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인견, 안흥찐빵, 한산모시, 영덕대게 등등… 행정지역과 특산품이 결합되어 익숙해진 이름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지리적 표시’라고 한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 제조 또는 가공된 상품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WTO를 통해 범국가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는 신지식재산권이다. ‘풍기인견’은 2012년, ‘지리적표시 단체 표장’으로 등록됐다. 풍기와 인견(人絹)은 어떤 연유로 결합되었을까? 우리나라 인견 역사는 경북 풍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1934년경 평안북도 덕천 지방에서 ‘족답기’로 두고 명주를 짜던 분들이 월남을 해 소백산 아래 풍기 지역에 둥지를 틀고 직물(인견) 제직을 시작했다. 1938년 이후 점차 그 수가 늘어났다. 6~70년대 이르러 풍기는 직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직물공장이 번성했다. 하지만 주로 양복과 양장의 안감소재로 사용되던 인견은 기성복의 등장으로 수요는 점차 줄어 들었다. 더불어 직물공장의 가동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몇몇 직물공장의 2세대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안에만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 보기로 했다. 다시말해 존재감 없던 안감에서 패셔너블한 겉감으로 탈바꿈(연구&개발)을 시도했고 그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후 인견소재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파자마, 런닝셔츠, 팬티로 시작해 재킷, 바지, 블라우스는 물론 침구류, 모자, 가방류에 이르기까지 적용 아이템도 다양해졌다.

국내 인견 생산의 80%가 풍기 지역에서 이루어질만큼 다시 풍기지역 인견 제직업체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고 봉제업체와 인견제품 판매점들도 속속 등장해 ‘풍기인견’의 바람몰이에 동참했다. 이렇듯 풍기인견이 전국 브랜드화에 성공하기까지는 굴하지 않고 뚝심있게 인견을 지켜온 2세대들의 공이 크다. 인견 토탈 패션기업으로 도약한 ‘홍승애풍기인견’의 계호명 대표도 그 중 하나다. 경북 풍기읍에 소재한 ‘홍승애풍기인견’ 본사 1층 매장을 찾았다. 계호명 대표는 매장 한 켠 피팅룸에서 막 입고된 신상 청바지를 시착하다가 지퍼도 여미지 못한 채 기자와 어설프게 마주쳤다. 수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인견 청바지로 이야기가 옮아갔다.

“작년에 청지 느낌이 나는 인견 원단을 개발해 청바지를 만들어 매장에 걸었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놀랐죠. 완판된 겁니다.이에 고무되어 올 여름 인견 청바지와 재킷을 본격 출시키로 맘먹었죠. 우선 인견 청지를 더욱 업그레이드 시켰죠. 인견소재지만 청바지 맛을 살리기 위해 위사를 사염해서 제직을 한뒤 다시 날염을 했습니다. 봉제는 청바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정통 청바지보다야 핏은 덜 나지만 시원하고 가볍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죠. 외양만으로는 일반 청바지와 구분이 안됩니다. 시중에는 아직 이런 인견 청지가 없어 문의도 많이 옵니다.” 계호명 대표는 기자를 매장 윗층 디자인실로 안내했다.
“한여름 꿉꿉함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최적의 소재가 인견”이라며 인견 소개도 잊지 않았다. “인견은 목재 펄프에서 추출한 순수 천연소재로 비스코스 레이온(Viscose Rayon)이라고 합니다. 가볍고 시원해 냉장고 의류, 에어컨 이불로 애칭될만큼 한여름 으뜸 소재로 입소문이 자자하죠. 땀 흡수가 빠르고 정전기가 거의 없고 촉감도 차고 통기성이 좋아 상쾌합니다. 나무의 특성 때문에 천의 성질이 차서 몸에 열이 많은 분들에게 아주 좋습니다. 같은 천연소재 셀룰로오스 섬유인 모시나 삼베 등 다른 여름 제품에 비해 가격 또한 저렴합니다.” ‘홍승애 풍기인견’은 1976년 풍기에 설립된 제직공장 ‘계성직물’이 모체가 되었다.

