 보였어요. GS25에서 작업복을 디자인, 제작할 회사를 찾고 있었는데, 2주 동안 검색해서 저희 회사를 찾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이국종 교수님의 닥터 헬기 구조복도 저희 쪽에 의뢰가 들어와 제작을 맡았고요.” 한편 디자인과 패턴, 그리고 실제 옷에는 간극이 있고, 디자인 원안이 그대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공모전 등으로 채택되더라도 그대로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또 실제 옷을 만들어보지 않은 디자이너들이 종종 대량 생산 제품에 적절하지 않은 디자인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보았다.

“그 부분이 바로 저희 경쟁력 중 하나에요. 라잇루트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저도 느꼈지만,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들은 정말 ‘졸업작품스러운’ 옷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이런 디자인을 두고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가져가면서 판매 가능한 옷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게 꽤나 챌린지, 도전적인 작업이었거든요. 그렇지만 600개가 넘는 디자이너들의 옷을 상품화 해 왔어요. 조금 잘 그려진 것은 거의 그대로 만들 수 있고, 비용이 큰 디테일은 대체재를 찾는다던지 해서 디자인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옷을 만들어요. 4년 가까이 그런 일을 해왔고, 인프라도 확보됐기 때문에 이제는 큰 어려움이 아니게 됐어요.”

“봉제산업 분야에서 5년 가깝게 활동하면서, 파트너 형태로 MOU를 맺은 공장이 지방이 꽤 있어요. 정말 급한 건 서울에서 자주 협업하는 파트너 공장에게 맡기고, 깔끔한 봉제와 단가도 맞아야 되는 작업들은 지방 파트너 공장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몇 업체와 꾸준히 거래를 하다 보니까 이제 관리부문은 거의 손댈게 없어요. 전화 한 통이면 대개 의사소통이 끝나요. 도매 하시는 봉제공장 분들은 실수를 해도 그대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파트너 공장들은 오히려 이상한 부분 있으면 먼저 연락 주세요. 좋은 공장을 찾고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정말 오래 걸렸지만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건축회사는 제법 큰 기업이었고, 모든 만남이 다 비즈니스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공장들과 일하면 가끔 ‘밥먹고가!’하고 말씀하셔서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봉제 실수가 나면 저희 직원들도 다 같이 가서 밤새 봉제 뜯으면서 대화하기도 해요. 건축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이 사람 사는 것처럼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취재: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