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이벨루션 통과, 그래도 어쩌나

봉제공장의 공장 진단 평가 즉 컨플라이언스(Factory compliance), 이벨루션(Evaluation) 요구는 바이어의 오더를 받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가이드라인이다. 공장 입장에서는 다소 부당한 면도 있는데 모든 요구 조건이 일방적으로 바이어 측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 항목도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요구 조건을 들어주다보면 과연 이 바이어의 오더를 계속 받아야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고 관계자들은 이야기 한다.

미얀마에서 각종 우븐류를 생산하는 D사는 올해 초 유럽의 한 바이어로부터 갑작스럽게 봉제라인과 완성라인 및 완제품 창고 사이에 방화벽을 만들어 차단시키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만약 방화벽을 세우지 않으면 이후부터 오더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바이어들은 방화벽 설치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유독 이 바이어만 요구해온 이유를 파악해보니 협력공장 한 곳이 화재를 입어 출고될 제품이 소실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동사는 이 바이어의 오더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방화벽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바이어의 물량이 비수기에 몰리기 때문에 연중 공장 운영과 오더 확보 차원에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동사 관계자는 밝혔다.

“갑자기 방화벽을 설치하라는 통에 부랴부랴 인부들 불러 공사하느라 공장이 대혼란을 겪었습니다. 공장에 불이 나서 제품이 탄다고 한들 FOB로 진행하는 오더라 우리 공장의 손실이 더 큰데도 바이어들이 만약의 상황 발생으로 불편할 것이 우려되었는지 협력공장에다가 미리 예방책을 만들라 지시한 것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고충이 컸습니다. 더욱이 방화벽도 다 돈이 드는 일인데 투자비용을 대지는 못할망정 가공임을 깎아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요구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내 오더 하려면 요구 조건에 맞춰라’는 식인데 봉제공장 입장에서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요즘 동사 인근에는 국내 내수 오더를 하던 일부 공장들이 유럽 바이어들의 공장 진단 평가를 받기 위해서 시설 투자 등을 준비 중이다. 국내 내수 물량을 생산하는 많은 공장들이 최소 약 2달 정도의 비수기에 극심한 오더 난을 거의 매년 겪기 때문이다. 이 비수기에 유럽이나 미주 오더를 할 수 있으면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수기에 소규모 협력공장에 많은 오더를 뿌리는 대형 완사입 공장 중에서도 비수기 오더난 때문에 유럽 바이어의 공장 진단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내수 공장들이 비수기 극복을 위해 바이어 공장 진단 평가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어들의 요구사항이 지나치다고 판단해 진단 평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규모 공장의 경우 진단 평가를 통과를 위해서 인적, 물질적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가이드라인이 높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시설 투자의 경우에도 기존 시설에서 일부는 약간의 보강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새롭게 마련하거나 구매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도 인사, 노무, 회계, 안전, 보안 등 광범위한 요구 사항에 대해 이 분야를 관리할 전담 관리 직원을 두고 공장 전반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보강,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적 투자가 힘든 소규모 공장들이 진단 평가 통과를 위해서는 공장 오너가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럴 경우 요구 사항을 일일이 대응하다 결국 포기하기도 한다.

미얀마 현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바이어의 공장 진단 평가는 공장이 오더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할 통과 의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공장 진단 평가 통과를 위해 공장 입장에서는 여러 투자가 선행되고 바이어의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투자라는 것이 결국 바이어를 위해 공장을 치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공장 자체를 위한 투자이고 결국은 자산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공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장 진단 평가를 통과하면 아무래도 여러 오더에 대한 기회가 생기고 공장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李相澈 局長] lee@bobbin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