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의 기운 감지, 미얀마를 가다

미얀마 봉제환경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현지로 급히 나가 관계자들을 만나고 봉제업체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아직 미얀마는 봉제가 활성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오랜 군부독재로 인한 경제제재와 낮은 인프라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내 투자진출업체들을 만나본다. 이번호에는 미얀마 현지 진출업체 탐방의 프롤로그 성격으로 내용을 정리했으며 개별업체별 탐방기는 다음호부터 순차적으로 자세히 소개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자정이 가까울 무렵 밤하늘에서 내려다본 양곤 시내는 불빛이 많지 않다. 공항을 빠져나와 가로등 없는 거리를 달리는 차가 다소 위태롭게 느껴진다. 앞에 뵈는 게 별로 없는데 운전수는 거침없이 달린다. 미얀마에 진출한 봉제업체들을 만나볼 요량으로 이번 취재 일정을 잡았는데 비행편이 밤늦게 도착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하루의 절반은 오롯이 비행 일정에 소모되었다.

국내 업체 투자 진출 많지 않아 전체 교민수도 많지 않은 편

아직 미얀마가 교민들이 많지 않고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미약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번 미얀마 방문은 한참 최저 임금 인상 발표가 있기 직전이었던 2015년 6월 이후 근 2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최후의 봉제 보루로 여겨지는 미얀마는 최근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군부통치가 종식되고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간 정부가 들어서 미국, 유럽 등지로부터 각종 경제제재가 해제되는 좋은 분위기에 있다.

그러나 민간 정부 출범하고 1년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지만 현재 미얀마는 평화협정이나 인권문제와 같은 정치적인 현안에 밀려 신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경제 드라이브는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낙후된 임가공 공장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임가공감독위원회’를 구성해 현지 봉제투자업체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미얀마 내에는 총 472개의 임가공 업체가 있는데, 이중 367개가 봉제업체라고 한다.

따라서 임가공감독위원회는 봉제기업들의 인권과 노동법의 엄격 적용을 위해 마련한 기구이며, 이는 국내 투자기업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민간 정부 출범으로 미국은 지난해 미얀마의 GSP(일반특혜관세)를 재부여했으나 현지 진출업체들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품목인 니트의류나 셔츠, 재킷 등의 품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주력 품목이 빠져있기 때문에 관세 혜택 효과는 현재로서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될 것으로 업체들은 예상하고 있다.

관세 혜택이 확장되고 미얀마가 배제된 TPP가 무산된 만큼 봉제산업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지 진출업체들 사이에서 바이어 오딧에 대응하고 현 정부의 노동자 인권 보호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소셜컨플라이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미주, 유럽 수출을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공장들이 대응해야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관련 모임이나 세미나가 자주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 정부 출범으로 앞으로 미얀마의 개방과 개혁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 때문에 최근 국내 업체들도 부쩍 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제재 풀리고 분위기 상승 미얀마 봉제투자 관심 높아

늦게 도착해 늦은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요란한 차들의 경적 소리에 일찍 잠이 깼다. 대로변의 숙소는 차들이 내는 소음으로 시끄러웠지만 창을 열자 푸른 전경이 펼쳐져 늦추위에 엄동의 날씨를 겪다가온 기자에게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 미얀마는 한참 건기를 지나고 있다. 근 5월까지는 비한방울 내리지 않는 날씨가 지속된다. 거리는 온통 먼지투성이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고 청소를 하지 않는 통에 먼지와 쓰레기가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 공기도 썩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아랑곳 않고 현지인들은 바쁘게 거리를 오가거나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군산미얀마(MYANMAR GUNSAN Co., Ltd.)

첫 방문 업체는 이제 가동 6개월을 갓 넘기고 있는 군산미얀마(MYANMAR GUNSAN Co., Ltd.)대표: 오중근)였다. 동사는 지난해 공장 건물을 임대해 시설 투자를 시작했고 하반기부터 인력을 모집해 현재 약 500명의 인력으로 니트류를 생산하고 있다. 군산미얀마는 봉제기기 및 각종 기자재를 판매하는 청도군산유한공사가 이곳에 봉제생산을 위해 투자한 공장이다. 봉제 기기 분야에 기술력을 확보한 동사는 이 공장을 기기 판매와 생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투자한 곳이다.

공장 내 생산은 물론 동사가 판매하는 최신 기종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발한 다양한 아타치멘트를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일종의 전시장 역할도 기대하면서 전천후 공장을 설립했다. 이제 설립 6개월을 넘기고 있어 직원 기능도 향상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수기로 들어서는 시점이어서 오더가 많아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중근 대표 이하 전 관리자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사 현장 곳곳에는 오중근 대표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접목된 장비들이 곳곳에서 분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기계 자동화나 설비 면에서는 현지 진출업체들이 부러워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군산미얀마에서 일본 수출 오더 일부를 진행 중인(주)C&P양행의 이태성 이사도 만날 수 있었는데 최근 일본 수출쪽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동사는 일본의 유명 소매 브랜드와 거래를 진행 중인데 중국에서 생산을 진행하다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대부분의 물량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고 밝힌다. 일본 바이어는 중국이나 기타 국가보다 동사와 같은 한국 무역업체를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확실한 납기와 품질 관리 면에서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기 전시와 봉제 생산 병행 전천후 능력 발휘 공장 추구

