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기념 특별기획 [1-세계로 나아간 한국 봉제, 그 현장 속으로]

불씨 되살리는 베트남 호치민 봉제공장

2025년 1월, 창간 50주년을 맞아 본지는 특별기획으로 한국 봉제업의 주요 해외투자 지역을 순차적으로 탐방할 예정이다. 이번호에는 그 첫번째 순서로 한국 봉제업의 최대 해외투자국인 베트남을 현지 탐방취재했다. 호치민시와 그 인근 지역의 봉제업체를 방문하였고 현지에서 많은 관계자들을 만나 업계의 근황과 향후 전망을 들어볼 수 있었다.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베트남 봉제는 최근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 업체들도 오더 증가 기대 속에 먼지 쌓였던 가동 중단 장비들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그 현장 분위기를 수회에 걸쳐 적어 나간다. <편집자주>


 

건기가 시작된 베트남 호치민의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날이 많아졌다. 바싹 마른 듯한 도심과는 달리 외곽은 밀림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는 코로나 사태 이후로 오랜 만에 해외 오프쇼어 현장 탐방을 시도하는 기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대형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호치민 시내의 공장들과 빈증, 구찌 등 시외곽 지역의 업체들을 방문하다보면 잠깐만 실외를 걸어다녀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코로나 이후 베트남 봉제산업은 상당한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강제 셧다운 정책의 영향으로 많은 오더가 베트남에서 빠져나갔다.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일부는 조업일수 단축, 공장 가동 제한 등으로 버티기에 나섰지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의 섬유 봉제산업의 어려움이 잘 나타난다. 지난해 베트남의 1~4월 원단 생산에 사용되는 원사 수입은 6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9% 감소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의 섬유직물 제품 수출은 97억2000만 달러로 18.1% 줄었다. 또한 베트남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직물의류 제조부문의 산업생산지수(IIP)가 94를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6p 하락했다.

베트남 섬유의류협회(VITAS)는 지난해 상반기에도 글로벌 수요가 회복하지 못함에 따라 전체 수출이 작년 수준을 밑돌 것으로 추정했다. 신규 주문량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베트남 제조업 전망을 보여주는 구매자관리지수(PMI)도 5월 45.3포인트를 기록해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았다.

베트남 섬유 봉제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주요 무역국인 미·중·유럽연합(EU)의 영향 때문이라고 코트라 호치민무역관 등 주요 기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2024년 올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1%로 꾸준히 둔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 인식과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도 69.5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의 소비심리가 회복되더라도 신규 주문이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하반기부터 문제가 됐던 미국 내 높은 재고율은 수요처의 신규 주문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주요 유통채널 사이에 저가 의류의 지나친 재고 현상이 점차 해소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보수적인 입장이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형 유통망이나 유명 브랜드들 역시 전반적인 재고 수준은 작년과 비슷하지만 의류 부문은 조정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반적으로 조심스럽게 향후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1분기가 지난 올해는 베트남의 많은 의류 회사들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15% 증가했다는 현지 매체의 보도도 있었다. 베트남의류협회 Vu Duc Giang 회장은 의류 산업이 개선되고 있으며 주문량이 증가하면 기업이 2023년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출은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시장의 수요 감소로 인해 전년 대비 9% 이상 감소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세관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는 9.62% 증가한 95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현재의 궤도에서 올해 수출 목표인 440억 달러는 거의 달성됐다고 Giang회장은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류업체들은 지정학적 갈등이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홍해의 긴장으로 인한 높은 운송 비용이 이익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이다. 또한 지속 가능성, 생산자 책임 확대, 디지털 변혁, 환경, 사회,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된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엄격한 요구 사항을 충족해야 한다는 압력도 받고 있다. Giang 회장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 의해 설정된 배출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EU로의 의류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녹색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수정하며 신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의 리오프닝도 베트남 섬유봉제업계에 주는 영향이 크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주요 원사 공급국이자 최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중국의 리오프닝은 원사 공급가를 낮추는 효과도 있지만 강력한 경쟁자가 다시 생긴다는 결과도 가져온다.

베트남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은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2년 미국 의류 시장에서 중국은 25.7%의 점유율을 보였고 베트남은 14.9%로 그 다음이었다.

최저 임금 인상도 현지에서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베트남은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이 매년 5~7% 상승했다. 2022년 베트남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12%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블룸버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해 실질 임금 상승률이 4%로, 국가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결국 생산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쳐 글로벌 시장에서 베트남 봉제 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원자재 공급망 불안도 베트남 제품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섬유봉제산업에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베트남은 섬유와 의류 수출에서 세계 3위를 자랑하지만 원단, 면과 같은 주요 원자재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인건비 상승, 물류 차질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원자재 가격과 공급 불확실성이 상승한다.

이에 따라 베트남 섬유의류협회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30 베트남 섬유의류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은 크게 네 가지인데 고부가가치 전환, 환경보호 및 지속 가능한 발전 추구, 숙련 노동자 육성, 해외투자 유치가 그것이다.

또한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 원자재의 현지화율을 2030년까지 70%로 높일 계획이다.

