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세명정밀은 1987년 ‘세명기계상사’란 간판으로 오버록 인터록 자동사절 디바이스를 봉제공장에 공급하며 출범했다. “1987년 말 어느날, 도봉구 방학동에 소재한 모 봉제공장에 들렀을 때다. 그곳 관리자가 ‘한국에서 못만드는 기계가 하나 있다’고 하기에 그게 뭐냐고 물었다. ‘자동 연단기’라고 했다. 이미 봉제자동화 장치를 개발해오던 입장이라 자존심이 상했다. 당시 일제, 독일제 연단기가 규모있는 봉제공장에서 더러 가동되고는 있었지만 대부분 공장에선 사람 손으로 연단(나라시)하던 때였다. 그 관리자에게 말했다.
‘우리 손으로 반드시 자동 연단기를 개발하겠다’며 나름 결의를 굳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세명정밀 김종철 대표를 만나 “왜 연단기였나?”라는 밑도끝도 없는 우문(愚問)에 김 대표는 연단기와 연이 닿게 된 계기를 현답(賢答)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김 대표는 그 길로 모 봉제공장에 설치된 니트용(다이마루용) 연단기에 주목했다. 여러날 드나들며 구동방식을 살폈다. 어떤 용도로 쓰여지는지도 관찰했다. 그렇게 독자적 아이디어까지 접목해가며 나름대로 도면을 그리고 기계 원리를 구상한 다음 본격 개발에 착수, 1년여만인 1989년 봄, 순수 자체기술로 국산 연단기의 첫모델(SM-1350)이 세상에 나왔다. 이 1호기를 1989년 1년동안 시흥대로 말미고개 인근에 있는 (주)대농 하청공장에 넣고 시운전을 거듭했다.

내구성과 기능, 효율성, 생산성 등의 테스트를 거쳤다. 뭐가 불편한지, 개선점 등을 면밀히 체크, 보완해 1990년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SIMEX ’90(서울국제봉제기계전시회)’을 통해 공식적으로 국산 연단기를 선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봉제인들이 어디서 수입한 제품이냐고 물어와 대문짝만한 글씨로 ‘국산 연단기계’라고 써붙여 놓았을 정도였다”라고 김종철 대표는 당시를 기억했다. 봉제공장이 호황을 누리던 당시, 연단기에 대한 관심은 부쩍 높아져 갔다. 이에 반응하듯 일본 연단기(NCA, TAKAOKA, KAWAKAMI, RED) 브랜드가 한국시장에 속속 상륙해 공략에 나섰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못 만드는 기계 있다는 바람에 오기로 개발에 뛰어들긴 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그럴수록 일본 연단기의 독식은 막아야겠다 생각했고 결국은 적중했다. 이후 해가 거듭될수록 국산 연단기의 성능은 업그레이드 되어 수입 연단기의 설 땅을 잠식해갔다. 그렇게하여 (주)세명정밀은 창립 3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자동 연단기 분야에서 수입 대체 효과가 빛을 발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꼿꼿하게 세웠다. 서울봉제기계전시회(SIMEX)에서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곧바로 우븐용 연단기를 개발해 일제 KAWAKAMI 연단기를 쓰고 있던 삼성물산 숙녀복공장에 설치했다.

일산과 국산 연단기가 한 공간에서 가동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국산 연단기에 대한 입소문이 번져나가 쌍방울, 백양, 태창을 비롯 내로라하는 중견의류기업들이 앞다퉈 세명정밀이 만든 국산 연단기에 관심을 보였고 들여놓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1997년도 말 기준, 세명정밀 연단기의 국내시장점유율이 7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연단기 시리얼넘버로 출시대수를 보면 국내 4천대, 해외 1천대 도합 5천대를 넘어섰다고 했다.
세명정밀에서 생산되는 연단기 종류는 11가지에 이르나 주종은 5가지로 니트용, 우븐용, 니트 우븐 겸용, 자동차시트 커버용 그리고 에어백용이 있다. 현재로선 90%를 연단기에 집중하며 스팀프레스는 주문에 따라 생산한다. 일단 연단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다른 회사의 아이템 영역을 넘지 않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국산봉제기계 메이커들의 사정이 어렵다. 국내 생산을 버리고 해외로 나가고 더러는 문을 닫기도 해 손꼽아 보아도 얼마되지 않는다. 이럴수록 서로 자기 영역 지켜가며 만들고 영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대륭테크노타운 3차에 공장과 사무실을 두고 있는 동사는 장기근속 중인 숙련된 현장인원 16명과 설계, 자재, 무역, 회계업무를 보고 있는 4명의 사무직원 등 20명이 시스템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레이저 재단, 도금, 도장은 외주작업으로 이뤄지며 나머지 모든 가공과 조립은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해외에 나가서 제품을 만들면 원하는 품질을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철판의 강도, 전자부품 등이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해 내구성이 떨어지고, 잔고장도 잦아 애로를 겪는 업체들을 종종 봐 왔다”며 앞으로도 해외로 나가 생산할 계획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세명정밀은 30년을 자동 연단기에 집중하다 보니 직원 개개인이 나름 최고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생산계획표만 주어지면 자동적으로 생산시스템이 가동되는 구조다. 납기에 쫓겨 바쁘면 각 부서가 스스로 알아서 잔업 계획을 세운다. 연단기 단일품으로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30년 노하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원단소재의 업그레이드 사이클이 점점 더 빨라질 것이며 원단소재에 따라서 장비도 가일층 발전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인건비가 다락같이 뛰다보니 모든 기능들이 자동화로 갈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공장에선 1년에 한 번씩 임금이 인상된다. 임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동화다. 연단기도 혼자서 운전이 가능하게끔 조작이 심플해야 한다. 관리측면에서도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며 “원단이 자꾸만 바뀌기 때문에 연단기 또한 그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져야 한다. 단순히 가격으로만 연단기를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

사용자가 싼가격만 고집하면 좋은 기능을 접할 수 없다. 사용자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할때 비로소 자신들이 원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무조건 원단만 올려놓고 연단이 된다고 다 연단기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김 대표는 경차와 중형차를 예로 들었다. “경차를 선택해 타면서 중형차의 승차감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경차도 중형차도 똑같이 네 바퀴로 간다. 에어컨도 나온다. 다만 다섯명이 타기엔 경차는 공간이 좁아 좀 불편하고 속도도 안 난다. 중형차는 다섯명이 타도 널널하고 에어컨을 켜도 오르막길을 잘 올라간다. 속도도 난다. 이렇듯 경차와 중형차는 엔진출력은 물론 탑재 기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각종 편리한 기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연단기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편리성이랄지 기능성, 견고성을 놓고 가격 대비, 판단해야 하는 것은 사용자 선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