이후 계성직물은 1991년 의류업체로 전환하는 등 많은 변화를 거쳐 2005년 특허청에 ‘홍승애 풍기인견’을 등록했다. “1970년대 풍기에 직물공장이 번성했어요. 이보다 앞서 조부께선 구한말에 이북에서 이곳 풍기로 내려와 공장을 운영하시다가 정리한 적이 있는데 1976년 선친께서 다시 시작해 1990년까지 제직의 명맥을 이어 온 것입니다. 86~87년 제가 선친께서 운영하시던 직물공장에 들어 왔을 때는 공장이 줄어 65개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89년도에 이르러 150개로 늘어났습니다. 직물공장에서 기사로 근무하던 분들이 나가서 공장을 차리기 시작한 때문이죠. 그 바람에 인력난이 불어닥친 겁니다. 게다가 레피어직기 개발에 따른 경비에, 펀칭기, 셔틀체인지 비용 등도 만만치 않았어요. 한술 더 떠 인견 시세마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맞춤양복에서 기성양복으로 변화하면서 안감을 인견으로 쓰던 대형 공장들이 아세테이트로 다 돌려 버렸어요. 지금은 아세테이트도 비싸지만 그때는 인견보다 헐값이었습니다. 구미나 대전에 있는 대형 공장들이 짜서 양복메이커로 대량 납품해 버리니까 맞춤 양복시장은 바람 앞에 등불 꼴이었죠. 인견이 갈 곳을 잃어버린 겁니다. 1991년에 이르러 의류로 사업 전환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계호명 대표는 “초창기 인견 옷은 시원했지만 요즘 인견에 비하면 한참 하품이다. 당시로서는 만들 수 있는게 런닝셔츠, 팬티, 파자마가 고작이었다. 그때 쓰던 원단으로는 약해서 지금은 팬티도 못 만든다”며 “지금은 인견 다이마루 원단을 개발해 주로 사용하고 있고 또한 위사와 경사를 연사하여 인견 쉬폰 쪽으로 개발해 사용하는 등 인견 소재 차별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저희는 쉬폰을 대구에서 짭니다. 풍기지역에선 쉬폰을 잘 안 짜요. 풍기에서 짜고자 해도 공장이 몇 안돼요. 폴리쪽 큰 공장은 일찌기 정부자금 지원받아 워터젯트로 바꿨고 영세한 공장 일부에서만 인견을 짰어요. 지금 그런 공장들은 50개가 채 안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중 인견공장은 여덟곳 정도에 불과합니다. 몇 안되는 인견 짜는 공장들도 고가의 이태리제 레피어직기로 교체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게해서 비싼 원단을 짜야 타산이 맞기 때문이죠. 인견이 아니어도 고급 원단 제직 공장으로부터 임직이라도 받아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계호명 대표는 인견제품에 부착하는 풍기인견 인증 택을 두고 관련 단체와 업체간 다소 마찰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풍기인견 택을 붙이려면 반드시 풍기에서 제직한 인견원단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요구하는 원단의 품질을 못내면서 써주기만 원합니다. 게다가 생지로만 판매합니다. 영세업체들은 생지를 들고 대구로 가서 날염을 해와야 합니다. 소량을 누가 날염 해주나요? 최소 1,000야드 이상은 되어야 날염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한 칼라에 1,000야드를 영세업체가 감당할 수가 없지요. 할 수 없이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날염되어진 것을 사다가 옷을 만듭니다. 바로 이런 업체들에겐 풍기인견 인증 택 부착을 제재해야 한다는 게 ‘풍기인견발전협의회’의 방침인데 큰 업체들한테는 그런 식으로 제재를 하더라도 형편 상 대구에서 인견 원단을 사서 옷을 만들 수밖에 없는 소규모 업체들에게는 풍기인견 택을 붙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토탈 인견 브랜드 ‘홍승애’를 비롯, 젊은 층을 겨냥한 ‘주투(Jutwo)’와 인견 침구류 브랜드 ‘아르볼레’를 전개 중인 ‘홍승애풍기인견’은 ‘코리아스타일위크’를 통해 국내 런웨이쇼에도 참가하였으며 파리 프레타포르테와 라스베가스 매직&소싱 전시회는 물론 국내 ‘프리뷰인서울’과 ‘프리뷰인대구’에도 참가해 인견제품을 소개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위한 광폭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 인견소재와 봉제 트러블?
인견의 경우 연사를 해서 짜다 보니까 원단 자체에 탄력성이 생긴다. 원단이 얇아 심지를 잘못 쓰면 심지와 원단이 늘어나는 차이가 달라서 트러블을 일으킬 수가 있다. 봉제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봉제는 아이템에 따라 서울, 전주, 부산, 대구에서 진행된다. 경험상 부산 쪽은 인견 봉제가 약하다. 옆구리 부위를 오버록 한번 쳐서 끝내기도 하더라. 내가 원하는만큼의 봉제를 해주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
— 생산과 유통, 조직 관리?
양말, 레깅스, 장갑, 토시, 속옷류, 런닝셔츠, 팬티, 모자, 침장류, 가방, 남성복 여성복 등 아이템 수가 무척 많다. 품목관리, 재고관리가 쉽지않은 이유다. 저와 아내(홍승애 디자이너)는 본사인 풍기에 머물며 생산과 유통상황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풍기에는 매장, 디자인실이 있고 창고를 두고 있다. 서울 경기 수도권을 커버하기 위한 직영점 매장과 창고는 경기도 광주에 있다. 1층 150평은 매장과 사무실, 2층 150평은 창고이며 큰아들(계희주)이 책임관리하고 있다. 대구 직영점 매장은 둘째아들(계기주)이 올해부터 디자인과 원단개발업무를 맡아 보고 있다.