동사는 앞으로 미얀마를 주력 생산기지로 삼아 일본 수출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미얀마의 도로 사정은 상당히 열악하다. 포장도로인지 비포장도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우기에 생긴 패인 곳 즉 ‘포트홀’이 곳곳에서 보수가 안 된 채 남아있다. 다행인 것은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포트홀을 만나도 급격한 충격은 생기지 않는다. 현지 봉제업체들도 다들 인정하는 것이지만 미얀마의 기초 인프라는 취약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류 운송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상습 정체지역인 양곤 시내는 컨테이너 화물차의 통행을 야간 시간대에만 허용하여 현지 업체들이 애를 먹기도 한다. 야간 통행으로 인해 운송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운송비는 2배로 올라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고 한다. 미얀마는 수출항이 없어 대부분 싱가포르에서 작은 배로 옮겨 싣고 미얀마로 들어온다. 미얀마 내에서는 컨테이너 운송이나 선적에 필요한 시설들이 부족해 하루 이틀씩 배가 묶이는 경우는 다반사다. 물류 운송에 현지 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이 여간 아니다.

•성부인터내셔날

고달픈 도로 사정에도 기자를 태운 차는 최근 미얀마에 새로 공장을 짓고 있는 성부인터내셔날(대표: 김성호)로 향했다. 큰 규모의 공장동 안에는 니트 2개 라인만 재봉기가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한 눈에 보아도 이제 막 공장을 설립 중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성호 대표는 요즘 인원 모집을 위해 현지인들 면접 보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고 한다. 김 대표는 느리게 가더라도 쓸만한 인재들을 모아 차근차근 공장을 만들어 가겠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동사는 약10개 라인 규모로 니트류를 생산할 예정이다. 미얀마 봉제 투자 시 장애요인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높은 임대비를 지적하는 업체들이 많다. 미얀마 공장 임대비는 현지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편이라고 한다. 공단내 웬만한 공장 동 하나의 경우 한 달 임대료가 약 1천만 원 가량이다. 임대료는 1년분인 1억 2천만 원을 선불로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장 임대료뿐만 아니라 현지 체류자들이 사용하는 주택 역시 미얀마의 생활수준을 감안하면 다른 인근 동남아 국가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월드진가먼트(World Jin Garment Co., Ltd.)

취재 둘째 날 미얀마 진출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월드진가먼트(World Jin Garment Co., Ltd.)(대표: 정의숙)를 방문했다. 일본 수출이 전문인데 현지에는 정의숙 대표와 강태부 공장장, 그리고 회계책임자 한 명을 합해 3명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지인이다. 동사는 한 때 노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슬기롭게 극복해내면서 지금은 순탄하게 공장을 가동 중이다. 당시 노사문제로 공장을 아예 새로 설립하다시피 변화시키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생산성도 높고 품질도 우수한 알토란같은 공장으로 변신했다.

최근 미얀마도 노조의 움직임이 과거와는 다르게 활발한 편이다. 특히 외국계 투자업체들은 인권문제와 현지 노동법 준수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미얀마를 처음 갔을 때 수시로 발생하는 정전이 도무지 이해가 안갔지만 두 번째 방문이어서인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지역은 워낙 자주 정전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시로 자가 발전기가 돌아가는 통에 디젤 엔진의 거대한 소음이 익숙해지게 된다. 정전으로 인해 유류비 등의 추가 비용 발생도 만만치 않은 곳이 미얀마이기도 하다.

•미얀스타(MYANSTAR GARMENT CO.,LTD.)

양곤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이상 거리인 바고 지역에 위치한 미얀스타(MYANSTAR GARMENT Co., Ltd.)는 지난 2001년 진출해 신사복을 생산,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현재 자회사인 슈트스타와 함께 약 3천 명가량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오더를 바탕으로 직원 복지 향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특집4 조현호 대표 인터뷰 참조) 미얀마 취재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업체는 미얀모드(MYANMODE CO.,Ltd.)였다. 동사는 유럽으로 캐주얼 의류를 수출하는 업체인데 유럽 수출을 위한 이벨루션을 통과한 공장답게 다양한 안전 관련 설비와 정리 정돈이 잘 되어있다. 유럽 수출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바이어 공장이이벨루션을 통과해야하는데 미얀마에 진출한 업체들이 대부분 일본오더나 국내 내수 오더를 하는 곳이 많아 이런 절차를 거친 곳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미얀모드(MYANMODE CO.,Ltd.)

간혹 하청을 주기 위해 협력공장들에게 이벨루션 절차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비수기에 일부 오더난이 있을 뿐이어서 관심을 두는 공장들이 많지 않다. 미얀마는 아직도 봉제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미개척 지역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지에 가동중인 봉제업체가 현지 로컬업체와 해외투자업체를 합쳐도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나마 대부분 일본이나 유럽, 국내 내수 오더만 들어올 뿐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 오더는 많지 않다. 근래 미얀마의 미주 수출실적은 약 4천만 불 가량이라고 한다. 2003년 미국의 경제제재가 있기 전 4억 달러에 달했는데 앞으로 이 지역의 수출 시장이 확대된다면 미얀마 봉제는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주 수출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오면 봉제 관련 연관 산업의 진출도 활발해져 지금보다 훨씬 높은 봉제 경쟁력을 갖는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짧은 시간 미얀마를 다녀오면서 느낀 것은 이제 막 잠을 깬 나라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50년 이상의 군부 통치가 막을 내리고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앞으로 점점 더 발전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시아 최후의 봉제보루, 미얀마의 가치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