작년 12월에는 정부가 ‘2035년 섬유의류산업 비전’을 발표했는데 섬유봉제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발전 의지를 밝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신규 주문 감소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베트남 소재 섬유봉제 업체들도 투입비용을 줄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업일수 감축인데 베트남은 주 6일 근무가 기본이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현재 주 5일만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업계는 현 상황이 장기화하면 근로자 이탈이 불가피해 주문이 늘 경우 즉각적인 생산량 회복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일부 신발 업체는 신규 주문 감소 장기화로 조업일수 감축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호치민과 인근 지역 업체들을 탐방하면서 새로운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멈춰세워져 있던 라인을 다시 돌리기 위해 준비하는 공장들도 더러였고 신규 오더가 늘어나 증설을 준비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오랜 침체를 벗어나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보여 무척 고무적이었다.

이번 베트남 호치민과 인근 지역 탐방에서 여러 업체를 방문했다. 전반적으로 코로나 영향을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첫 번째 방문지로 호치민 시내인 12군 공단에 위치한 UBI VINA를 찾았다.

 


UBI VINA., LTD

대량 생산보다 소량 다품종의 퀄리티 있는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UBI는 지난 2006년 호치민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호치민 시내 공단에 1, 2공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약 2,000명 가량을 고용하고 있다. 동사는 베트남 공장 외에 필리핀에 생산법인 있는데 국내 서울 성수동 본사를 모두 합치면 약 3천명 가량이 일하고 있다. 연간 수출액은 약 1억불 가량이라고 한다. 동사는 유베이스가 설립해 이후 지난 7년 전 IT기업이던 UBI가 인수해 현재 이르고 있다. 동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 긴 침체의 터널을 끝내고 새롭게 도약을 준비 중이다.

최근 새로 영입한 김상태 전무가 법인장으로 부임해 새로운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IT분야의 전문 업체가 의류제조 수출 기업을 인수해 운영하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고 코로나 사태라는 복병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원래 모기업은 콜센터를 대규모로 운영하던 곳이었습니다. 대기업이나 중견 중소기업의 대부분 회사들은 사후 처리 관련 콜센터를 외주 운영하는데 그 업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회사였습니다. 콜센터 업무라는 것이 IT 관련 업종입니다. 모기업이 이 분야에 전문업체여서 데이터 관리나 분석, 처리하는 데에는 전문적이지만 인력집약산업인 봉제업종에 그 전문성을 접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 팩토리 도입이나 IT 접목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사람 손으로 하는 봉제는 아직까지 디지털화가 어려움이 많이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동안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을 정리하기 위해 지금은 노력 중이라고 한다.

“봉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 조직이 튼튼해야 합니다. 최저 임금을 받는 보조부터 숙련 기능공까지 여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현장 관리와 조직 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현장이 튼튼한 법인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부임한지 5개월이 조금 지났다고 밝힌 김상태 전무는 최근에 수치상으로 나아지고 있는 것이 보여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김전무는 해외 오프쇼어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 전문가 출신의 법인장이다. 러시아를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미 등 여러 해외생활을 했고 국내에서도 규모있는 봉제업체를 운영해본 경격을 가지고 있다. 대형 의류수출업체에서 공장장 업무하다 법인장으로 승진한 보기드문 케이스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정돈되지 않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바꾸려고 하는데 가장 문제가 사람들이 늘 해오던 것에 익숙해 있다보니 새로운 것에는 저항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논쟁이 필요하면 그 과정을 거쳐 합의점을 찾아낸다면 조직도 강화되고 새로운 방법에 대해 좀더 상호간의 이해가 이뤄져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UBI는 미주 수출 전문업체인데 비교적 고퀄리티 제품을 많이 생산해왔다. 수백에서 수천장짜리 오더가 주종으로 공임비가 비교적 높은 제품 위주로 생산체계가 짜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퀄리티 제품이 이익을 따진다면 저단가지만 대량 위주의 오더에 비해 결코 유리하지가 않다고 이야기한다.

“대량  오더나 SPA와 같은 바

이어의 주문이 그동안 전무했습니다. 대형 수출업체들이 저가지만 대량 오더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량 오더는 일정 기간 생산하다보면 생산성과 품질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경우가 많아 박리다매식의 이득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 바이어들은 누구나 다 아는 고 퀄리티 제품을 요구하는 바이어 위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가공임은 보통 제품보다 훨씬 높지만 생산량이 작고 힘든 작업이 많아 이윤 측면에서는 유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역시 새로운 바이어나 오더를 물색해야만 합니다. 다행히 최근 우리 공장의 성격과 잘 맞는 유명 브랜드에서 내년 생산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데 잘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본보기 삼아 새로운 방향을 물색하고 있는 동사는 최근 유명 요가복 브랜드와의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어 분위기가 밝다.

이 요가복 브랜드는 스포츠웨어의 다양한 아이템을 생산하는데 소비자가도 상당히 높고 생산물량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데 유명 아이돌 여성멤버가 입고 나와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고, 최근 라인에는 이 브랜드의 생산이 한창이다.