— 인견의 한계는 계절성소재?
어떻게 혼용해서 제직하느냐에 따라 사계절용 원단을 만들 수는 있으나 인견은 이미 여름상품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소재는 지천이다. 반면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소재는 인견이 유일하다. 인견은 원단 자체가 성질이 차다. 주위 온도에 민감한 편이다. 체온은 36.5도지만 외부온도는 그보다 낮기 때문에 낮은 외부온도를 빨리 몸에 전달하는 역할과 내 몸의 열을 밖으로 발산시켜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해외에서 느끼는 인견은?
인견 제품의 수출이 활발하진 않다. 인지도가 부족한 이유도 물론이지만 동남아 쪽에서 입기는 좋으나 가격이 비싸기에 경쟁력이 떨어진다. 몇해 전 인견제품을 전시 차 LA를 찾은 적 있다. 주변 마트에 가니 가격 싼 옷들을 미국에 다 모아 놓은 듯 했다. 우리가 가지고 간 인견의류의 가격은 미국에서 소위 말하는 고급 살롱에나 걸릴 수 있는 가격대였다. 경쟁하기가 어렵다. 또 프랑스 전시회에 갔을 때 거기 사람들은 자연 친화적인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견이면 인견, 폴리면 폴리 이렇게 분리된 소재를 좋아한다. 인견 같으면 그냥 썩는데 폴리가 섞이면 썩지 않는다. 그렇다고 태우는 것도 문제가 있다보니 환경적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중동 쪽은 어떨까 조사해 봤다. 중동은 외부 온도가 40도를 훌쩍 넘는다. 인견 옷을 입었을 때 햇볕을 받아 더욱 뜨겁게 피부에 전달된다. 중동 쪽에 먹힐 수 있는 건 실내서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이불 정도는 좋으나 다른 아이템은 어렵겠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이나 중국, 대만, 베트남은 인견 제품의 잠재적 시장 확산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유로 중국을 비롯 홍콩, 대만, 말레이사아, 태국에 인견브랜드 상표등록을 해뒀다.

— ‘홍승애풍기인견’ or ‘홍승애’
2005년도에 ‘홍승애풍기인견’으로 상표등록 했다. 다른데서 ‘풍기인견’이란 이름을 선점할 수 있겠다 싶어 서둘러 해놓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풍기인견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공식화한 셈이다. 이후 풍기인견발전협의회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풍기인견’ 사용과 관련해 태클이 들어왔고 송사로 이어졌다. 단체와 개인 간의 다툼이 부담스러워 브랜드명에서 풍기인견을 뺀 ‘홍승애’로 바꿨다. 다만 제조사명은 ‘홍승애풍기인견’ 그대로다. 그렇지않아도 옷에 풍기인견이라는 제한적 이름이 붙는 게 늘 부담스러웠는데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
— 브랜드 홍보는?
‘홍승애’ 브랜드의 인지도와 풍기인견 확산을 위해 공격적 마켓팅을 전개하고 있다. 고속버스와 서울 지하철 광고가 대표적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사 내 벽면 광고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체는 노출효과가 커 홍보효과가 뛰어나다. 매장이 없는 지역에서도 버스차체광고로 인해 ‘홍승애’ 브랜드의 인지도가 상당하다. <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