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는 70~80년대 대한민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효자산업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국내 봉제환경에 조금씩 변화 조짐이 일었다. 인력난과 임금상승에 노사갈등까지 겹치면서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었다. 1980년대 중반 몇몇 봉제공장이 사이판에 둥지를 틀면서 해외진출 움직임이 가시화 됐다. 이어 중미와 동남아로 진출이 이어졌다. 미수교국이던 중국과도 물밑 접촉이 분주히 오가다가 1992년 수교한 후 중국의 연해도시들은 앞다퉈 호조건을 내세우며 우리나라 봉제기업들을 유혹했다. 가뜩이나 제반 봉제환경이 어려워진 국내 봉제기업들은 탈출구로 망설임없이 중국을 선택했다. 이렇게 청도, 위해, 대련 등 지역으로 봉제공장 이전이 봇물을 이뤘다.
이후 서서히 지구촌 곳곳에 한국봉제의 깃발이 내걸렸다. 이에 발맞춰 재봉기를 비롯 봉제주변기기 메이커들도 발빠르게 대응했다. 외산 일색이던 봉제기기들이 점차 국산화되면서 속속 개발된 신기종들은 세계 유수의 봉제기계전문전시회를 통해 선보였다. 국내 봉제산업의 공동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해외진출기업들의 약진에 힘입어 봉제생산설비 시장의 볼룸도 커진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봉제기계전시회로는 미국 BOBBIN SHOW, 일본 JIAM SHOW, 독일 IMB SHOW가 있었고 국내에도 ‘서울국제봉제기기전시회(SIMEX SHOW)’가 1989년 첫회를 시작해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었다. 특히 SIMEX SHOW는 국내 봉제기기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오기도 했다. 자극받은 기기메이커들은 쉼없는 연구개발로 봉제자동화에 한발짝 다가섰다. 수입 기기에 의존하던 봉제공장들 역시 국산 봉제자동화기기로 대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즈음 세계 봉제기기시장의 지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생산설비를 사용하던 중국 현지인 봉제공장들이 자국에 들이닥친 해외봉제공장들의 자동화 생산설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중국 내 신생 봉제기기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은 대놓고 세계 유수메이커의 기기를 카피하기 시작했다. 봉제기기의 카피천국이란 불명예 지적에도 굴하지 않고 판을 키워 갔다. 특허 시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외양은 물론 브랜드로고까지 흡사하게 모방했다. 그러면서 조악하던 디자인과 성능은 해를 거듭할수록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오는 11월 14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개막
그렇게 봉제기기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자, 중국은 봉제기계전시회 개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던 걸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중국상해국제봉제기기박람회(CISMA SHOW)’다. CISMA SHOW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를 키워갔다. 그에 반해 세계 3대 봉제기기전시회의 규모는 쪼그라들어만 갔다. ‘SIMEX SHOW’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처럼 ‘CISMA SHOW’는 내로라하는 동종 전시회의 블랙홀이었다. 국내 유일의 봉제기기 전문전시회인 ‘SIMEX SHOW’도 2005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CISMA SHOW는 불어난 덩치와는 달리 내용면에서 참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참관 소감이 많았다. 회를 거듭 할수록 엔드유저나 바이어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져 가는 이유다.
IoT, 로봇, AI의 활용으로 치닫는 세간의 분위기를 읽지 못한 탓이며 질보다 양에 급급한 결과다. 이 전시회에 출품한 세계 유수메이커들 조차 중국 메이커의 카피를 우려해 신기종 출품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했다. 그간 국내 봉제기기메이커들 역시 CISMA SHOW 보다는 실리를 쫓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에서 열리는 로컬쇼에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간혹 국내에서 열리는 섬유기계 전시회나 섬유소재전시회에 곁다리로 출품하기도 했다. 출품했던 봉제기기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종 아이템인 섬유기계나 섬유소재 출품사들에 밀려 외진 곳에 부스를 배정받는 등 여러 점에서 서자취급을 당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럴수록 봉제기기 전문 전시회 개최를 열망하는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국내 유일의 봉제기계전문전시회인 ‘SIMEX SHOW’가 막을 내린지 13년이 지났다. 이후 다수 봉제기기 개발사들은 신기종이나 자동화장치를 국내 사용자들에게 혹은 바이어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잃었다. 2005년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SIMEX SHOW와 같은 전문 전시회 부활을 기대한다” “국내에 관련 전시회가 있을 때는 전시스캐줄에 맞춰 연구개발에 몰입했었는데 근래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도 전시회는 연구개발을 자극하는 촉매역할도 한다” 2016년 중반, 본지는 봉제 관련 업계를 대상으로 국내 봉제기계전시회 개최의 필요성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90% 이상이 국내 전시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에 무역전시회 전문 주최사인 (주)서울메쎄와 실무 검토에 들어갔다.
서울메쎄 박병호 대표는 과거 COEX 전시팀장 시절 SIMEX SHOW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전시전문가로 누구보다도 봉제기계 전시회 운영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결코 녹록치 않겠지만 봉제강국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봉제기계전문전시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여기에 봉제기기류 제조공급사 단체인 한국봉제기계공업협회와 해외전시에이전트와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는 제스미디어가 합세해 13년의 긴 공백을 깨기 위한 막강 팀이 꾸려졌다. 2016년 9월, 전시회 명칭과 개최시기, 전시장소 등을 정하기 위한 전시준비실무팀의 첫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전시회 준비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봉제산업 견인, ‘GT KOREA’가 선도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대한민국 국제 봉제기계/섬유산업전시회(Korea International Garment Machinery & Textile Industry Fair)’다. 줄여서 ‘GT KOREA’로 명명했다. Garment Textile의 앞글자와 Korea의 결합이다. 전시명에서 보듯 봉제기계류를 주 전시종목으로 하며 섬유산업 관련 장비와 소재도 포함해 오는 11월 14일, 경기도 일산 KINTEX에서 국내외 120개사 400여부스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실무팀은 일찌감치 국내외 전시참가 예상업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해외전시에이전트 접촉에 나섰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열린 봉제기계전시회에 GT KOREA 2018 홍보부스를 두고 참가업체 유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터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도 실무팀을 파견하여 지속적으로 GT KOREA 홍보에 주력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13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봉제기계전시회라 그런지 참가 열기 또한 뜨겁다. 5월 중순 기준 이미 250여 부스에 이를 만큼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일본을 비롯 해외 봉제기기메이커들도 해외 생산기지에서의 한국봉제의 기세를 실감, 이번 전시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노크를 해오고 있다. 전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국봉제는 거대한 의류제조국의 명성을 해외공장을 통해 드높이고 있기에 주로 구매결정이 이루어지는 한국에서 핵심 기기를 선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해외 유수 봉제기기메이커들이 이번 GT KOREA 2018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또하나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이어 미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등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는 양상이다.
남북간 경제교류가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도 사실이다. 1차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역시 개성공단 재개 문제다. 11월 전시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실무팀의 입장에서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GT KOREA 2018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GT KOREA가 대한민국 봉제산업을 견인, 내수·수출봉제에 청신호”라는 헤드타이틀이 메이저 신문 1면에 박힐 수 있도록 한다는 각오로 전시실무팀은 전시회 준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첨단산업과 접목한 기술력, 기능성을 앞세운 틈새공략으로 다시금 봉제를 ‘성장산업’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투자가 요구된다. 전문 전시회가 필요한 이유이며 이것이 곧 ‘GT KOREA’가 야심차게 지향하는 바다.<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